▲ 서울아산병원에서 파킨슨병 환자가 운동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아산병원 | ||
하지만 최근 중년층에서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는 파킨슨병일 가능성도 크다. 파킨슨병 하면 노인질환이라는 생각으로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는 데도 방치하는 사이에 몸의 근육은 점점 굳어버린다. 최악의 경우에는 몸을 옴쭉달싹 못하게 된다. 나이가 젊다고 ‘설마 나에게’라고 생각하다가 큰코 다칠 수 있는 질환 중 하나인 셈이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하면 회복이 어려운 치매와 달리 약물치료를 통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손발이 계속 떨리고, 몸이 굳어가면서 움직임이 느려지는 파킨슨병. 1817년 이 병을 처음 발견한 영국 의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뇌에서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가 사멸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알츠하이머 치매와 함께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이다. 영화배우 마이클 제이 폭스, 권투선수인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파킨슨병을 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질병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국내 환자를 10만 명 정도로 보고 있다. 더욱이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파킨슨병 환자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파킨슨병센터 정선주 교수가 1996~2005년에 이 병원을 찾은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신규 환자 수가 10년 사이에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걸리는 연령대는 61~70세로 34.2%(5백98명)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직 젊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은 없다. 더 이상 노인에게만 생기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선주 교수는 “흔히 파킨슨병 하면 노인에게나 생기는 질환이라는 상식과는 달리 이번 조사에서 40~50대 환자가 전체 환자의 42.7%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며 “40대 이하 환자는 주로 유전적 소인에 의해 발병한다”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파킨슨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뇌의 흑색질이라는 부위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발병한다는 사실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흑색질은 뇌의 운동피질 등 여러 부위에 복잡하게 연결된 기저핵에 도파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알 수 없는 어떤 원인으로 인해 흑색질의 신경세포가 죽어버리면 도파민이 만들어지지 못해 운동 기능에 장애가 생기게 된다.
도대체 멀쩡하던 신경세포가 왜 죽는 것일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바이러스 뇌염 감염설,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유전설, 신경독성물질 중독설 등의 주장이 분분하다. 최근에 이루어진 역학 조사에서는 살충제, 제초제 등에 노출되어도 파킨슨병이 발병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지는가 하면 거주 환경이 도시보다 시골인 경우, 그리고 우물물에 노출됐을 경우 파킨슨병의 발병이 높다. 유전으로 인해 파킨슨병에 걸리는 환자는 전체 환자의 5~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손발 같은 신체의 일부가 떨리는 진전,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서동, 근육이 뻣뻣해지는 경직,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자세불안정 등이다. 특히 손발이나 어깨 등이 떨리는 진전은 환자들이 가장 먼저, 가장 흔히 겪는 증세다. 전체 환자의 75% 이상이 경험하며,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때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위축돼 점점 사람 만나기를 꺼리게 되고,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쉽다.
증세가 심해지면 보폭이 좁아져 종종걸음을 걷게 되고, 더욱 악화되면 길을 걷다가 자세가 불안정해서 자주 넘어지고 다른 사람과도 잘 부딪혀 힘없이 쓰러지기도 한다.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에는 몸을 옴쭉달싹 못할 정도로 관절이 굳어버린다. 이때는 근육을 조이는 듯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외에도 목이나 허리·무릎 등이 구부정해지거나, 잠을 잘 못 자는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성적인 욕구도 감소된다. 병에 걸렸다는 심리적 부담감은 물론 도파민 결핍으로 인해 성적 욕구가 떨어진다. 병이 심해지면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인해 발기불능, 사정지연 등의 증상도 겪게 된다.
치매 우울증 불안 등의 각종 정신질환적인 증상도 쉽게 찾아온다. 외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파킨슨병 환자 중 50%는 우울증을 경험하고, 40%는 치매가 발병했다. 도파민성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감정, 수면, 기억을 담당하는 다른 신경세포 역시 손상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증상을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빨리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가 많다는 점이다. “대부분 파킨슨병의 초기 증세를 단순한 노화나 관절염, 오십견으로 알고 있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 정선주 교수의 지적이다.
흔히 파킨슨병 하면 ‘죽음의 병’으로 오해한다. 물론 병이 오래될수록 근육이 마비돼 불편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병으로 인해 단축되는 수명은 평균 5년 이하로, 파킨슨병이라고 해도 초기에 발견하면 얼마든지 증상을 호전시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주로 약물치료를 하는데 도파민성 약물을 투여해서 운동장애를 줄인다. 현재는 환자의 뇌에 직접 도파민을 보충해주는 레보도파를 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약물을 5년 이상 복용할 경우 환자들이 약효가 떨어지면 즉시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등의 운동 동요, 이상운동증 같은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는 “따라서 치료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초기 증상을 보이는 젊은 환자에게는 이런 부작용이 없는 도파민 효능제인 미라펙스, 씨렌스, 팔로델 등을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파킨슨병으로 약물치료를 받을 때는 일부 고혈압 약이나 위장약,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라면 반드시 미리 말하는 것이 좋다. 치료효과를 떨어뜨리는 성분이 있을 수 있다.
약물치료로 증상을 조절할 수 없을 때는 수술을 고려한다. 수술을 통해 뇌에 전극을 심어 자극을 주는 ‘뇌심부자극술’을 시행하면 효과가 있다.
식생활 면에서는 특별히 파킨슨병에 좋은 음식은 없지만 비타민C·E가 파킨슨병 진행을 늦춘다는 이야기도 있다. 운동 파킨슨병을 예방하거나 개선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 근육과 관절이 튼튼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므로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반드시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관절을 펴는 운동을 적당히 피곤할 정도로 하면 좋다.
중년 이후에 문제가 되는 파킨슨병을 미리 예방하는 방법은 없을까.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효과적인 예방법도 적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라면 금연을 하는 것이 좋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오히려 파킨슨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상반된 연구결과도 나와 있기는 하지만 흡연은 뇌혈관에 악영향을 미쳐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약물도 있다. 예를 들어 소화제제로 널리 쓰이는 레보설피라이드와 메토클로프라마이드 같은 약물은 인체에 들어오면 도파민 수용체를 봉쇄해서 파킨슨병을 유발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레보설피라이드는 장운동 개선제 등 80여 가지 약품에 들어 있고, 메토클로프라마이드는 주로 ‘맥소롱’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자칫 파킨슨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노인들은 더 치명적이다.
[파킨슨병 체크리스트]
다음의 항목에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한다. 그 결과 1번이나 2번의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1~2개 항목에 ‘예’라고 답했다면 파킨슨병일 가능성이 약간 의심되고, 3~4개 항목이면 파킨슨병 의심, 5개 이상의 항목이면 파킨슨병일 가능성을 강력하게 의심해봐야 한다.
1.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거나 누워있을 때, 나도 모르게 손, 발 또는 턱이 떨린다.
2. 신체행동이 느려지고, 팔이나 다리가 무겁거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많이 든다.
3. 근육이 뻣뻣하고, 조이거나 당기는 느낌이 들면서 관절운동의 장애가 느낀다.
4. 방바닥에서 혼자 돌아눕기 힘들고, 침대나 의자에서 혼자 일어서기가 힘들다.
5. 걸을 때 한쪽 다리가 질질 끌린다.
6. 걸음걸이가 종종걸음이 되면서 보폭이 짧아지거나 한쪽 발을 끌면서 걷는다.
7. 걸을수록 속도가 빨라져 앞으로 넘어지려고 한다.
8. 직접 쓴 글씨가 점차 작아지고 알아보기가 힘들어졌다.
9. 얼굴의 표정이 줄어들면서 굳어있다.
10. 잠자는 중에 잠꼬대를 심하게 하면서 헛손질을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서울아산병원 파킨슨병센터 정선주 교수,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