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 이후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진영에선 ‘변화와 개혁’을 외치는 등 정치권의 이해득실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 ||
한나라당은 공세를 퍼붓는 듯하더니 이내 이명박 전 서울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경쟁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외치기 시작했다. 마치 고승들의 선문답 같은 이런 광경은 대선 방정식상 ‘손학규’ 변수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가면 죽는다’라는 경고가 여의도에서 경구처럼 회자되던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뛰쳐나간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한 여론흐름 역시 의외였다고 할 수 있다. 여론조사마다 다르다 해도 일단 찬반 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평가를 유보하는 현상이 뚜렷했으며, 호남과 충청에서는 아예 잘했다는 여론이 우세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그 동안 기껏해야 5%를 전후하던 손 전 지사의 지지도가 10% 안팎의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다. 정치인의 ‘탈당’ 자체는 일반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손 전 지사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쉴만 한 여론반응이다.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으로 나타난 쪽은 당연히 친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였다.
탈당 직후 실시된 조선일보와 한국갤럽과의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층의 48%가 반대한 반면, 열린우리당(40%)과 민주당(58%), 민주노동당(52%)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호남권에서 탈당 찬성(47%)이 반대(10%) 의견보다 높았으며, 충청에서도 찬성(37%)이 반대(28%)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실제 손학규 전 지사의 지지도가 올라간 층 역시 호남과 충청 지역 그리고 30대 남성 화이트칼라 층에서였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기준으로 보면 비한나라당 성향의 ‘개혁진보’ 성향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받은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 친여 성향 유권자들이 ‘적장 손학규’의 결단을 환영하며 그를 대안으로 여기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손 전 지사 측 입장에서는 비한나라당 진영의 ‘대항마’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탈당 직후의 여론흐름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탈당에 대해 유권자들의 입장은 ‘유보적’이다. 지금 나타나는 예상 밖의 긍정적 여론은 ‘유동층’의 입장이 흐름에 반영되지 않은 착시효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과 여론주도층을 중심으로 ‘배신자론’이 확산될 경우에는 모처럼 나타난 지지도 상승흐름이 ‘반짝 효과’로 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또 비한나라당 진영의 유권자들 역시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려있던 대선구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 또는 기대감 정도를 보여준 여론일 뿐, 실제 ‘손학규’ 지지층으로 전환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렇게 적의 불행을 기뻐하는 정도의 ‘대항마론’에 입각한 반사이익은 오래가지 못하며 앞으로 오른다 해도 대략 15% 안팎을 최대치로 볼 수 있다.
현재 한나라당 후보 대 비한나라당 진영 후보의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이명박 전 시장은 70%, 박근혜 전 대표가 60% 이상의 지지도를 얻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비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을 최대 40%로 잡는다 해도 민노당 지지층 등 진보성향 유권자 약 10%, 부동층 집단 약 15% 등을 빼면 호남과 충청을 중심으로 15% 정도를 한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 상황에서 손 전 지사는 반사이익이 아닌, 자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상황이 아니다.
손학규 전 지사는 특성상 ‘중도층’, 즉 지난 대선에서 정몽준 의원을 지지했다가 후보단일화 이후에는 노무현 후보를 최종적으로 지지했던 ‘수도권 40대 중산층’을 견인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 그 층은 이명박 전 시장의 초기 핵심 지지층으로 ‘이명박 대세론’의 뿌리가 되고 있으며, 이번 여론흐름에도 거의 지지이동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전 시장은 중도와 보수 유권자 모두를 통합한 후보로서 손 전 지사가 차지해야할 중도층을 굳건히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 손학규 전 지사 탈당에 대한 평가 | ||
일단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원희룡 의원을 포함해 ‘동조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고진화 의원 등이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입장이 모호하다. 이렇게 동조자 한 명 없이 혈혈단신으로 벌판을 나선 손 전 지사로서는 빠른 후속 동선을 통해 자신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 모아 ‘상승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드림팀’ 러브콜의 대상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으로부터 돌아온 첫 번째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다. 이러한 반응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진대제 전 장관은 최근 정치에 대한 일관된 거리두기 행보가 나타나고 있고, 정운찬 전 총장 역시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만약에 정치를 한다 해도 대항마 부재론 속에서 등장하는 ‘메시아’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중도지대의 주도권을 선점하고 향후 한나라당 대항마로 자리매김하려는 손 전 지사와는 정치적 목표나 이해관계가 유사하다. 그러나 이번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중도 제3지대의 구심점으로 ‘옹립’되는 시나리오는 어려워진 상황으로 자칫 정치권 진입 기회가 차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상황을 ‘환영(?)’하기만은 쉽지 않다.
사실 이번 탈당에 가장 큰 기대를 갖는 측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제3후보 영입에 열을 올리던 비한나라당 진영의 중도적 정치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손 전 지사 입장에서는 적어도 탈당 초기에는 이들의 ‘구애’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탈당 명분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구여권이 아닌 독자적 세력을 라인업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편 구여권을 중심으로 ‘손학규 경계론’ 역시 확산되고 있다. 구여권 내부의 흐름을 살펴보면 서부연합 복원을 중시하는 ‘중도신당파’와 아직까지 불투명하긴 하지만 서부연합론을 반대하고 독자적 범진보 그룹을 형성하려는 ‘진보신당파’로 갈래가 나뉜다 할 수 있다.
전자에 속하는 측은 김한길 의원 중심으로 탈당한 23명, 그리고 민주당, 대권주자로는 정동영 전 의원 및 범 DY계 의원 등이 있을 수 있다. 대체로 이들은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해 특별히 적대적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는 세력이다. 향후 새로운 중도신당의 동반자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현재 열린우리당의 친노직계 세력, 그리고 김근태 전 의장 등이 중심이 되는 재야 세력 등은 향후 범여권의 새로운 구심점을 만드는 데 있어 손학규 전 지사가 경쟁상대가 되며 견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비록 정치인 개개인마다 생각이 달라 하나의 흐름으로 분석하기는 어려우나 이들은 향후에도 주로 진보적 시민사회 그룹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접근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중도에서 보수 정도의 스펙트럼을 가지는 손 전 지사와는 정책 노선 상에서도 실제 상당한 거리가 있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손 전 지사 탈당 이후 구여권에서 ‘부정적’ 반응을 보인 측은 대체로 ‘호남주의’ 경향에 반대하는 비 서부연합파 중심의 인사들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이들의 공통점은 성향이나 정치이력이 ‘중도’에 가깝고 반노무현 또는 탈노무현 정서가 강한 동시에 인천, 경기, 충청 등 중부권 중심의 비호남 정치기반을 가지고 있거나 비례대표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으로 가는 길이 사실상 막혀있는 시점에서 서부연합 진영에도 합류하기 힘들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한 ‘열린우리당’에 있을 수도 없는 이들로서는 새로운 중도 보수신당을 주창하며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와 가장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손학규 전 지사는 일차적으로 중도보수 성향의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동시에, 대선 경선에서도 승리해야 하며 나아가 ‘중도’를 넘어 진보그룹의 지지까지 받아 내야만 과거 대선에서와 같은 5:5 싸움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뿐더러 앞으로 연대할 대선주자들과의 경선 경쟁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손학규 전 지사가 모든 것을 잘 풀었다 하더라도 최대 난관은 바로 ‘이명박 대세론’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 타 후보의 등장이나 정치세력 간 이합집산을 통해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후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 전 시장은 사실상 30% 안팎의 진보 유권자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유권자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손 전 지사로서는 이 전 시장이 장악하고 있는 중도유권자를 뺏어올 만한 이슈를 만들기가 쉽지 않으며, 성향상 차별화하기도 어려워 여전히 상대적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 약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눈여겨 볼 점은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도가 돌발변수에 의해 무너지거나, 한나라당발 대형 악재가 출현할 경우 손 전 지사는 이명박 전 시장으로부터의 이탈층 또는 중도성향의 한나라당 이탈층을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도가 내려간다면 그의 핵심지지층인 ‘중도층’의 특성상 박근혜 전 대표에게 옮겨갈 가능성은 적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손학규 전 지사의 정치적 모험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층 붕괴 속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다대표로 이동하기보다는 손 전 지사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이탈하는 중도층을 잡는다 해도 손 전 지사를 포함한 구여권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즉 비한나라당 진영의 또 다른 축인 ‘진보’ 유권자까지를 통합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민노당은 지난 총선에 이어 작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10%가 넘는 꾸준한 정당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민노당 후보가 3.9%의 득표를 기록했다 했을 때 만일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 대선주자의 지지도가 5%만 넘어도 비한나라당 진영의 승리가 쉽지 않은 것이다.
손학규 전 지사는 ‘둥지’와 ‘동지’를 버리고 홀로 벌판에 나갔다. 일생일대의 최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여정은 단 한 가지도 쉬운 것이 없는 험로라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고비는 중도 제3 지대의 간판이 될 ‘정운찬’ 전 총장 등 간판급 스타들의 합류여부다. 또 열린우리당 등 비한나라당 진영의 대거 이동과 함께 한나라당에 남아 있는 몇몇 우호세력의 합류도 무시할 수 없는 모멘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만의 이슈를 만들고 이명박 전 시장의 ‘신화’를 창조했던 수도권 40대 중산층도 데려와야만 한다. 나아가 ‘진보층’을 포함한 비한나라당 진영을 통합해야지만 승산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정치사에 ‘보따리 장수가 성공한 적이 없다’는 사례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