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민주당 탈당파와 자민련, 무소속 의원들이 참여하는 제3교섭단체 출현이 이번 대선에서 새로운 변수로 부상할지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무성했던 제3교섭단체의 출범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자민련이 일단 유보 입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자민련은 11일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의원들과 공동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문제를 놓고 마라톤 의원총회를 열었다.
▲ 민주당 장성원 유용태 송영진 의원(왼쪽 두번째부터)이 9일 탈당을 선언했다. 맨왼쪽은 4일 탈당한 송석찬 의원. 임준선 기자 | ||
이양희, 이재선 의원 등은 “지역구 기초•광역의원과 당직자들의 의견을 구해봐야 한다”면서 “교섭단체가 신당이나 특정후보 지지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며 강력 반발했다.
당내 반발에 무릎 꿇은 JP 일부 의원은 JP의 2선 후퇴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제3교섭단체 구성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자민련 지도부는 사실상 당내 의원들의 ‘항거’에 무릎을 꿇고 만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JP의 힘이 완전히 빠진 것 아니냐”며 자민련의 독자적 생존력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자민련의 이 같은 입장에도 불구하고 후단협 소속 일부 의원들은 제3교섭단체 구성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후단협 소속 의원 11명과 무소속 안동선 의원 등은 12일 회동을 갖고 독자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후단협 소속 설송웅 의원은 “자민련 입장을 계속 지켜보겠다”면서도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끼리라도 해야 한다”고 말해 제3교섭단체 구성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물론 후단협 소속 의원들 모두가 제3교섭단체를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의원의 경우는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한나라당행을 결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제3교섭단체가 어떤 형식으로든 구성될 경우 이는 대선정국에서 또다른 변수로 부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제3교섭단체는 후단협과 자민련, 그리고 이인제 의원과 호남 일부 중진의원들이 가담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정간 단일후보가 탄생하기 전에 이 제3세력이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단일화과정에서부터 실력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론 후보단일화 협상이 결렬될 경우 제3교섭단체론이 탄력을 받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노 후보가 정 후보측이 그동안 주장해온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를 전격 수용한 것도 바로 이런 역학구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노 후보는 후단협과 추가탈당파에 대한 명분을 사전에 없애기 위해 이 같은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단일화 방안에 대해 노 후보는 지난 10일 “전국 8개 권역에서 TV토론을 거친 뒤 오는 15일까지 권위있는 여론조사 기관을 통해 여론조사를 실시해 결과에 승복하겠다”며 단일화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 지난 5월 함께 라운딩을 한 김종필 자민련 총재 와 이인제 의원. | ||
오히려 노 후보의 후보단일화 전략은 자신들을 압박하기 위한 선제공격이라는 점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격수용의 속뜻 제3교섭단체 출현 가능성과 파괴력은 최근 탈당설이 나도는 이인제, 박상천, 정균환, 이협 의원 등 이른바 민주당 내 중진의원들의 향후 거취와도 무관치 않다.
사실 이들은 최근 여러 차례 회동을 가지면서 자신들의 거취에 대해 논의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인제 의원의 경우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도 두세 차례 만나 정국현안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호남과 충청의 대표성을 띠는 이인제-박상천-이협 의원 등이 탈당해 일정 정치세력을 만들 경우 호남지역 의원들이 추가로 탈당해 힘을 가세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들 중진의원들은 향후 거취에 대해 입장 표명을 꺼리고 있다. 이협 최고위원은 11일 “노 후보가 단일화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면서도 “잘 되기를 바라지만 단일화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신하기 어렵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박상천 최고위원도 “일단 단일화 협상의 진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설령 후보단일화가 되더라도 반노 입장에 있는 이들이 노 후보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굽힐지는 미지수다.
박 위원측의 한 관계자는 “중도개혁을 표방하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며 노 후보는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인제 의원의 경우는 한발 더 나간 상태다. 이 의원측의 핵심관계자는 “탈당은 아직 아니다”면서도 “조만간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천측 “노 후보는 아냐” 이 관계자는 “제3신당 즉 이른바 중도개혁 신당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며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로 이 의원은 “싸우지도 않고 전쟁이 사실상 끝나고 있다”며 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자민련 고위관계자로부터 “제3신당이 출현할 경우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보자는 중대한 제의를 받고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제3신당 출현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후보단일화와 제3교섭단체의 묘한 상관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한 핵심측근은 “최근 JP와 이인제, 후단협 의원들이 심상치 않다”면서 “이들 주변의 자금 흐름을 고려할 때 그 배후에 여권 핵심부가 개입한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른바 제3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나선 것.
한나라당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제3교섭단체가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등 대선정국의 또다른 변수로 등장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정치권은 해석하고 있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최대변수인 후보단일화와 이에 따른 제3교섭단체론이 정치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