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신임 당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허니문 종료의 첫 징후는 당내에서부터 포착된다. 이 대표가 당직자 출신인 점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당직자들이 좀처럼 이 대표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앞서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당 사무처에서 인기가 하한가였지만 이 대표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가 주류였다. 한 고위 당직자가 토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 전 대표가 당 사무처에서 인기가 최악이었던 이유는 주중이나 주말에 예고 없이 불쑥 당사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어슬렁어슬렁 들어와서는 등 뒤에 서서 ’니 지금 뭐하노. 그거 함(한번) 들고와봐라‘라고 한다. 읽으면서 ’이건 안돼 저건 안돼‘ 빨간펜을 긋고 그러니 해당 직원이 일할 맛이 났겠는가. 그런데 이 대표는 그 이상이다.”
그는 이 대표가 현장에서 직접 뛰는 근면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했다.
“우선 이 대표는 당사의 불이 일찍 꺼지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취지로 당직자들을 채근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너희들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하지만 업무영역별로 당사에 남아 있어야 할 일과 현장에서 누비는 일이 있다. 당직자 출신이 당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혹은 당직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실망감과 배신감이 사석에서 공론화된다.”
당 사무처에서는 이 대표가 쥔 실권적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내년 대선을 지휘한다는 점을 빼고는 권한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다른 한 당직자는 “이 대표가 당직자 출신을 사무부총장에 기용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사무부총장이 꿈이 아니다”라며 “정치를 하고자 뛰어든 우리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공천권은 이번 이 대표의 권한이 아니다. 태생적 한계”라고 했다. 당 장악력은 결국 인사권, 좁게 말해 공천권에 있는데 이 대표에겐 공천권이 없기 때문에 당을 장악하기 어려울 것이라 귀띔했다.
두 번째 징후는 당내 동료 의원들로부터 드러내고 있다. 지난 17일 하태경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정현 대표 체제는 사실상 4개월”이라고 한계 지으며 “정권재창출의 핵심 주체는 당 대표가 아닌 대통령 후보로 내년 초부터는 대통령 후보 중심의 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표의 사실상 임기는 연말까지, 즉 4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방점을 찍었다. 하 의원의 발언이 논란이 됐고, 이제 막 선출된 당 대표에게 너무했다는 비판도 일었지만 당내 기류는 하 의원의 맹공과 많이 닮아 있다. 이 대표와 가까운 친박계 3선 중진 의원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4선 이상의 중진들 사이에서 이 대표를 당 대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문제다. 친박계에서부터 그의 선출 정통성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당대표-최고위원-중진 연석 간담회에 아직 서청원 전 최고위원이나 최경환 의원조차 한번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당 대표가 한마디하면 옆에서 맞장구를 쳐 줘야 할 분들이 모습도 안 보이니 이 대표에게 힘이 실리겠느냐.”
4선 이상급의 비박계 의원은 “어디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것”이라며 “솔직히 요즘 당 지도부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보면 이 대표가 정진석 원내대표와 위치를 바꿔야 할 것 같지 않은가”라고 했다. 이어 “이 대표가 이 상태로 나가면 우리도 행동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얽혀 있는 ’서별관회의 청문회‘ 등 정국의 핵심 두 현안에 대해 이 대표는 침묵하고 정 원내대표는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을 빗댄 비난이었다.
이 대표는 24일 우 수석 사태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역균형발전도 필요하고, 적조현상이 심해서 거기에 대한 걱정도 많고, 구조조정이다 일자리다해서 추경이 지연되는 것도 걱정이고”라며 동문서답했다. “벼랑 과일이 익을 때 비나 햇빛과 비나 구름의 역할도 있지만 바람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로도 슬쩍 비켜갔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대단한 고위직 공직자이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하찮은 존재”라면서 “선출직 공직자든, 임명직 공직자든 임명권자는 국민으로 ’나는 임명직이니 임명권자(대통령)에게만 잘 보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교만”이라고 썼다. 이후 기자들과 만나선 “순리와 상식이다. 대단한 이야기를 쓴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패자는 말이 없다는 얘기도 옛말이 됐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비박계 단일 후보로 나선 주호영 의원은 연석 간담회에서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있고 지고도 이기는 싸움이 있다. 피로스의 승리란 말도 있고 승자의 저주란 말도 있다”며 “우 수석 문제는 이기고도 지는 문제가 될까 걱정이다. 당이 민심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전대 출마를 저울질했던 나경원 의원도 “우리가 질서 있게 움직여야 하지만 당이 조금 더 국민의 목소릴 담아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 대표가 더는 우 수석 문제에 침묵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김무성계로 손꼽히는 김성태 의원은 아예 “이 대표는 자신의 처신이 민심을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집권당 공당의 대표인지 일손을 잠깐 내려놓고서라도 되새겨봐야 한다”면서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을 잘 아는 그런 당 대표로서 이 시점에 해야 할 처신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실행하는 게 이 대표를 선택한 우리 당심이라고 받아들여줬으면 한다”고 일격했다.
허니문의 마침표는 야당에서 찍었다는 것이 당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당 한 관계자는 “최근 이 대표를 향한 야당의 논평이 적정 수위를 넘어섰다. 하지만 우리로선 대응논리가 없다”면서 “청와대에 직언을 못하니 폭탄만 맞고 있다”고 했다.
최근 국민의당은 이 대표를 향해 “취임 이후 처신을 보면 그냥 무기력한 식물대표 같다”고 논평한 바 있다.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새누리당은 결국 청와대 부속실 정당이 되고 말 것인가”라며 “이 대표의 몸 사리기는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정무수석의 자세라면 모를까 집권여당 대표의 모습일 수 없다. 방패막이가 따로 없다”고 브리핑했다. 실로 취임 2주를 맞은 집권여당 대표의 고립무원이다. 폭염 속에 이 대표를 바라보는 주위만 냉각기류다.
이정필 언론인
메뚜기도 한철? 김영란법 시행 앞두고 때아닌 접대 ’러시‘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여의도는 요즘 메뚜기 한철이라고 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9월 28일 전까지 최대한의 접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다음달 추석 선물은 최대한 당겨 받는다는 것이 주류다. 한 의원 보좌진은 “추석 선물을 어떻게 할까요, 라는 질문이 많은데 평소대로 해달라고 한다”면서 “추석 선물이 없으면 생돈을 내야하는데 마지막 ’돌려막기‘라 생각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미 국회 의원회관에는 때이른 추석 선물이 속속 배달되고 있다. 다만 과거엔 의원회관 복도에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선물이 의원회관 의원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는 것이 달라진 풍경 중 하나다. 최근 부쩍 좋은 부대로 배치해달라는 ’꽃보직 청탁‘도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실마다 난리란다. 한 의원실은 “좋은 부대나 좋은 자리로 해달라는 청탁이 곧 끊긴다는 이야기에 영감(의원을 이렇게 통칭한다) 지인들의 부탁이 말 그대로 법석 수준”이라며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을 국방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얘기를 꺼내는 우리도 그 얘기를 듣는 저쪽도 조심스러운 눈치”라고 뒤띔했다. 보건복지위는 종합병원 진료 및 수술 날짜 당기기, 입원실 찾기 등의 민원이 홍수라고 한다. 더민주 복지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 유지나 동료 의원들의 병실 민원이 그야말로 물량공세”라며 “어서 법이 시행돼 양심이 찔리는 청탁이 법적으로 차단됐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푸념했다. 9월 정기국회 전에 국회에 적은 둔 직원들과 보좌진 사이에 주말 골프 약속도 러시다. 10월 이후 모든 약속을 비우고 모두 9월 법 시행 전으로 당겼다는 후문이다.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토요일은 새벽 타임 한번에 3부 첫 티오프까지 하루 두 번 약속을 잡은 경우도 있다”면서 “일단 9월 28일 이후 약속은 모두 당겨놓은 상태”라고 했다. 한 의원실 측은 “앞으로 골프 부킹 청탁은 고유 업무(?)에서 제외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국회 300개의 의원실마다 김영란법 대응 학습에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한 의원실은 지방자치단체에 김영란법 A~Z까지를 집대성해달라고 주문했다는 얘기가 있다. 의원실의 직급 보좌진들끼리의 카톡방에는 이럴 경우엔 어떻게 되나라는 질문과 답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교환된다. 더 나은 김영란법 대처 매뉴얼을 찾느라 피감기관끼리는 숨은그림찾기가 한창이다. 한 의원 비서관은 “오히려 구체적인 사례를 묻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법이 느슨해야지 구체화될수록 활동 반경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의도 주변 식당에서는 벌써 ’김영란 세트‘ 메뉴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주류도 한 병씩이 아니라 한 잔씩 제공한다는 이야기도 파다하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에서부터 법 조항 사이에서 갖은 탈법 행위가 횡행할 것이란 우려가 교차한다. 무엇보다 여의도 주변 식당가가 울상이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