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 퍼져있는 혈관의 전체 길이는 무려 10만㎞. 이 혈관 속에 흐르는 혈액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한편, 불필요한 노폐물과 독소를 실어 나른다.
보통 체중의 약 8%가 혈액으로, 5000~7000㏄ 정도의 혈액이 흐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중 50~60㏄는 매일 제거되고, 또 그만큼씩 새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혈액검사를 위해 혈액을 조금 뽑는 정도로는 문제가 없다.
혈액검사를 하면 몸속의 어떤 장기가 커지거나 작아지는 등의 형태 변형이 없이 성분과 기능이 변하는 병들을 보다 빨리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내분비장애나 간염, 당뇨, 빈혈, 고지혈증, 약물중독, 중금속중독 등이 대표적인 질병이다.
혈액은 크게 혈구와 혈장 성분으로 나뉜다. 혈액의 1/2 정도를 차지하는 혈구에는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는 적혈구와 세균을 잡아먹는 백혈구, 혈액 응고작용을 하는 혈소판이 있다. 나머지 절반은 대부분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혈장이 차지한다. 혈장에는 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염분, 칼슘, 인 외에도 수많은 성분이 들어 있다.
이들 성분 중에 어느 하나만 이상이 있어도 크고 작은 질병의 신호가 된다. 만약 백혈구 수가 지나치게 높으면 백혈병이나 심한 염증이 생겼는지 봐야 한다. 특히 많은 성분이 녹아 있는 혈장을 잘 분석하면 보다 많은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
요즘 어쩐지 몸이 무거워 ‘병원에 한 번 가봐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던 사람이라면 혈액검사를 통해 피로, 스트레스 정도와 원인까지 파악이 가능하다. 몸속에 불필요한 물질이 누적되면 피로가 찾아오는데, 젖산이나 요산 등의 노폐물도 그 중 하나다. 또 철분이나 비타민, 단백질 등이 부족해서 생기는 빈혈이나 당뇨병, 간질환 등의 질환이 있어도 피로를 심하게 느낀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잘못된 다이어트로 인한 피로도 의심할 만하다. 무조건 식사를 거르는 등의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면 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이 부족해서 근육이 줄어든다. 근육이 부족하면 같은 활동량에도 더 피로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다이어트를 할 때는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면서 적당한 유산소 운동+근육운동을 병행해서 건강하게 살을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기 암도 혈액검사를 하면 발생 유무를 알 수 있다. 정상 세포에서는 나오지 않고 암세포에서만 나오는 단일클론성항원 등의 성분이 있는지 보는 검사가 그것이다.
흔히 암이 걱정될 때는 CT나 MRI 같은 고가의 검사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CT 검사를 해서 암을 발견하려면 암 덩어리가 5㎜로 커져야 가능하다. 이때는 이미 전이된 상태일 수 있어서 조기 발견은 어렵다”는 것이 서울메디칼랩 김형일 원장의 주장이다.
암에 걸렸을 때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거나 반대로 줄어들기도 하는 물질을 종양표지자라고 하는데, 암에 따라 몇 개 또는 몇 십 개까지도 발견된다.
한 가지, 종양표지자가 나오거나 증가했다고 해서 100% 암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혈액검사에서 이상이 있더라도 조직검사를 통해 실제 암으로 확진되어야 한다. 악성이 아닌 양성종양이 생겼을 때도 종양표지자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확진 전에 미리 지나친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김형일 원장은 “진단 정확도를 높이려면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발병 위험이 큰 암을 선택, 다양한 종양표지자 검사를 함께 실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인류의 최대 난치병이 암인 만큼 종양표지자 검사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혈액검사만으로 위암을 진단하고 예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희구, 박육필 박사팀이 정상인과 위암 환자의 혈액에서 각각 ‘MAC2BP’라는 단백질의 함량을 측정한 결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MAC2BP’를 위암의 종양표지자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 연구결과를 올 2월에 <암 국제저널>에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별 증상이 없어서 치료시기를 놓치기 쉬운 간암을 초기 단계에서 포착할 수 있는 혈액검사법이 해외에서 개발되기도 했다. 벨기에 플랑드르 생명공학연구소의 천 치티 박사는 의학전문지 <간장학> 최신호에서 “간암 환자에게 나타나는 혈액단백질과 결합하는 두 가지 특정 당의 수치에 따라 간암 초기인지 말기인지, 종양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천 박사는 또 “이 혈액검사법의 간암진단 정확도가 70%”라며 “현재 간암진단법의 하나로 시행되는 알파태아단백(AFP) 검사와 병행하면 정확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새로운 진단기술이 속속 개발되면서 1960년대에 처음 시작된 대장암표지자, 간암표지자 검사를 시작으로 지금은 대부분의 암을 혈액으로 진단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장암, 간암처럼 시약만 있으면 어느 병원에서나 할 수 있는 보편화된 검사가 있는가 하면 눈에 생기는 안구암처럼 진단 기술은 개발되었지만 시약이 비싸거나 만들기 어려운 등의 이유로 인해 아직 보편화되지 못한 검사방법도 있다.
혈액검사의 비용은 어떤 검사를 받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간단한 빈혈검사를 한다면 3000원 정도인 데 반해 췌장암 표지자 검사의 경우에는 40만~50만 원 선으로 비싼 편이다.
혈액검사에 대한 오해 한 가지! 혈액검사를 해서 알 수 있는 질병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질병의 유무를 확인하려면 해당 검사를 모두 받아야 가능하다. 만약 당뇨병인지 알아보는 검사를 받았다면 간질환이나 췌장암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평소 생활습관이나 가족력 등으로 인해 걱정되는 질병이 있어서 빠뜨리지 않고 확인하고 싶다면 기본 혈액검사 항목에 의사와 상의해서 추가할 혈액검사 항목을 정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필요한 항목만 검사를 하는 만큼 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검사를 받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위암 환자가 있거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된 사람, 스트레스가 많고 성질이 급한 사람, 악성 빈혈이나 만성 위축성 위염, 위 용종 등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암 표지자 검사를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서울메디칼랩 김형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