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반드시 정권 교체하라는 명령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어게인 2012’인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지난 4·13 총선에서 나타난 독자 세력화를 위한 방아쇠를 잡아당긴 셈이다. 더 이상 ‘철수’는 없다는 선전포고다.
하지만 그의 대권 도전 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절대 우위를 점했던 스윙보터(swing voter·특정 정당이 아닌 정책이나 이슈에 의해 움직이는 계층)층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안 전 대표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안철수 대망론’은 대세론으로 더는 진화하지 못한다. ‘확전’과 ‘소멸’ 경계에 선 ‘안풍’(안철수 바람)의 대권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 공동대표가 8월 17일 성남 코리아 디자인센터에서 성남시민사회포럼 청년위원회 초청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안 전 대표 명암은 뚜렷하다. 그의 전매특허는 ‘새 정치’였다. ‘87년 체제’ 이후에도 어김없이 제3 후보가 등장하며 거대 양당이 흡수하지 못한 20∼25%인 중도 무당파를 앞세워 대권에 도전했다. 1992년 정주영 국민당·박찬종 신정치개혁당, 1997년 이인제 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 국민통합 21, 2007년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들이 그랬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후로 분 ‘안풍’(안철수 바람)은 그간 제3 후보의 파괴력과는 달랐다. 더민주 한 관계자도 “수년간 계속된 안 전 대표의 높은 지지율은 분명히 그간 제3 후보와는 다른 점”이라며 “더민주 역시 야권지지층이 분열된 채 대선 정국을 돌파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이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실제 박찬종·이인제·문국현·정몽준 등은 일제히 조직력, 독자 세력화 의지 등 리더십에 아킬레스건을 드러냈다. 1987년 대선에서 양김(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단일화를 촉구하며 삭발한 박찬종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한국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한 것이나, 그해 신한국당을 탈당한 이인제가 대선 낙선 후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몽준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파기 후 결국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창조한국당도 대선 뒤 끊임없이 민주당과의 합당설에 시달렸다. 안 전 대표도 2014년 3월 김한길 호의 민주당과 전격 합당,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탈당, 4·13 총선에서 38석을 차지해 최대 승자로 등극했다. 역대 제3 후보가 이루지 못한 탈당 후 독자 세력화 구축에 안착한 것이다.
그간 제3 정당은 ‘선거용 창당’에 머물렀다. 박찬종은 부산·경남(PK)에서 YS 다음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독불장군식’ 리더십 탓에 조직력도 인물도 없었다. 자금력이 부족했던 문국현은 2008년 18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후보 공천 대가로 6억 원을 불법 수수한 혐의를 받아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 결국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정몽준은 2002년 대선 전날 단일화를 파기, 리더십 부재에 시달렸다.
안 전 대표는 2011년 이후 만 4년간 정국의 중심에 섰다. 네 번의 철수(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2012년 11월 23일 대통령 후보 불출마, 2014년 7월 새정치연합 7·30 재보선 참패 이후 대표직 사퇴, 2016년 6월 29일 홍보비 리베이트 파문에 따른 책임으로 국민의당 대표직 사퇴)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다.
‘무균질 정치’를 내세워 정치에 매몰된 박찬종이나, 경제에 올인한 문국현·정몽준과는 달리 ‘새 정치’에다가 ‘공정성장’ 등 경제 담론을 플러스알파로 장착했다. 세대(2040)·지역(호남과 PK)·이념(중도 무당파) 등 선거변수에서도 두루 경쟁력을 갖췄다.
그러나 암초도 적지 않다. 크게 ▲독자노선 ▲반기문 현상 ▲호남 전성시대 등 세 가지 암초를 넘어야 한다. 일단 독자노선은 ‘야권 후보 단일화냐, 3자 필승론이냐’의 문제다. 안 전 대표는 더민주 8·27 전대 직후 방문한 광주와 부산 등지에서 친문계를 ‘과거 세력’으로 규정하며 “소선거구제에서 국민의당이 존립할 수 없다는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단일화를 일축했다.
앞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8월 18일 DJ 서거 7주기 추도식에서 “야권이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다들 뜻을 함께 하게 되리라고 믿는다”며 결을 달리했다. ‘야권 단일화 vs 3자 필승론’ 구도에서 ‘친문 체제’를 장착한 ‘문재인 대세론’과 ‘안철수 대망론’이 정면충돌할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안 전 대표가 2012년 대선과 지난 4·13 총선 때와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당시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권과 관계없는 일종의 ‘메시아 현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재는 탈당(새정치연합) 전력도 있고 선거도 두 번(2014년 7·30 재보선과 지난 4·13 총선)이나 치른 구체제 안에 있는 기성 정치인이다. 사법부 최종 판결이 남았지만, 총선 과정에서 당은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에 연루됐다. 호남 공천권을 둘러싼 내홍도 극심했다. 중도 무당층과 2040세대 표심에 대한 소구력이 그때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새 정치’ 어젠다와 청춘콘서트로 대변되는 소통 이미지, 이념 논리에서 벗어난 중용의 정치 등이 맞물린 ‘안철수 파괴력’은 간데없고 실체 없는 ‘안철수식’ 정치만이 나부끼는 상황이다. 4·13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를 탈당한 호남파 의원들과 손잡은 안 전 대표가 차기 대권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반문(반문재인) 세력’ 규합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안 전 대표는 9월9일 서울 호텔에서 박지원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와 함께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의 주인공인 JP와 ‘냉면 오찬’ 회동에 나선다.
더민주 내부는 안 전 대표가 더민주만 ‘비토’하는 행보에 대해 불만이 팽배하다.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 의원은 안 전 대표를 향해 “대통령 후보 기반이 무너질까 봐 우리와 연대를 못 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지난해에도 탈당을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의 정치 판단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안철수 현상’을 뒤엎은 ‘반기문 현상’도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다. 현재 대권 대세론인 ‘마의 25%’를 오가는 주자는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 유일하다. ‘신선하다’는 점은 4년 전 ‘안철수 현상’을 똑 닮았다. 실체가 없기는 두 현상 모두 비슷하지만, 안 전 대표가 중도 무당파와 일부 진보층의 지지를 받은 데 반해 반 총장은 영·호남, 2040세대와 5060세대를 가리지 않고 전 계층에 높은 지지를 얻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반기문 현상’이 유엔 사무총장 재임한 지난 10년간 한국 언론으로부터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넘어 실행 능력 이미지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안철수 현상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권 내부에선 이미 반 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을 뛰어넘어 실질적인 통일 실행 프로그램을 고리로 대선에 나설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반 총장이 선제적으로 2018년 체제의 시대정신을 ‘국민통합’과 ‘통일’로 압축한다면 최대 피해자는 이념·진영 논리의 거부 행보를 보인 안 전 대표일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 표’ 공정성장 담론의 핵심축인 ‘과학기술·교육·창업’ 혁명 등 내치 이슈가 통일 등 외치 이슈에 묻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 전 대표는 스스로 말한 새 정치를 비롯해 국가 지도자로서의 국정철학 및 기조가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차기 대선주자로 부각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호남도 안 전 대표 딜레마다. 그간 4년간 지지율을 지탱해준 호남의 여론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보수정당 사상 첫 호남 출신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체제, ‘호남 며느리’ 추미애 더민주 대표 체제가 들어섰다. 이 대표는 이미 “차기 대선에서 호남 출신 유권자의 20%를 끌어올 자신이 있다”고 공언했다. 또한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소속 심재철 부의장과 국민의당 소속 박주선 의원도 호남 출신이다. 여기에 반 총장을 비롯해 제1야당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와 제3 지대론의 손 전 고문 등이 호남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수도권과 충청·영남에서 ‘반기문 대세론’ 이외 별다른 변수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 대선은 보수정당의 호남 출신, 60년 전통의 제1야당, 한때 ‘호남 대안론’이었던 안 전 대표의 국민의당, 제3 지대론의 대혈투장인 호남 표심이 승부를 결정짓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란 셈법이 나온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호남 내부에 반문(반문재인) 정서가 여전한 만큼, 호남 민심은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 호남 세력에 지지를 보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박지원 추석 전후 비대위원장직 사퇴…‘분위기 전환’이 필요해 제20대 국회의 캐스팅보트를 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추석 전후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물꼬 트인 제3 지대 정계개편이 국민의당을 흔들고 있는 데다, 당 안팎에서 ‘박지원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아서다. 특히 당 지지율과 안철수 전 상임 공동대표의 지지율이 지난 4·13 총선 대비 반 토막 나면서 ‘국민의당 위기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헌정 사상 첫 호남 대표인 이정현 호,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 역사상 첫 대구·경북(TK) 출신 당수인 추미애 대표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차기 대선 체제로 전환, 국민의당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당과 박 위원장으로선 국면전환용 체제 개편이 불가피한 셈이다. 그간 박 위원장은 조기 전대론이 불거질 때마다 “비대위 체제는 짧을수록 좋다”며 “8월 말에 거취 표명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 원내사령탑 역할에 집중할 방침이다. 그만큼 국민의당은 창당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실제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4·13 총선과 8월 정국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국민의당 위기론 실체가 수치로 증명된다. 4월 셋째 주 25%에 달했던 국민의당 지지율은 8월 넷째 주 12%로 추락했다. 6월 넷째 주∼8월 넷째 주까지 두 달간 10%∼14%의 박스권에 갇혔다. 박 위원장이 그사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반대 등 선명성을 통한 야권 지지층 결집과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 비문(비문재인)계 러브콜에 나섰지만,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 당을 늪에 빠트린 홍보비 리베이트 파동이 컸다. 안 전 대표의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한국갤럽’의 4월 넷째 주 정례조사에서 21%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17%)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7%), 박원순 서울시장(6%) 등을 앞섰으나, 가장 최근 조사인 8월 둘째 주 조사에서는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28%)과 문 전 대표(16%)가 1∼2위를 기록했다. 안 전 대표는 8%로 떨어졌다. 국민의당은 쌍두마차인 안 전 대표(8월 27∼28일)와 천정배 전 공동대표(23일)는 8월 말 나란히 호남을 방문, 호남 민심 복원에 나섰다. 박 위원장의 원맨쇼만으로는 호남 민심 복원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두 대권주자가 나선 것이다. 다만 당내 복잡한 권력 헤게모니가 해결되지 않은 채 한두 인물의 일회성 이벤트로 호남 민심이 ‘돌아와요 국민의당’을 외칠지는 미지수다. 당 한 관계자는 “그간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의존했던 국민의당이 9월 정국에서 어떤 체제로 차기 대선 정국을 준비하느냐가 당 향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갤럽의 4월 넷째 주(26∼28일)와 8월 둘째 주(9∼11일) 여론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과 1001명을 각각 대상으로, 휴대전화 임기걸기(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이며, 응답률은 21%와 20%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고하면 된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