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색깔의 각종 과일들. 다양한 색깔의 식품을 먹는 게 좋다는 이른바 ‘컬러푸드 열풍’도 색채치료와 관련이 깊다. | ||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유세 현장마다 예외 없이 오렌지색 점퍼 차림이다. 오렌지색은 가족의 행복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따뜻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색이다. 또 오렌지색에는 지혜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표 색깔은 당의 상징인 푸른색. 파란색은 희망이나 행복, 젊음을 상징하는 색으로, 목에 푸른색 머플러를 두른 이 후보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신뢰의 이미지가 강한 진한 파란색을,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안전, 희망, 안정감 등의 이미지를 주는 노란색을,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참신하고 청렴한 느낌을 주는 흰색 바탕에 열정을 뜻하는 빨강색을 함께 사용한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창당 때부터 줄곧 사용해온 주황색이 대표 색깔이다. 이처럼 어느 후보라고 할 것 없이 일반 대중에게 말보다 훨씬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수단으로 색깔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저마다 고유의 파장을 지닌 색깔이 우리의 심신에 미치는 영향을 이용하는 것이 색채치료(Color Therapy). 요즘은 색채치료가 식품은 물론 제약, 패션, 인테리어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된다. 검은색 식품을 비롯해 초록, 주황, 빨강 등의 다양한 색깔의 식품을 먹는 게 건강에 좋다는 이른바 ‘컬러 푸드 열풍’도 색채치료와 관련이 깊다.
의학 분야에서도 색채를 이용해 통증을 완화시키고 질병을 치료하는 등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색채치료 하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고대 이집트와 중국, 인도 등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용되어 온 방법이다. 인도인들의 경우, 황달에 걸린 갓난아기의 눈만 가린 채 옷을 벗겨 햇빛에 여러 시간 놓아둔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대의학 역시 햇빛의 파란색이 신생아 황달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국내에서도 색채치료가 의학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역사는 짧지만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색채를 활용해 왔다.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미술치료클리닉 김선현 교수는 “우리 조상들이 고사를 지낼 때 팥고물을 묻힌 시루떡을 하거나 동지팥죽을 쑤어먹은 것은 양의 기운을 발산하는 붉은색이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고 보면 한방에서도 전통적으로 색채치료의 개념이 사용됐다. 흔히 말하는 음양오행 사상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서로 어울려 만물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으로 인체의 각 부위 역시 음양오행에 따라 좋은 색이 달라진다. 오행에서 목에 해당하는 간에는 초록색이 좋고 화에 속하는 심장에는 붉은색, 토에 해당하는 위장에는 노란색, 금에 해당하는 폐ㆍ대장에는 흰색, 수에 해당하는 신장ㆍ방광에는 검은색이 좋은 것으로 여긴다. 약재를 처방할 때도 이런 개념이 응용된다. 예를 들어 심장이 안 좋을 때는 주사 같은 붉은색의 약재가 들어가고, 간 기능이 나쁘면 인진쑥 같은 초록색 약재를 쓰는 식이다.
크고 작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는 약에도 색채치료 개념이 쓰인다. 색채에 따라 약효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대에서 똑같은 정신병 치료약에 다른 색을 입혀 임상 시험을 했더니, 색깔별로 효능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빨강이나 노랑 등 긴 파장의 색으로 코팅된 알약은 오히려 흥분하게 만드는 반면, 파란색이나 녹색 등 짧은 파장의 색으로 코팅된 알약은 진정 효과를 보였다.
이 연구대로라면 수면제나 진정제는 파랑, 녹색으로 만드는 것이 좋고 우울증 치료제는 빨간색으로 하는 게 좋다. 실제로 수면제, 안정제 중에는 파란색이 많다. 그렇다면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파란색인 이유는? 파란색이 남성, 강직함, 신뢰를 상징하는 대표 색깔인 데다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 비아그라 | ||
관절염 약에 노란색을 자주 쓰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원래 노란색은 에너지를 상징하는 색으로 운동신경을 활성화시키고 특히 근육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만드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을 합해 만들어지는 주황색은 소화제를 만들 때 사용되기도 한다. 주황색은 소화, 식욕을 촉진시키고 몸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색이다.
겨울옷은 대부분 검은색 계열이 많다. 하지만 검은색 옷을 입으면 검은색이 빛을 흡수해 몸이 따뜻해질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다른 색깔 옷을 입었을 때보다 몸이 더 차가워진다는 것이 색채 연구가들의 주장이다. 검은색 옷이 빛의 에너지를 모두 흡수해 옷감 자체는 따뜻해지지만 빛을 투과하지 못해 체온이 더 차가워진다는 주장이다. 덜 익은 초록색 토마토 3개를 준비해 빨간색과 흰색, 검은색 천에 각각 한 개씩 싸서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놓아두는 실험을 해보면 이해가 쉽다. 따지 않고 나뭇가지에 달린 토마토가 붉게 잘 익을 무렵에 토마토를 쌌던 천을 벗겨보면 흰색 천으로 싼 토마토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것과 마찬가지로 잘 익어 있다. 하지만 빨간색 천으로 싼 것은 너무 익어버려 검은 반점이 나타날 정도가 되고, 검은색 천으로 싼 것은 익지 않고 초록색 그대로 시들어버린다.
그래서 색채 전문가들은 “너무 무채색 옷만 입으면 활력이 없고 몸이 늘어진다”며 “유행 컬러를 좇는 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 도움이 되는 색을 찾아 다양한 색의 옷을 입는 게 좋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유명 화가들의 수명과 색채 사이의 관련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창작의 고뇌에 시달리면서도 샤갈은 98세, 피카소는 92세, 달리와 마티스는 85세까지 사는 등 장수를 누린 이유가 다양한 색채의 자극으로 활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은 깨끗하게 씻은 맨 얼굴에 종이나 천을 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좋다.
도움이 되는 색이란 자신의 일정, 기분 등을 고려한 색깔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골프스타 타이거 우즈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붉은색 옷을 즐겨 입는다고 한다. 만약 중요한 미팅이나 프리젠테이션, 면접 등이 있다면 튀지 않고 절제감 있는 무채색 옷이 좋다.
보통 빨강이나 분홍, 주황, 노랑 등의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은 활기를 준다. 뇌에 자극을 주는 데는 노란색이 좋다. 초록, 파랑 등의 차가운 색은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고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회색이나 갈색, 검정 역시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건강 상태도 참고할 수 있다. 저혈압이면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빨간색을, 고혈압이면 파란색의 옷이나 소품을 쓰면 도움이 된다. 또 몸이 찬 사람은 빨간색의 옷을 입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효과가 기대된다. 반대로 열이 많은 사람은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으면 좋다.
한 가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색깔의 옷을 고를 때가 있다. 왜 그럴까. 김민경 교수는 “갑자기 어떤 음식이 유난히 먹고 싶으면 우리 몸이 그 음식의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는 뜻인 것처럼 색도 마찬가지”라며 “무의식적으로 어떤 색이 마음에 들고 많이 사용하고 싶을 때는 그 색깔의 힘을 필요로 하는 시기라는 신호로 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핑크색은 애정과 관련된 색깔로, 갑자기 핑크색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누군가에게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차병원 미술치료클리닉 김선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