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정현 새누리당 당 대표는 9월 5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절 국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국민이 뽑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했던 것 또한 사과 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대표는 “호남 출신 당 대표로서가 아니라 보수 우파를 지향하는 새누리당의 당 대표로서 호남과 화해하고 싶다. 호남은 진보도 과격도 급진도 아니다. 호남이 당장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다고 해서 변방정치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호남도 주류 정치의 일원이 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위해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동안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에서 추진해왔던 서진(西進)정책의 신호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8·9 전당대회에서도 이 대표는 ‘내년 대선 호남 20% 득표’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호남의 정서를 잘 알고 있는 이 대표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행동’에 나섰다는 얘기다.
이 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던 것과는 달리 정치권 반응은 미지근하다. 야권에선 ‘가당찮다’는 반응 일색이다. ‘호남=야권 텃밭’이라는 불문율 같은 공식 때문이다. 야권 한 보좌진은 “전형적인 정치적 쇼다. 호남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모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갑작스런 발표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개인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일단 자신의 지역구에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쳤다. 다만, 그는 “물론 새누리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호남 차별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메시지 내용엔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 역시 이 대표의 ‘호남-새누리당 연대론’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9월 5일 “호남에 대한 일방적인 구애다. 현실성 없는 언어유희에 불과한 것 같아 민망할 뿐”이라고 논평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9월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희망사항을 표현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같은 당 주승용 의원 또한 “연정·연대 문제는 정체성이 대단히 중요하다. 정책이나 노선 가치가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하는데 무조건적인 정권창출을 위한 연대는 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또한 9월 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거짓말처럼 아무 내용이 없었다. 국민들이 알게 된 것은 이정현 대표의 대통령을 향한 절절한 충심과, 달인에 가까운 유체이탈 능력뿐이다.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만 받들고, 박근혜 대통령만 흡족할 연설이었다”고 혹평했다.
당 대표로서 20대 국회 들어와 던진 첫 번째 메시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내부 분위기 또한 냉소적이다. 새누리당 친박계 한 의원실 보좌관은 “국감 때문에 정신없어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비박계 의원실 관계자도 “메시지를 위한 메시지일 뿐”이라며 썰렁한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의 야심찬 포부가 내부에서조차 이슈를 끌지 못한 셈이다.
현재 이 대표의 당내 입지는 그다지 넓지 못하다. 존재감도 미미하다는 평가다. 비박계에선 ‘대통령의 비서’라는 소리를 듣고 있고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 사이에선 ‘당직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고 있다. 유일하게 이 대표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새누리당 불모지인 호남에서 ‘배지’를 달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 실장의 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땐 좋은 이야기지만 실체가 없다. 이 대표가 당 대표이긴 하지만 당 내에서 자신의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호남에서 호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대표가 하자고 해서 당에서 호남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호남에서 상징성이 있다. 정치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호남에서 입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 반 총장은 기존 새누리당 이미지와 반대되는 면이 있기도 하고 충청, 호남 이런 식으로 외연을 확장한다면 이 대표가 말하는 ‘호남-새누리당 연대론’에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