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와 전여옥 의원(왼쪽) 사이에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 ||
전여옥 의원은 17대 국회 출범 때부터 대변인직을 맡으며 박근혜 전 대표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박 전 대표를 밀착 ‘대변’하던 전 의원은 당의 대변인이 아니라 ‘박근혜 대변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한때 전 의원만이 박 전 대표의 삼성동 자택을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전 의원은 2005년 6월 ‘대졸 대통령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을 때 박근혜 당시 대표를 찾아가 “대변인을 그만두겠다. 당과 대표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라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으나 박 대표가 “이겨내라. 인터넷에 들어가지도 말라”며 조용하고 힘있는 어조로 만류하며 무한신뢰를 보였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남달랐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균열’ 조짐이 보였던 것은 올해 초부터다. 전여옥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뒤부터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특정 주자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던 게 사실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전 의원의 충성심이 변한 것 같다. 요즘은 박 전 대표의 ‘장세동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닌가”라며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먼저 전 의원 입장에서 보면 그의 정치적 소신은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이다. 전 의원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당의 체질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4·25 재보선 참패는 당의 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논리다. 특히 박 전 대표가 대전 서을에서 이명박 전 시장과 공동유세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 상생의 정치를 추구했던 박 전 대표가 상생의 경쟁을 거부하는 것은 모순이다”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전 의원은 대전 서을 유세에 앞서 박 전 대표에게 ‘이 전 시장은 유세 때도 자기 자랑만 할 것이지만 박 전 대표는 원칙적인 이미지를 계속 강조한다면 오히려 두 사람이 대비가 돼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할 것’이라며 공동유세를 강하게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절대 안 된다’며 거부하자 전 의원이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전 의원이 이명박 대세론이 나온 이후부터 변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 전 의원이 박 전 대표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뒤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있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
일각에서는 전 의원이 최고위원 사퇴 직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려 한다’는 소문까지도 떠돌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거침없는 행보도 박 전 대표의 대변인을 지내면서 자신에게 짙게 배어있던 ‘박근혜 색깔’을 빼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조금이라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고 불쏘시개나 치어리더로 나가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 아니겠느냐”며 경선 참여를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박 전 대표가 캠프에서 인의 장막에 가려져 제대로 정국을 볼 수 없게 되자 그를 지원하기 위해 전 의원이 의도적으로 박 전 대표 캠프의 인사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해석이 그것. 이는 전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는 것보다 그의 주변 측근들을 향해 독설을 날리는 것과 무관치 않다. 전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 박 전 대표와는 요즘도 자주 전화통화를 한다. 재보선 직후 최고위원 사퇴할 때도 했고, 이틀 전인가도(5월 1일) 했다. 박 전 대표가 강 대표를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러나 강 대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다. 이번에 이재오 최고위원이 먼저 사퇴를 하고 흔들었어야 하는데 왜 ‘친박’으로 분류되는 강창희 전여옥 두 사람이 먼저 사퇴했는지, 박 전 대표가 그 충정을 잘 알았으면 했는데…”라고 밝힌 바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박 전 대표를 둘러싸고 있는 ‘종교집단’ 같은 의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주변이 문제다. 주변에 박 전 대표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들이 없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전 의원은 지난해 7월 전당대회 때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이재오 강재섭에 이어 3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대중적 정치기반이 만만치 않다. 그런 영향력이 있는 전 의원이 최근 들어 박 전 대표와 거리를 두며 ‘친이’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당내 세력 균형이 박 전 대표에서 이 전 시장으로 넘어가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규정하는 시각도 있다.
한편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평소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런 점에서 ‘될 만한 후보를 밀어주려는’ 전 의원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한나라당에 정권 재창출의 선물을 안겨줄 최선의 후보를 찾기 위한 전 의원의 변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