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 에이즈 환자의 모습(위)과 전도연이 에이즈에 걸린 다방 종업원으로 나오는 영화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 ||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병이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고도 한다.
알려진 것처럼 HIV에 감염되더라도 잠복기가 길어 바로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에이즈 감염 여부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온 지 4~12주, 사람에 따라서는 6개월에서 2년 정도 지나야 항체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 시기가 돼야만 진단이 가능하다.
“때문에 HIV에 감염된 사실 자체를 모르고 지내다 심각한 기회감염이 발생하거나 암이 생긴 후에야 에이즈로 진단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 을지대학병원 감염내과 윤희정 교수의 설명이다.
기회감염이란 정상인에게는 노출되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바이러스나 곰팡이, 기생충, 세균 등이 면역력이 떨어진 에이즈 감염자에게 병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심한 경우 기회감염 때문에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HIV는 감염 초기와 말기에 전염력이 가장 높다. 이 시기에 바이러스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치료를 받는 도중의 감염자보다 초기·말기 환자의 혈중 바이러스 농도가 1만 배 이상 높다.
특히 가장 위험한 시기는 감염 초기. 혈중 바이러스 농도는 높지만 혈액검사에선 음성으로 나와 감염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전염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HIV에 감염되면 모두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보고에 의하면 HIV에 감염된다고 모두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감염자의 절반가량이 감염된 지 8~10년 이내에 에이즈 환자가 된다(성접촉에 의한 감염일 경우. 수혈로 인한 감염이라면 이보다 기간이 짧아 3~4년 후에 에이즈로 이행한다).
쉽게 말하자면 HIV 감염자는 몸속에 에이즈바이러스(HIV)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에이즈 환자는 감염 후 면역체계가 파괴돼 2차적인 감염이나 악성종양이 나타난 경우를 말한다.
감염 1~2주 후 발열이나 근육통, 림프절 비대 등의 증상이 1주일 이상 지속되다 사라진다. 이후 특별한 증상이 없이 서서히 면역력이 떨어진다. 그러다가 에이즈 발병 초기가 되면 면역체계가 파괴되고, 발열, 설사, 급격한 체중감소, 불면증 등 여러 가지 증상이 생긴다. 전신의 임파선이 붓고 입안이 헐거나 백반증이 생기기도 한다.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에이즈 환자는 폐렴, 뇌염, 장염, 망막염 등의 감염질환에 걸리기 쉽다. 약에 내성을 보이는 결핵에 걸리거나 카포시육종 같은 피부암, 임파선암 등이 발병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HIV가 뇌로 침입해 두통, 경부강직 등의 뇌막염 증상은 물론 우울증, 지능 저하, 경련 등을 보인다. 후기에는 기억장애, 전신쇠약으로 직장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조차 전혀 못하게 된다.
다행히 바이러스 농도를 떨어뜨리고 면역력 저하를 막는 에이즈 치료약이 속속 개발돼 에이즈라는 질병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1991년 에이즈 감염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뒤 사업가로 변신한 미국의 농구 스타 매직 존슨도 그 중 하나다.
현재 에이즈 치료제로 승인을 받은 것은 20여 가지가 넘는데, 이들 치료제로 인해 감염자의 생존기간은 20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다만 약을 복용하더라도 바이러스가 숨어 있을 뿐 여전히 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1985년 이후 2008년까지 HIV감염 경로가 밝혀진 5136명(남성 5604명, 여성 516명)에 대한 조사 결과 99%가 성관계에 의해 감염됐다. 이중 이성간 성접촉에 의한 감염자는 모두 59.9%(3075명)로 동성간 성관계에 의해 감염된 사람 2007명(39.1%)을 훨씬 상회한다. 흔히 에이즈 하면 동성애자들만의 질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결과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성관계를 하는 상대방이 HIV 감염자인 경우에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
문제는 이성간의 성관계에 의해 HIV 감염자로 확인된 남성은 2641명이나 되는데 비해 여성은 434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한 번 하면서 이성에게서 HIV가 감염될 가능성은 0.1∼1%. 여성이 감염될 가능성이 조금 더 낮기는 해도 남성과 큰 차이는 없다. 이것은 HIV에 감염되고도 양성으로 진단되지 않은 여성들이 그만큼 많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외에 HIV에 감염된 혈액 또는 혈액제제 수혈로 인한 수혈감염, HIV에 감염된 주사바늘에 찔린 경우, HIV에 감염된 여성의 임신, 출산, 수유과정에서 태아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 등이 있다.
때문에 에이즈를 예방하는 데는 안전한 성관계가 가장 효과적이다. 에이즈예방협회에서는 고정 파트너가 없는 이는 금욕(A:Abstinence)하고, 파트너가 있는 경우는 정조(B:Being Faithful)를 지키며, 그리고 성관계시 콘돔 사용(C:Condom Use)을 권장한다.
또 주사기를 사용할 때는 1회용을 쓰는 것이 좋고 문신을 하거나 귀를 뚫을 때는 소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칫솔, 면도기 등을 같이 쓰는 것도 삼간다. 수혈, 장기이식 등의 경우 사전검사를 충분히 하는 것이 안전하다. 감염자의 혈액을 다루거나 청소할 때는 비닐 또는 플라스틱 장갑을 착용하고 흘린 주변은 물 1컵에 염소표백제 1/4컵을 섞어 소독한다.
반면 에이즈는 다른 전염병과 달리 공기나 물에 의해 옮기지 않는다. 악수나 포옹, 가벼운 입맞춤도 마찬가지고 음식을 같이 먹거나 전화기, 접시, 옷, 욕실, 수영장 등도 함께 사용해도 괜찮다.
에이즈 검사를 받고자 할 때는 가까운 보건소나 대한에이즈예방협회(1588-5448)로 문의하면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익명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검사 비용도 무료이다. 최근에는 법적으로 에이즈 검사를 받도록 돼 있는 유흥업소 종사자 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감염이 점차 늘고 있으므로 안심할 수는 없다.
검사는 HIV에 감염되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4∼12주 지났을 때 받는 것이 좋다. 이 기간에 HIV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기간 내에 검사를 받으면 실제로 감염이 되었더라도 음성반응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이 기간에 받은 검사결과가 음성이라면 전염이 가능한 행동을 삼가면서 12주가 지난 시기에 재검사를 받도록 한다.
한 가지, 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HIV 감염자나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의식을 갖는 것은 금물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자를 직장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응답이 30%로 영국(8%)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유은주 사업부장은 “에이즈가 걸렸다 하면 죽는 병이 아니라 다른 만성질환처럼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개선되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을지대학병원 감염내과 윤희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