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국내지진 통보. 기상청 홈페이지 캡처.
# 지진 뒤 따라오는 ‘원전 공포’
지난 9월 12일 규모 5.8의 강진이 일어난 경주는 인근에 원전이 밀집돼 있어 사람들의 공포감을 한 층 배가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경주를 비롯한 포항, 대구, 울산 등 인근 주민들은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이라 불리는 영남지방이 ‘제 2의 후쿠시마’가 되는 것은 아닌지 공포감에 떨고 있다.
영남지방에는 고리, 월성, 한울 세 곳의 원자력 발전소는 모두 후쿠시마보다 많은 수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어 사고가 일어난다면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 또한 사고시 원전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반경 30km 이내 인구도 후쿠시마에 비해 월등히 많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의하면 후쿠시마 원전 주변 인구가 약 17만 명인데 비해 고리 원전은 380만 명에 이른다. 월성 원전 주변에도 130만 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번 지진으로 월성 원전 1~4호기를 수동 정지했다. 지진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난 19일에는 원전과 방사성폐기물 시설 점검 결과 안전에 이상이 없으며 규모 7.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비를 향상시킬 것이라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수원의 점검 결과와 향후 계획발표에 쓴 목소리를 내는 이가 많다.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안재훈 팀장은 “1주 사이에 모든 점검이 끝나고 안전문제가 해결됐다는 듯한 발표에 놀랐다”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원전 점검에 한수원 측 전문가만 참여할 게 아니라 민간 전문가와 시민 등을 참여시켜 전 사회가 관심을 갖고 살필 수 있게 만들어야 한수원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은 한수원이 우리나라는 강진이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고 지하에 활성단층이 없다는 전제하에 진행을 해왔다”며 “많은 사실들을 숨겨오다 이제 와서 안전하게 운영하겠다는데 정확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도 아니고 신뢰를 보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원전 점검의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됐다. ‘모든 원전이 6.5 지진에 견딜 수 있고 향후 7.0까지 견디도록 상향시키겠다’는 한수원의 발표에 대해 서울대 원자핵 공학과 서균렬 교수는 “원전 설계는 제대로 됐겠지만 단지 숫자와 도면상의 문제일 뿐이다. 현재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길게는 40년이 돼가는 원전도 있다. 처음하고 상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서 교수는 “7.0까지 올리겠다는 대책은 이전부터 반복돼오던 미봉책에 불과하다”면서 “지난 일본 지진 등 원전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때마다 한수원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원전의 상태가 지진에 견딜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 전수 조사나 최소한 지진에 대비해 필수적인 부분이라도 정확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점검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 악취·동물 이동…기현상은 지진의 전조?
계속되는 여진과 원전으로 인한 공포감 속에 온라인을 중심으로 지진과 관련된 괴담마저 돌며 사람들을 불안감에 떨게 만들고 있다.
이번 지진을 앞두고 정체불명의 가스냄새가 나고 개미 등 동물들이 이상행동을 보여 ‘지진의 전조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관련 게시물이나 사진이 SNS 이용자들에 의해 확산되며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지난 7월 울산과 부산지역에서는 “가스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이어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지진이 일어나며 암석의 균열로 가스가 발생해 나는 냄새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스 냄새 논란과 같은 시기에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는 개미 떼가 발견돼 또 다시 지진과 관련된 예측이 오갔다.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찍힌 사진에는 수십만 마리의 개미 떼가 띠 모양을 이뤄 이동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지진에 앞서 예민한 감각을 가진 동물들이 먼저 반응한다’는 속설이 자연스레 따랐다.
태화강에서 발견된 숭어떼. 부산일보 유튜브 캡처.
이외에도 특정 모양의 구름이 발견되면 곧 지진이 발생한다는 이른바 ‘지진운’을 봤다는 증언도 쏟아졌다. SNS에서 영남지역 하늘에서 얇게 퍼져 물결이나 갈비뼈 모양을 띠는 구름을 찍은 사진이 다수 올라온 것.
지진운은 일본 지진예지협회 사사키 히로하루 대표의 주장으로 학설이 만들어졌다. 그는 지진운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 강력한 전자파가 발생해 구름에 영향을 준 것이고 이 때문에 강한 바람에도 구름의 모양이 흩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 그는 2005년 간토 지방의 지진을 예측해 화제가 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지진 전조설은 정확한 과학적 근거나 관련 연구 부족 등으로 정설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울산에서 일어난 가스 냄새는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 한국가스공사, 부산경찰청, 각 시 등이 참여한 합동조사단이 꾸려져 조사에 들어갔지만 부산의 경우 부취제, 울산은 인근 공단에서 발생한 악취라는 결론이 나왔다. 지진으로 발생하는 가스는 무색무취의 라돈이라고 하는 가스로 이번 일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개미의 이동은 새로운 여왕개미의 분가, 다른 종과의 싸움 등으로 집단 이동이 관찰되기 때문에 지진과 관련이 없다는 전문가 의견이 이어졌다.
숭어 떼의 경우에도 지진과 연관지어 설명되긴 어려운 상황이다. 경북 민물고기연구센터 관계자는 “숭어라는 어종이 무리지어 생활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것처럼 많은 개체수가 일렬 형태로 이동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면서도 “태화강 인근 주민으로부터 ‘이미 몇 년 전부터 있던 일’이라는 제보가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지진과 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지진운은 일본에서 시작된 학설이긴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지진운이 나타났을 때 지진이 일어났던 사례가 있지만 모든 지진에 해당하진 않고 입증된 바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름이 시기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는 사사키 대표의 주장과 달리 SNS에 올라온 지진운 사진들은 한 가지 모양이 대부분이었다.
# “24일 30일 대지진 온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대지진 예고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규모 4.5의 여진이 있었던 지난 19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글에는 “12일과 19일의 지진을 맞췄다”며 “이 그래프 상 날짜가 계속 맞는다면 다음 지진은 이번 주 토요일”이라며 또 다른 강진이 올 것을 걱정했다.
기상청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지진 전조 증상, 대지진 예상 등의 소문이 확산되자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지진은 현대 과학으로 미리 예측할 수 없다. 예측 그래프도 일본 기상당국이나 연구소가 아닌 블로그를 운영하는 개인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며 불안감 조성을 우려했다.
하지만 해당 게시물에는 댓글로 많은 이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이들은 또 다른 지진에 대해 경계하면서도 기상청의 낮은 신뢰도를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기상청 발언을 풍자하며 “현대 과학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진, 근거 없는 낙관론은 괜찮은지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기상청 지진화산감시과 유용규 과장은 “지진 날짜 예측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인터넷 글에 동요하기보다 언제든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대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인터넷 게시글에 첨부된 그래프에 대해서는 “처음 보는 형태의 데이터다. 기상청에서 해석할 수 없는 그래프”라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안전처를 믿느니, ‘지진희’를 믿겠다”…스스로 살길 찾는 국민들 경주에서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민안전처의 늑장 대응이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지난 12일 경북 경주 지역에 처음으로 5.8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건물이 흔들리고, 기와장이 떨어지고,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국민들은 공포감을 느꼈지만 국민안전처가 지진사실을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를 보낸 것은 10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미 진앙 인접 주민들은 대피한 뒤였다. 기상청이 지진이 발생한 후 20초 만에 지진 조기경보를 발령한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국민안전처는 상황실을 통해 기상청의 지진 조기경보 통보를 받았지만 긴급재난문자 발송을 담당하는 지진방재과가 상황실에 문자 발송을 요청하느라 발송이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또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지진 발생 후 세 시간 동안 접속 장애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19일 4.5 규모의 여진이 발생하면서 똑같은 상황이 재연됐다. 9월 19일 경주에서 4.5 규모의 여진이 발생했지만 5분 뒤에야 경주 지역에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포항 등 경주시 이외 지역에는 12분이나 지난 오후 8시 45분에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또 다시 다운됐다. 지난 12일 안전처는 정부종합전산센터 홈페이지 처리용량을 클라우드 기술을 적용, 최대 80배까지 향상시켰다며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밝힌 상황에 같은 문제가 반복된 것이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의 최다 동시접속 IP 수는 1만 6000여 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기상청 홈페이지의 경우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IP 수가 9만 건인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긴급재난문자 발송 역시 기상청으로부터 받은 지진 정보를 확인해 발송 지역과 문구를 정해 이동통신사로 전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발송에 시간이 걸리는 것인데 예산 문제로 시스템 개선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국민안전처의 부실 대응으로 국민들은 이제 스스로 살길을 마련했다. 지난 9월 21일 오전 경북 경주에서 규모 3.5 여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지진을 인지했던 것은 국민들이었다. 누리꾼이 직접 개발한 지진 알림 서비스 덕분이었다. 디시인사이드의 지진희갤러리에도 실시간으로 지진 관련 글이 게시되고 있다. 지난 21일 기상청은 지진이 발생한지 4분 뒤인 11시 57분께 트위터로 지진 발생 사실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국의 국민들은 그보다 3분 먼저 어플과 웹사이트를 통해 지진을 알 수 있었다. ‘지진희 알림’은 지진 알림 서비스로 누리꾼이 만든 알림 서비스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진이다’라고 말할 때 발음이 비슷한 배우 ‘지진희’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지진희 알림’은 지난 19일 경북 경주에서 규모 4.5 여진이 발생했을 때 등장했다. 당시의 진동은 서울에서도 느껴졌고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불안감이 커진 국민들이 자구책을 마련했다. 디시인사이드의 지진희갤러리와 연동된 프로그램으로 지진을 느낀 네티즌들이 인터넷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지진희 갤러리’에 연이어 글을 올려 1분에 글 20개 이상이 동시에 등록될 경우 이에 대한 알림이 곧장 ‘지진희알림’ 이용자에게 오는 식이다. 또 휴대전화 주위의 진동 강도를 측정해 지진이 발생하면 곧바로 알려주는 지진계 어플리케이션도 인기를 끌고 있다. 비상식량과 생존가방을 구매해 지진에 대비하는 신풍속도까지 사회 내에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