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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21일 한나라당 공정경선결의대회 및 제3차 전국위원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가 웃고 있다. 옆으로 이명박 전 시장의 모습이 보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은 날이 갈수록 지지율이 공고해지는 경향이 계속되면서 ‘이대로만’을 외치고 있다. 룰이 정해지고 시합이 시작된 만큼 변수는 있을 수 없으며 박 전 대표 측이 ‘딴 맘’만 먹지 않는다면 본선까지도 ‘파란 불’이라는 자신감에 차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도 “역전할 수 있다”며 신발끈을 바짝 고쳐 매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의 자신감은 지지율 등으로 볼 때 수긍되는 점이 많지만 지지율에서 아직도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자신감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박근혜 전 대표를 곁에서 보고 있으면 거대한 바위를 보는 것 같다.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 위기가 닥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걸 보면 왠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만큼 든든한 버팀목을 볼 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표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에게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위기가 닥치고 상황이 어려울 때 더욱 그 빛을 발한다는 박 전 대표만의 내공이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한나라당에 최악의 위기가 닥쳐 모두가 패배주의에 젖어있을 때, 박 전 대표는 조용하지만 강단 있게 당을 이끌었다. 그래서 총선이 끝난 뒤에는 ‘박 전 대표의 작은 승리’라는 평가도 받을 수 있었다. ‘위기에 강한 여자’라는 인식은 박 전 대표를 제1 야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이끈 원동력이자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최근 경선 룰 공방에서는 박 전 대표의 그런 매력적인 힘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전 시장 측의 ‘양보 논리’에 말려 실리와 명분을 모두 내주었다는 평가로 반대파로부터 ‘고집불통’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자신은 원칙을 생명같이 지키는 지도자 그대로인데 오히려 경선 룰을 양보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했다는 일부의 평가에 매우 불만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동안 캠프 내부에서 이 전 시장과의 지지율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공격적이고 무리한 전략을 많이 짜낸 게 사실이다. 물론 박 전 대표는 이벤트성이 있거나 의도적인 전략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방법들이 많이 채택된 것은 아니지만 박 전 대표도 캠프의 그런 분위기에 조금은 동조된 것 같다. 그래서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의 이야기도 한 번씩 한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캠프 분위기에 따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본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다. 주변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꾸준히 밀고 나가다 보면 오히려 주변 상황도 그에 따라올 것이다. 앞으로는 2004년 총선 때 당을 이끌던 ‘잔다르크’ 같은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도 이에 대해 “사실 박 전 대표 본인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최근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조차 ‘박 전 대표의 언행이 예전 같지 않다’라는 평가가 나온 것을 보면 그가 이 전 시장을 따라잡기 위해 뭔가 파격적인 행보를 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박 전 대표도 그런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위적인 변신은 결국 박 전 대표가 본래 가지고 있던 강점마저 흔들어놓을 뿐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것이 경선 룰 공방에서 판명난 것이 아닌가. 앞으로 박 전 대표의 변신을 기대해 본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가 최근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해) 역전할 수 있다”고 단호히 말한 점은 매우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신중한 그녀가 공개 석상에서 지지율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공언한 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박 전 대표의 ‘역전할 수 있다’는 발언은 2004년 총선의 작은 승리를 이끌던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박 전 대표의 이 발언은 한나라당 경선준비위원회와 검증위원회가 처음 가동되는 날, 이 전 시장과의 대결에서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한 의도적인 자기 주문의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가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배경에는 대체로 세 가지 우위론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인(人)의 우위다. 이는 그가 밝혔듯이 자신의 도덕성이나 지도자로서의 됨됨이가 이 전 시장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가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믿을 만한 대선 주자인지 국민들이 진지한 평가를 할 것이라는 게 (나의) 역전 복안”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잘 알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검증 국면이 본격화되면 이 전 시장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에 대해 ‘정체성 면에서도 한나라당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자질 면에서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경선 때까지 3개월 정도 남았다. 후보 검증을 통해 이 전 시장에 대한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 기간에 국민들이 그에 대한 거품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박 전 대표는 국민들이 이 전 시장의 ‘성공 신화’에 대한 허상만을 보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판단한다. 앞으로 그런 허상은 후보검증과 정책 토론을 통해 한꺼번에 깨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이 우려하는 것은 후보 검증의 객관성 여부다. 박 전 대표는 경선관리위와 검증위 인선 과정에서 일부 ‘친이 인사’가 포진해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과 안강민 검증위원장이 책임감과 공정성을 가지고 다 잘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지만 두 위원회가 끝까지 공정성을 견지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경선 룰 과정에서 ‘변심’한 강재섭 대표가 “후보 검증을 통째로 당에 맡겨달라”고 하는 배경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전 시장에 대한 명백한 후보 결점이 있음에도 네거티브 공방을 우려해 당 차원에서 덮어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안강민 검증위원장을 비롯한 검증위원들이 과연 객관성 있고 철저하게 후보 검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캠프 한 관계자는 “검찰에서도 제대로 밝히기 힘든 후보 검증 사건들을 어떻게 10여명의 검증위원들이 세세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설령 조사를 철저히 해 모든 의혹을 밝혀낸다고 해도 본선을 위한 후보 보호라는 이름 아래 적당히 덮어둘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아무런 보완장치가 없다. 검증위에서 후보 검증을 위한 면죄부만 주게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측은 검증위의 조사 안건이 적당히 덮어질 경우에 대비해 ‘후보 검증에 대한 검증을 철저하게 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두 번째는 우(友)의 우위다. 박 전 대표가 처음으로 역전을 언급한 것은 후보검증에 대한 자신감도 한 배경이지만 최근 당내의 전통적인 원로 그룹들의 영입작업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최근 서청원 전 대표가 고문으로 가세한 뒤 강창희 전 최고위원이 지지 선언을 했고 이어 홍사덕 전 의원까지 캠프로 들어올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 전 시장보다 확실한 ‘우(友)’(당내 전통적 지지그룹)의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홍사덕 전 의원의 경우 원내총무와 당 선거대책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경험한 5선 의원이자 대중적 인기가 높기 때문에 박 전 대표에게 실질적인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홍 전 의원은 “ (박 전 대표가 뒤지는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한번 돕는다면 박 대표를 도와야겠지만… 때가 되면 공식적으로 말할 것”이라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또 다른 축인 ‘민추협’의 김영삼 전 대통령 직계인사 30여 명과 대선을 중도 포기한 고건 전 총리의 지지세력이었던 ‘한미준’ 일부 인사도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해 그의 자신감을 높여주고 있다. 캠프에서도 “김무성 의원이 ‘6월 말이면 박근혜 지지율이 앞설 것’이라고 말한 것을 주목해 달라. 도와주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어 민심과 당심에 상당한 플러스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최근의 지원군 영입에 반색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밖에도 이회창 전 총재와 최병렬 전 대표 등 당의 ‘거목’들에 대해서도 계속 영입 시도를 할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박 전 대표의 ‘우’(友)의 우위정치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는 언(言)의 우위를 들 수 있다. 평소 박 전 대표는 간결한 단어 사용으로 자신의 의중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말에 군더더기가 없고 메시지가 강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박 전 대표는 정치 입문 10여 년 동안 튀는 말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할 만큼 말에 관한 한 언제나 ‘신중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화려한 달변은 아니지만 적확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지도자로서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잦은 말실수로 잇따라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이 전 시장과 크게 대비된다. 특히 이 전 시장은 최근 ‘장애인 낙태 발언’, ‘한물 간 배우’ 등 잦은 말실수로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말(言) 우위론은 오는 5월 29일부터 네 차례 실시되는 정책토론회에서도 그 빛을 발휘할 전망이다. 정책토론회는 전 과정이 전국에 생방송되는 것은 물론 후보 간 질문과 대답의 순서도 있는 등 양측의 불꽃 튀는 ‘말싸움’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경선 초반의 승부를 가를 중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이 전 시장 측은 임기응변식 연설과 토론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다 콘텐츠의 폭과 깊이에서 단연 박 전 대표보다 우위에 있다며 자신만만해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의 지나친 자신감이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후보 간 토론이 전국에 그대로 생중계될 것이다. 이 전 시장이 분위기에 휩싸여 말실수를 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조심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말은 평소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종의 창구다. 그런 점에서 신중하지 못한 이 전 시장의 성격상 돌출 발언을 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 체질화돼 있기 때문에 그럴 걱정은 없다. 의도적으로 이 전 시장의 말실수로 말꼬리를 잡을 생각은 없지만 그것이 정책 철학의 부재로 판단되면 집요하게 추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은 “그동안 실언 해프닝은 주로 비공식 석상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이 조금만 신경 쓰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느긋해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여전히 지지율에서 이 전 시장에게 크게 뒤지고 있다. 하지만 ‘人·友·言 우위론’이 그에게는 든든한 역전의 발판이 되고 있다. 3개월이 남은 한나라당의 경선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박 전 대표는 과연 ‘역전의 명수’가 될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