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실장이 ‘청와대 직제 개편안을 마련하는 데 한 달 이상 소요됐다’며 ‘자꾸 인사에 관여하는 것처럼 비쳐지는데, 사실 그럴 시간도 없었다’고 주변에 해명하기도 했다는 것.
이런 외부의 시선 때문인지 인수위 기간 동안 자신의 거취를 놓고도 몇 차례 입장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인수위 출범 초기 ‘좌희정, 우광재’식으로 노 당선자의 핵심 실세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자 한때 ‘청와대행’을 접고, 외국 유학을 떠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것.
부인 이정숙씨는 “한동안 유학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며 “(남편이) 주위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당시 그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정권 초반에 무리를 할 경우,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자신에 쏠리는 세간의 관심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청와대 인선이 본격화되고 ‘국정상황실장’에 자신이 자주 거명되던 때에는 ‘국정상황실 부실장이나 비서관을 맡는 게 낫겠다’며 ‘국정상황실장직’을 고사하기도 했다고.
당시 인수위 고위관계자는 이같은 이 실장의 심경을 전해듣고 “이광재 기획팀장은 적어도 국정상황실장으로는 안간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한과 책임을 함께 맡으라’는 노무현 당시 당선자의 주문이 나오면서, 이광재 실장의 거취가 ‘국정상황실장’으로 최종 결정됐다는 후문이다.
한편 이광재 실장은 자신과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87년 부산에서 위장취업 했을 때 만나 부산 동아대 강은교 교수 추천으로 88년부터 노 의원 비서관을 했다’고 주변에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또 15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된 연유로 노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었다고 한다.
이 실장은 얼마 전 사적인 자리에서 ‘내가 노 의원을 떠나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특별히 빚진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노 의원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연설문을 자기가 쓰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노 의원은 자기가 공부해 직접 쓴다. 88년 13대 국회 때 등 젊은 의원을 많이 보았지만 노 의원 같은 사람을 못봤다. 또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안된다고 해도 부산을 고집했듯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옳은 일이라면 포기하는 법이 없다. 노 의원이 딴 생각을 했으면 핑계 삼아 떠날 수도 있었는데 그런 일이 없었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 매력을 털어놨다고 전해진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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