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4일 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의 합당선언식(위)과 8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제3지대 통합을 위해 집단탈당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동안 범여권의 대선 정계개편의 논의는 명분 상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전개되어 왔다. 첫 번째는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호남 먼저 묶어 대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호남중심 통합론’이다. 호남중심 통합은 민주당 의원 및 과거 민주당 시절부터 정치를 시작한 열린우리당 내부의 호남지역 의원, 그리고 수도권의 호남출신 유권자 비중이 높은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또 다른 논의는 이른바 ‘대통합 신당론’이라 할 수 있다. 즉 열린우리당을 고수하려는 ‘친노세력’을 배제하고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세력이 제3지대에서 합치자는 것이다. 제3지대 대통합을 추진하는 세력은 대체로 과거 민주당 출신이 아닌 17대 총선에서 새롭게 당선된 초선의원, 비호남 성향을 가진 중진 의원들이 주류를 이루며, 개혁성향을 가진 386 초재선 의원 역시 이 그룹에 속한다.
이번 통합민주당의 탄생은 이러한 두 갈래의 논의 중 호남중심 통합론이 나름대로 성과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한 발 먼저 선점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제3지대 대통합을 추진하는 세력들은 이러한 소통합이 대통합의 장애가 될 것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8일 탈당한 의원들은 일단 소통합에 기선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차원에서의 탈당으로 보이며 14일을 전후해 연쇄적인 추가탈당도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통합민주당 역시 현재로서는 ‘대통합’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호남 중심의 대통합을 추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향후 범여권 정계개편에 있어 ‘주도권’ 경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향후 범여권 통합과정에서 호남을 기반으로 한 통합민주당의 영향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호남 중심 통합세력의 힘의 원천은 바로 내년 총선에 있어서 호남 지역, 그리고 호남출신 유권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도권의 공천문제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벌써부터 이번 통합민주당의 출범에 동승하지 못한 호남권 정치세력들의 일부가 동요하고 있으며, 창당 과정에서 통합민주당에 참여하는 의원들의 수 역시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가에서 이들 호남 중심 대통합론이 실현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먼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 평가는 대략 호남 중심 통합론보다는 ‘제3지대 대통합론’에 더 긍정적이다. 지난 4월 26일 비한나라당 진영의 대통합 주도권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상당수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모두 해체한 후 대통합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열린우리당 중심의 대통합은 12.7%, 민주당 중심의 대통합은 12%에 불과했다.
또 다른 문제는 범여권 내부 정치세력 간의 갈등구조에 있다. 이러한 감정의 골은 통합과정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민주당 박상천 대표의 ‘특정 세력 배제론’을 통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17대 총선 전 민주당에서 이탈해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주도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정치인들을 ‘괘씸죄’를 걸어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 박 대표 측 입장에서는 ‘실패한 정권과의 차별화, 실패한 여당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그 책임을 묻지 않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일단 이번 통합과정에서 이러한 특정세력 배제 원칙은 일단 철회되었긴 하나, 향후 범여권 대통합에 있어서 이 같은 감정적 대립구조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특히 당초 민주당이 배제하려 했던 세력의 범위에는 친노 직계라 할 수 있는 이해찬, 한명숙, 김혁규 의원 등은 물론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등 범여권의 주요 대선주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민주당과 중도개혁 통합신당과의 합당 소식이 전해지자 정동영, 김근태, 문희상 전 의장 등이 곧바로 ‘국민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비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소통합이 총선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제3지대 대통합 신당을 만들겠다고 곧바로 성명을 발표했다.
실제 이번 소통합으로 탄생한 통합민주당의 최대 약점은 바로 내세울 만한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데 있다. ‘호남 공천권’이라는 강력한 지렛대를 가졌다 하나 대선 자체가 임박한 시점에서 범여권의 기존 유력 대선주자들이 이러한 소통합에 모두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향후 만들어질 수 있는 범여권의 제 세력에 대한 호감도 평가에서 내세울 만한 주요 인물을 가지고 있지 못한 호남신당 세력에 대한 호감도는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는 손학규-정동영 중심의 중도신당이 가장 높은 호감도를 보였으며, 이어 강금실-문국현 유한 킴벌리 사장 등이 중심이 된 시민사회 세력이 두 번째 높은 호감도를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호남민심의 상징적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보기 힘든 강력한 어조로 ‘대통합’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도 통합민주당으로서는 큰 부담이 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통합 이후에도 자신을 방문한 한명숙 전 총리, 장상 전 민주당 대표에게 ‘대통합에 기여한 사람이 국민선택을 받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은 대통합을 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훈수를 뒀다. 또 민주당 내부에서도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세력이 만만치 않게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한편, 정대철 고문과 문학진 의원 등을 필두로 열린우리당에서 이탈해 제3지대 대통합을 추진하는 세력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번 2차 탈당에는 앞으로 열린우리당에 친노 세력만을 남기고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등 대선주자 중심의 세력과 함께 김원기, 정세균, 유인태 의원 등 당의 중진들도 동참할 것으로 보여 그야말로 범여권의 빅뱅상황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이들이 제3지대에서 명실상부한 대통합 신당으로서 부상한다면 취약한 명분과 대선주자군을 가진 통합민주당을 제치고 이번 대선에서 의미 있는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경우 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이 합쳐져 호남을 기반으로 출범시킨 ‘통합민주당’은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서는 호남중심 통합이든 제3지대 통합세력이든 어느 쪽도 빠른 시간 내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당분간 범여권은 통합민주당으로 대표되는 호남신당 세력,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에서 이탈한 제3지대 대통합 신당 세력,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신당 등으로 분열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각 세력은 서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통합을 모색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각각의 입장 차는 큰 반면 어느 쪽도 확실한 주도권을 잡을 만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해 결국 이번 대선에서 정당 간 대통합은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꽤 있다. 이 경우 정당 간 통합은 사실상 포기하고 각 정당은 존속하되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통합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단일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제3지대 대통합 신당세력의 경우 대선주자 간 연대구도에 따라서 손학규, 정동영 등을 중심으로 한 ‘중도신당’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박원순 변호사 등 시민사회 진영과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한 중진 정치세력, 진보성향의 김근태 의원 등이 참여하는 ‘진보신당’으로 분리될 가능성도 있다.
만일 각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당 간 대통합이 물 건너가고 후보단일화를 위한 국민경선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범여권은 연합 국민경선을 치르기 위해 종이정당(paper party)을 창당해 각 정당의 대선주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여론조사상 비한나라당 진영의 주요 대선주자들인 손학규 전 지사와 정동영 전 의장, 친노진영의 이해찬 전 총리, 시민사회 진영의 문국현 사장 등에 대한 호감도를 비교하면 전체 국민 중 손 전 지사가 가장 지지도가 높지만 한나라당 지지층을 제외하고 나면 정동영 전 의장이 가장 높은 지지도가 나타나고 있어 국민 경선의 결과를 현 시점에서 예측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이 통합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한 것이나 2차 탈당의 가시화는 범여권 정계개편 논의에 구체성을 부여했다는 측면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통합민주당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고 현실적으로도 내년 총선에서 호남을 기반으로 주도권을 유지하려 할 수밖에 없어 적어도 정당 간 대통합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반면 대통합 추진세력이 손학규 전 지사와 시민사회 세력을 묶는 데 성공한다면 오히려 호남중심 통합세력을 고립시키며 나름대로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차피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존재하는 한 대통합 자체는 이루기 어렵다고 볼 때 현재로서는 후보 간 단일화가 가장 현실성이 높다고도 볼 수 있다. 이후 선관위에 위탁해 국민경선을 준비해야 되는 선거일정상 비한나라당의 개별 정치세력들은 대략 7월까지는 향후 정치일정을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 달여 남은 기간 안에 범여권의 대선구도의 밑그림이 어떤 형태로 만들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사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