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2일 정동영 전 장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손학규 전 지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3월 19일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 당시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다음과 같은 쓴소리를 내놓았다. “자신이 될 가능성이 적으니 떠나는 것 아니냐. 겉으로는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토로했지만 속내는 그것이다.”
‘배은망덕’까지 거론하며 험담을 하는 이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시베리아 벌판으로 나선다”며 떠나는 그의 앞날에 대해 부정적인 예고를 내놓는 이들도 많았다. 범여권 진영에서도 손 전 지사가 막상 한나라당을 떠나오니 그를 선뜻 반기진 않았다. 그가 한나라당에 속해 있을 때엔 언론에서 내놓은 ‘범여권 후보로서의 손학규 지지도’를 들먹이며 ‘손짓’하던 여권 인사들도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이후 손 전 지사의 행보는 이전과 다름없었지만 언론의 관심은 그에게서 멀어진 듯했다. 한나라당 ‘빅3’로 거론되며 두 주자들과 나란히 종종 매스컴을 오르내렸던 손 전 지사는 범여권으로 몸을 옮긴 뒤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모진 세월을 견뎌온 손 전 지사가 본격적인 기치를 내세우려 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대통합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선진평화연대’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17일 출범할 ‘선진평화연대’는 정당이 아닌 정치결사체로 한창 세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손 전 지사 캠프 측은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을 대상으로 추진위원과 발기인을 공모하고 있다”며 “특정 계층과 정파에 국한하지 않고 국민운동 차원에서 새로운 정치의 구심점을 세운다는 차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손 전 지사 쪽은 선진평화연대를 발기인 1만 명, 추진위원 1000명에 달하는 거대조직으로 띄운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4월 출범한 ‘선진평화포럼’에 이어 오는 11일 ‘과학기술선진화 정책포럼’을 출범시키는 등 정책자문 그룹 조직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범여권의 상황이 짙은 안개 속인 가운데 출범하는 선진평화연대가 범여권 진영에서 어떤 구도로 자리 잡을지 정치권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손 전 지사의 선진평화연대가 “통합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여전히 범여권 주자들 중에는 지지율 1위인 만큼 그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많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세력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전망을 하기엔 아직 변수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손 전 지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범여권 세력들의 움직임을 잡아줄 하나의 구심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만들어진 통합민주당에서도 여전히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리는 범여권의 대선시나리오는 어떤 그림일까. 한 정치 컨설턴트는 ‘손학규 중심’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손 전 지사는 기존 범여권 특정 세력으로 흡수되는 형태를 원하지 않는다. 선진평화연대 또한 ‘독자적 신당’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한다. 그가 통합 과정의 밑그림을 그리고 판을 벌이면서 각 세력들을 동참시키는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현재 손 전 지사를 포함해 범여권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다 그만그만한 상황 아닌가. 그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손 전 지사는 이러한 구도를 만든 뒤에 자신이 ‘독보적’인 후보로 떠오르길 원할 것이다.”
또 다른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범여권의 상황으로 볼 때 새로운 주자가 급속히 떠오르기도 힘들고 현재의 주자들도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리기는 역부족이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범여권에서는 손학규 비토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손 지사가 범여권의 ‘원 오브 뎀’으로서 다른 주자들과 같은 선상에서 오픈프라이머리든 통합을 논의하는 것은 손해라고 보는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어쩔 수 없이 현재 지지율이 가장 높은 자신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 보고 독자세력화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손 전 지사의 캠프 관계자는 “단순하게 기존 세력들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비한나라당’ 세력들을 모두 아우르는 대통합을 이루려는 것”이라며 “단순하게 세력들을 ‘합치는’ 통합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손 전 지사가 현재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범여권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 수 있을지가 최고의 관건이다. 현재 범여권의 무게중심은 일단 범여 대선예비주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열린우리당 추가 탈당파에 쏠리고 있다.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과 민생정치모임 천정배 의원은 이미 제3지대 신당창당에 합의한 상태다. 여기에 친노중진인 문희상 전 의장과 선도탈당파의 리더인 정대철 상임고문도 뜻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4일 당대당 통합을 결정한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도 본격적인 세력 경쟁에 돌입했으며 추가 탈당파까지 떠날 경우 친노세력 중심의 ‘꼬마 우리당’도 한 축으로 남는다.
이처럼 사분오열된 범여권에서 손 전 지사가 제3지대 신당과 통합민주당 가운데 어느 곳을 통합 파트너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손 전 지사 측은 선진평화연대 출범 후 늦어도 다음달 중에는 기존 범여권 진영과 결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손 전 지사가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범여권의 중심추가 흔들릴 전망이다.
더구나 열린우리당 추가 탈당파들도 손 전 지사와 힘을 합치는 쪽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상황으로 알려지고 있다. 8일 탈당한 의원들 중 일부는 손 전 지사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들로 선진평화연대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아직은 ‘정동영계’와 의견 마찰이 있는 상황이지만 중도개혁통합신당과의 통합을 진행 중인 민주당파들도 손학규 전 지사 지지를 적극 표명하고 있어 손 전 지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손 전 지사에게 상당한 선택의 폭이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손 전 지사의 의도대로 범여권이 흘러갈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우선 지지율 면에서 이상 징후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답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한 조사에서는 지난 2월 21%에 가깝던 지지율이 16.6%로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범여권의 비토론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생정치준비모임 천정배 의원은 손 전 지사에 대해 “대통합에 기여하기보다 자기세력만 강화하고 있다가 무임승차하겠다는 것이냐”며 비판하고 있다. 한나라당 탈당은 여전히 부담이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범여권은 다단계 통합으로 나가거나 정파 간 통합을 이루지 못할 경우 최후의 순간 대선주자만의 단일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손 전 지사의 움직임 역시 당분간은 이를 염두에 둔 독자세력 강화 쪽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범여권 각 세력들과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손 전 지사의 움직임이 더욱 주목되는 시점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