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 대회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2016.8.29 사진=연합뉴스
필자는 지난 2013년 10월경 북한 당국과 거래하는 싱가포르의 S 그룹과 관련한 소식을 처음 입수했다. S 그룹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마리나 시설 개발업체로 유명하다. 마리나(marina)란 선박을 위한 종합 위락시설의 일종이다. 여기에는 항로시설, 정박지, 방파제, 계류시설, 육상 보관시설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항만 시설은 물론 요트 클럽하우스, 호텔, 쇼핑센터 등 관련 유흥오락시설을 바다가에 개발하는 전문사업 역시 포함된다.
당시 정보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서부권 최대 항구인 남포항 개발사업 추진을 꾀했다. 남포항 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시아, 특히 동남아 국가를 연결하는 크루즈여행 개발의 일환이었다. 크루즈 정박지의 필수조건은 수준급의 마리나 시설이 절대적이다. 해당 계획에는 리조트, 호텔, 카지노 등이 포함됐다.
여기에는 필히 외국자본의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북한 당국은 평소 여러 분야를 통해 관계를 맺어오던 마리나 개발업체 S 그룹에 손을 내밀었고, S 그룹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S 그룹 임원들은 2013년 초 남포항에 직접 시찰을 나갔다. 남포항의 지리적 위치만 놓고 봤을 때 사업 가능성은 제법 있었다. 정치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해봄직한 개발이었다. 특히 이 분야가 개발되면 동북지역과 하북지역 내 중국 상인들이 카지노를 통한 이익을 엄청 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북한 당국도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다. 당시 S 그룹 임원들은 북한 당국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상 국가 원수 급에 준하는 의전 및 대우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깜짝쇼는 김정은의 등장이었다. 김정은은 S 그룹사 임원들 시찰 당시 반나절을 이들과 함께 동행하며 일종의 세일즈 외교를 꾀했다고 한다. 일전 김일성이나 김정일 등 소위 선대 지도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행보였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대외적 자금압박에 시달렸던 북한의 내부 사정이 좋지 못함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당시 김정은은 기분이 퍽 좋았다고 한다. S 그룹은 당시 김정은에게 초호화 요트 두 척을 유지비와 함께 선물했다. 평소 각종 스포츠를 즐겨하던 김정은에게는 뜻밖의 좋은 선물이 됐다.
결국 북한 당국과 S 그룹은 그해 6월 계약을 체결했다. S 그룹은 당시 6500만 유로(한화 811억여 원)의 선 계약금을 지불하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여기에 6억~8억 유로(한화 7433억~9911억여 원)로 책정됐던 총 공사비의 절반을 예치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당시 계약 체결과 함께 북한 당국은 최소 4억 유로(한화 5000억여 원)의 돈을 챙긴다는 담보가 있었던 것이었다. 가뭄 속 단비와 같은 통치자금이었다.
북한 당국과 김정은으로서는 S 그룹에 꽤나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국제 상황만 놓고 본다면 S 그룹은 따가운 주변의 눈총과 압박 속에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2012년 12월 은하3호 발사체 실험과 함께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감행한 상황이었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전개되던 시점이었기에 S 그룹은 큰 위험 부담을 안고 진행한 계약이었다.
북한 당국으로서 당시 남포항 마리나 개발사업은 대외적인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히 여겼다. 김정은이 직접 대형 외자 유치에 성공했다는 대외적인 홍보 효과를 노렸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북한 내부적으로는 해당 사업과 관련한 외신의 ‘질의응답’ 회견을 개최한다는 기획도 존재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S 그룹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S 그룹 자체와 북한 당국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S 그룹 임원들 대부분은 화교로 구성돼 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영국산 담배 원부자재를 몰래 빼돌려 북한에 비공식적으로 판매한 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S 그룹으로부터 들여온 원부자재는 북한의 위조담배 생산 및 밀매의 원천이 됐다. 알려졌다시피 위조담배 밀매는 북한의 검은 수입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09년 UN 대북제재 당시에도 S 그룹은 북한과 이러한 밀거래를 지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러한 대가로 S 그룹의 각종 사업에 편의를 봐준 것으로 확인된다.
북한 당국이 S 그룹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배경에는 장성택(사망) 전 국방위 부위원장과 그 라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2013년 계약 체결 당시 김정은이 이를 진두지휘했던 배경에는 장성택의 당시 상황(김정은은 숙청 1년 전부터 장성택의 대외라인을 끊어냈다)과도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북한과 싱가포르의 깊은 외교적 관계 탓이다. 싱가포르는 북한이 속한 비동맹 회의(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한 외교적 회의체)의 회원국이다. 또한 리콴유부터 현재의 리셴룽 총리(리콴유의 아들)까지 북한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권력 세습을 이어오고 있다. 중간에 2대 총리인 고촉통 전 총리의 재직 기간 동안 리셴룽은 부총리로 실권을 행사했다. 그만큼 북한의 비민주적 내부 상황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았고, 실제로 비동맹 회의를 중심으로 김 씨 일가와 리 씨 정권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앞서의 민간사업이 별 다른 제재 없이 가능했던 것도 결국은 양국의 긴밀한 관계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최근 필자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앞서의 S 그룹과 북한 당국의 사이가 급격하게 틀어졌다고 한다. 이유인 즉 S 그룹이 선 계약금이 지불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의 개발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들어간 돈에 비해 공사 진척은 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당국의 최근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S 그룹으로서는 결국 북한에 예치한 자금이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잠식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 당국은 그나마 어렵사리 맺어오던 사업적 대외관계가 외부적 제재에 의해 막히고 끊기는 상황이다. S 그룹의 예치 자금 잠식은 북한으로서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필자가 최근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남포항 개발은 현재까지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 내부에서 북한과의 국교 단절 혹은 그에 준하는 외교관계 축소와 관련한 입장을 조율하고 있다. 물론 이는 UN 대북제재 및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지속적인 압박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지만, 앞서의 틀어진 민간 대형사업 역시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싱가포르가 예정대로 국교 단절 및 관계 축소를 공식화 및 실행한다면 북한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무척 뼈아플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오래 전부터 북한 통치자금의 경유지이자 돈세탁 경로로 의심받고 있었다. 물론 이는 싱가포르 당국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서의 강력한 대북제재로 인해 이미 협조관계에 있었던 미얀마는 사실상의 관계 종식을 선언한 상황이고 이란과 인도, 인도네시아만이 어느 정도의 협조 관계로 남아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금융 중심 국가인 싱가포르와의 국교 단절은 북한의 해외자금 통로가 차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후폭풍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단독확인] 태영호 딸 행방 묘연? “그에겐 아들만 둘” 태영호 전 북한 주 영국 공사 지난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북한 주 영국 공사 가족의 여파가 여전히 북한 엘리트 계층 내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은 북한 주재원의 유학생 자녀들이다. 그동안 해외 주재원들의 큰 혜택이었던 자녀들의 유학 생활은 사건 발발 이후 8월 내 사실상 막을 내린 것으로 확인된다. 북한 당국은 7월 태영호 공사의 망명 직후 한 달 내로 자금 여유가 있어 해외에서 자비로 유학을 시키던 주재원 자녀들의 북한 복귀를 명령했다. 특히 이는 그동안 큰 혜택을 봤던 빨치산 그룹 출신 주재원들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재 북한의 해외 유학생 중 여전히 해외에 나가있는 이들은 북한 당국의 정책에 따라 보내진 국비 유학생뿐이라고 한다. 또한 태영호 사건 이후 북한 주요 해외 공관들의 살림은 더욱 팍팍해졌다. 최근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 해외 공관의 핵심지 중 하나인 중국 상하이 공관의 경우 임대료를 못내 쫓겨날 지경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다른 지역보다 비싼 임대료 물가와 이를 지불해야 하는 주재원들의 상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벌어진 일이다. 한편 필자가 최근 입수한 북한 내부 정보에 따르면 현재 남한 내부에서 의문으로 떠오르고 있는 태영호 공사의 딸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태영호 공사는 8월 망명이 국내서 공식화됐을 당시 국내 언론은 딸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보도를 잇따라 낸 바 있다. 하지만 필자가 접촉한 복수의 내부 관계자는 “남한에서 어떤 의도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태영호는 본래 아들만 둘 있을 뿐, 딸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