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대개 선거를 앞두고 전략적으로 자서전 등을 출간한다. 출판기념회를 빌미로 세 결집을 꾀하기도 한다.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책을 출간하는 만큼 그 내용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그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자서전의 내용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과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이 현재 이런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경쟁 후보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아예 제대로 된 자서전을 출간조차 않고 있다. 자신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에 대해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전 시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금까지 자신을 저자로 해서 펴낸 책은 모두 7권이다(공동 저자로 참여한 한 권까지 포함). 모두 92년 정계입문 이후 낸 책들이다. 그가 처음 낸 책은 <신화는 없다>로 95년 1월에 출간했다. 포항 달동네의 노점상 소년에서 출발, 현대건설 회장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그린 이 책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개정판이 다시 나올 정도로 이 책은 ‘정치인 이명박’의 지침서 구실을 하고 있다.
당시 집권 민자당의 전국구 초선의원이었던 이 전 시장은 민선 1기 서울시장을 꿈꾸고 있었다. 95년 3월 출판기념회장에서 이 전 시장은 “당에서 내게 출마할 기회를 주면 적극적으로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책은 96년 이 전 시장의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 출마 때에도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 사항 중에는 ‘<신화는 없다>가 종로에 대량으로 배포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전 시장의 두 번째 자서전인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역시 선거 출마와 출판 시기를 같이했다. 정계에 다시 복귀하고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천명한 2002년 1월 이 책이 나왔다. 2002년 1월 29일 이 전 시장은 이 책의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자연히 출판기념회장은 선거캠프 출정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 전 시장의 자서전 출간 러시는 대선 정국이 시작된 올해부터 본격화됐다. 그는 2월 <온몸으로 부딪쳐라>를 출간한 데 이어 3월에는 <어머니>와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을 잇따라 출간했다. 모두 대선을 위한 포석임은 당연하다.
특히 <어머니>와 <이명박의 흔들리지…>에서는 최근 자신을 둘러싼 자서전 내용의 진실 논란을 의식한 듯 자신의 출생 과정과 병역 면제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부모님은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자식들을 낳고 길렀다. 내가 태어난 곳도 일본 땅이었다. (중략) 최근에는 나의 이력과 이름을 가지고 부모님을 친일파로 모는 일이 있었다. ‘명박’은 태몽에서 따온 이름으로 돌림자를 써야 한다는 아버지의 주장도 뿌리치고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직도 족보에는 ‘상정’이라는 이름이 올라 있다.’
자신의 출생지가 경북 포항이냐 일본이냐 하는 논란에 대해 그는 ‘일본이 맞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아울러 돌림자를 쓴 형들과 달리 지금의 이름을 쓴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 가지 의혹은 남겨두고 있다. 부모의 결혼 시기와 관련된 것이다.
<신화는 없다>에서 이 전 시장은 자신의 출생 및 가족 관계에 대해 ‘우리 아버지 이충우는 1935년(29세)에 고향 친구들 몇 사람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근교에서 목축 일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리를 잡고 돈을 저축하여 그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반야월 채 씨와 결혼을 했고, 결혼 후 곧장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6남매를 일본에서 낳았고 해방 후인 1945년 11월에 돌아와 막내를 한국에서 낳았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실제 확인 결과 이 전 시장의 둘째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1935년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위의 내용으로 보면 이 전 시장의 부모는 적어도 1935년 이후에 결혼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전 시장의 두 형과 큰누나의 출생년도와 맞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전 시장 측의 명확한 해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자서전의 내용이 서로 다른 부분은 또 발견된다. <이명박의 흔들리지…>에서는 자신의 족보상 이름이 ‘상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나온 <어머니>에서는 ‘내 이름은 원래 상경(相京)이었다. 지금도 족보에는 ‘명박’이 아니라 ‘상경’으로 올려져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책 속 이름이 서로 다른 것이다.
최근에 낸 <어머니>에서는 ‘평소 감기려니 하고 넘어갔으나 군 신검에서 기관지확장증이라고 했다. 군대에 입대해서 치료받고 싶다고 사정했으나 군의관은 이런 몸으론 도저히 군 생활을 할 수 없으니 입대하고 싶으면 치료받고 오라고 매정하게 거절했다’고 밝히고 있을 뿐 구체적인 연도와 병명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일부 자서전 내용에서 밝히고 있는 연도와 이름의 오류가 발견되면서 이 전 시장의 자서전에 대한 검증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해 출판 관계자들은 “편집 과정상의 단순한 실수일 가능성도 있으나 대선주자의 자서전인 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해서 정확한 사실 관계만 쓰도록 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결론적으로 말해서 박근혜 전 대표는 자서전다운 자서전이 아직 없다. 그의 지나온 삶 전체를 조망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쓴 책은 모두 6권(공저 한 권 포함)인데 그나마 4권은 그야말로 순수한 에세이집 형식의 글이었다. 93년 11월에 낸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95년 5월에 낸 <내 마음의 여정>, 98년 10월 낸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 등이 그것이다. 2000년 1월에 쓴 <나의 어머니 육영수> 또한 어머니를 추모하며 쓴 내용이 대부분이고, 가장 최근(2005년 4월)에 여러 명의 인사들과 함께 공동저자로 출간한 <나의 삶, 나의 아버지> 또한 아버지에 대해 쓴 짧은 글이다. 그나마 박 전 대표에 관련된 다소 예민한 문제에 대한 그의 심경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지난 90년 육영재단에서 펴낸 <박근혜 인터뷰집>이 유일하다.
따라서 주변 참모들의 권유로 박 전 대표는 최근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책에서 박정희 정권 시대의 사건들이나 자신과 관련된 의혹 등에 대해 극히 일부에 한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목이 극히 짧은 데다 명확한 진실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표피적이고 은유적인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 전 대표는 90년 동생 근령 씨와 함께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인 이후 동생에게 운영권을 넘기고 한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그 직후 펴낸 <평범한 가정에…>와 <내 마음의 여정>은 그런 면에서 많은 관심이 쏠렸으나 내용은 평범한 일상의 느낌만 담겼을 뿐이었다. 그나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중상이 또 시작된 것을 보면 역시 기념사업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실컷 왜곡을 해서 벗겨 놓으면 또 다시 새로 만들어 왜곡을 시작한다’는 식의 절제된 표현만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다.
영남대 재단 문제에 대해서는 <박근혜 인터뷰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87, 88년 학교 질서가 심히 문란해졌다는 통보를 들었다. 이러한 사태가 우리 학교를 위해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설립한 영남대학교이므로 자식된 도리로 그 학교를 잘 키워 빛내보려고 애썼다. 이런 사태를 맞고 보니 돌아가신 분의 뜻을 빛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부딪쳤다. 그래서 학교 일에 완전히 손을 뗄 것을 밝힌다. 부정입학 사실은 학교 측이 재단 몰래 한 일이다. 재단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전혀 없다.’
그는 최근에 낸 <나의 삶, 나의 아버지>에서 자신의 정계 입문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IMF를 겪으면서 아버지가 떠올랐다. 선거철 때 정치 권유자가 많았지만 청와대 생활의 밑도 끝도 없는 무한책임과 공인이어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잘 알기 때문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러다 수많은 회사들이 도산하고 하루아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가 힘들게 일으켜 세운 나라가 쓰러질까 눈물이 솟구쳤다. 나만 편하자고 꼭 필요한 이때에 용기를 내지 못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맘도 아팠고 부모에게도 불효라는 생각에서 정치에 뛰어들게 됐다. 나는 아버지 때 못 이룬 이 나라 민주정치를 꽃피우기 위해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노력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부모님에 대한 도리요 동시에 국민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고 최태민 목사와 정수장학회 등 자신과 관련돼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 주변에서는 “검증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있는 유력 대선주자가 정작 자신의 검증 대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대선주자의 현재 모습뿐 아니라 과거의 행적도 알고 싶어 한다. 향후 나올 자서전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