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동 시절인 1930년 신축된 도청
[광주=일요신문] 정성환 기자 =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은 오는 13일부터 11월13일까지 기획전시 ‘오디세이, 광주 120년’을 개최한다.
2016년은 행정중심지가 천년 목사골 나주에서 광주로 옮겨온 지 2주갑(120년)이 되는 해다.
이번 전시는 총 4부로 구성해 200여 점의 자료를 통해 광주가 도청 소재지가 되면서 획기적인 발전의 전환점을 맞고 회갑을 두 번 지나며 호남의 웅도로 우뚝 선 발전과정을 되돌아보는 자리다.
제1부 ‘1896년 광주’에서는 광주가 오늘날 광주‧전남 인구의 40%, 호남권 인구의 30%가 모여 사는 거대도시로 발전한 계기로 1896년에 주목한다.
조선시대 광주는 전라도 50여 고을 중 중간 규모의 도시였다. 인구는 전주 7만, 나주 6만에 한참 뒤진 3만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896년 도청소재지가 되면서 지역 내 행정, 교육, 상업의 심장부로 변모했다. 전시는 이런 초기 발전과정과 함께 도청이 처음에는 금남로1가의 전일빌딩 자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주군 결세전 상납 미납 성책(1904년)
또한 1900년대 초 전남도의 예산을 광주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전액 충당했음을 보여주는 자료 ‘광주군 결세전 상납 미납 성책’도 새롭게 발굴, 소개한다.
제2부 ‘일제강점기의 충장로와 광주천’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광주가 도청소재지라는 이점을 활용해 근대도시로 바뀌어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 대표적 사례로 충장로를 통해 근대도시민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1930년대 충장로의 유명 상점의 상품 등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또한 도시개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 시기 광주천의 변천사도 살펴본다. 택지조성 등을 목적으로 광주천은 1920~30년대 지금처럼 직선하천으로 탈바꿈하는데 그 과정에서 광주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살펴본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는 1930년대의 광주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서석초등학교 소장 그림도 공개한다.
제3부 ‘1960년대의 금남로’에서는 광주가 현대도시로 도약하던 1960년대를 도로확장과 택지개발에 초점을 맞춰 들려준다. 금남로 확장과정에 숨겨진 비밀, 그 과정에서 희생된 금남로4가의 단풍나무, 경양방죽 매립과 태봉산 철거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준다. 이 대목에서 1928년 태봉산에서 출토돼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장 중인 인조의 아들 용성대군의 태항아리와 태지석도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에 겪은 애환을 특히 1960~70년대 인구 30만에서 70만으로 급증하면서 광주시민들이 거의 매일 수돗물 문제로 전쟁을 치르듯 살아온 과정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제4부 ‘도시의 확장, 제1순환도로’에서는 1970년에 착공, 1988년에 완공된 제1순환도로를 화두로 삼아 70년대 이후의 광주 변천사를 다룬다. 특히 1966년 등장한 광주 최초의 미도아파트로부터 최초의 아파트단지인 운암동 주공1단지로 이어지는 주택 이야기, 연탄에 얽힌 애환이 이 코너에서 소개된다.
주인택 광주민속박물관장은 “1896년 전남도청 소재지로 광주가 결정된 것은 이후 120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며 “이후 광주가 가파른 도시개발을 하며 잃은 것도 많다. 이번 전시가 이런 도시개발의 공과를 통해 광주의 미래를 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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