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의 제안 내용을 분석해보면 외국인 주주는 물론 삼성과 이 부회장 입장에서도 고려해볼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삼성전자 성장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 등 총수의 공로를 인정, 이재용 후계체제를 수용하려는 자세가 엿보인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공격적으로 삼성과 대립하던 모습과 다른 양상이다.
다만 엘리엇의 요구가 실현되는 데는 여러 걸림돌이 존재한다. 특히 경영진과 최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3명이나 선임하자는 요구는 삼성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7일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임원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열린다. 삼성전자 사업의 90%는 해외에서 이뤄진다. 엘리엇은 이번 주총을 계기로 전체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진 외국인들의 힘을 규합하려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경영 일선에 공식적으로 데뷔하면서 엄청난 숙제를 받은 셈이다.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들은 향후에도 이 부회장 체제에 다양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7월 17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한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가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엘리엇은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을 벌인 바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재용 후계 인정해줄 테니 돈을 달라… 묘수?
엘리엇으로서는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과 배당 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다. 인적 분할은 최근 재계의 가장 보편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법이고, 증권가에서도 대부분 삼성이 이 방법을 택하리라 예상해왔다. 문제는 주주들의 동의다. 이번 엘리엇의 제안은 결국 ‘배당(돈)’을 주면 분할을 승인해주겠다는 뜻이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되면 지주회사의 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18.15%에서 31.45%로 강화된다. 삼성전자가 보유 중인 13.3%(1901만 주)가 지주회사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까지 제안했다.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이재용 부회장인 점을 감안하면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재용 체제를 완성해도 좋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엘리엇이 제안한 30조 원 특별배당 및 매년 잉여현금흐름의 75% 배당 요구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얼핏 외국인 주주들 절반을 가져간다고 볼 수 있지만, 삼성 등 최대주주들도 배당 수혜 대상이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주회사가 합병하면 합병법인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자산의 절반이 자회사 지분)에 해당된다. 이때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43%는 금산분리 위반이 된다. 방법에 따라 삼성전자 사업회사에서 30조 원의 현금배당이 이뤄지면 최대주주인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특수관계인에 약 10조 원 이상의 현금이 유입된다.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 합병법인 배당 몫만 적어도 5조 원 이상이다. 삼성전자가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리할 때 현재 77조 원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현금 중 일부를 삼성전자 지주회사가 떼어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새로운 지주회사가 사들일 자금보다 여력이 커진다.
엘리엇이 요구한 30조 원의 특별배당은 한편으로 보면 현금의 유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중요한 투자지표의 하나인 자기자본수익률(ROE)을 높이는 요인이다. 배당가능이익은 자본계정으로 분류된다. 배당이 이뤄지면 그만큼 자본계정이 줄어 이 수치가 개선된다. 이는 주가 상승 요인이기도 하다.
엘리엇도 삼성전자 측에 보낸 서한에서 12개월 예상이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의 6배에 불과한 주가 수준에 상당 분량을 할애했다. 특히 삼성전자 사업회사가 나스닥에 상장되면 그동안 코스피 내에서 높은 비중 때문에 제한받았던 움직임이 자유로워진다. 나스닥 시가총액은 코스피의 5배에 달하며 애플, 구글 등과 직접 경쟁할 수 있다. ‘이른바 연못 속 고래’가 큰 바다로 나가는 셈이다. 나스닥의 평균 PER은 20배가 넘는다. 단순계산해도 지금보다 최소 3~4배가량 주가가 높아질 수 있는 셈이다.
국내 관점에서 삼성전자의 배당 확대는 국부유출이 될 수 있지만 외국인 주주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번 돈을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과정일 수 있다. 투자를 위한 ‘버퍼(buffer)’로서 현금보유고는 경영진 입장에서는 ‘비상금’이지만 주주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돌려받아야 할 ‘결실’일 수 있다.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엘리엇의 제안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엘리엇의 제안이 삼성 입장에서 달콤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담 요인도 적지 않다.
우선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분리에 따른 지배력 상승에 한계가 있다.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의 개인 지분이 적어 지주회사에 사업회사 지분을 현물출자해 지배력을 배가하는 효과가 적다. 자사주가 지주회사로 넘어가 의결권이 살아나는 게 가장 큰 효과다.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도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삼성전자 자사주와 삼성전자 자회사 지분(삼성전자의 손자회사로 남을 계열사 제외) 가치만 따져도 30조 원이 넘는다. 삼성전자 보유 현금까지 가져온다면 그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 지주회사 가치를 30조 원(가장 보수적으로)으로, 현재 삼성물산 시총 30조 원을 적용한 1 대 1 합병을 가정해보자.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주회사 지분이 미미해 통합법인에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은 현재 삼성물산 지분율의 절반인 9.54%로 줄어든다. 동생인 이부진·이서현 사장, 부모인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리움 관장과 합해도 15%를 조금 넘는 수준까지 떨어진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기주식을 소각하고 이 부회장 일가가 삼성SDI, 삼성화재 등이 가진 삼성물산 순환출자 지분도 사들여야 지분율이 가까스로 20%대가 된다. 그나마 분할 과정에서 삼성전자 지주회사 규모가 더 커진다면, 또 삼성물산이 분할로 쪼개진다면 이 부회장 등 총수일가 지분율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삼성전자 사업회사를 나스닥에 상장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비록 엘리엇의 제안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상장이기는 하지만 국내 증시 간판기업인 삼성전자가 둥지를 해외로 옮기는 데 여론이 고울 리 없다.
또 미국 증시 상장은 곧 현지의 법과 제도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 등 헤지펀드 활동이 활발하고, 이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도 큰 곳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국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에 굴복해 매년 거액의 현금을 배당하는 애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