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합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김근태 문희상 두 전 의장이 6월 18일 한명숙 의원 대선출마 기자회견장에서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열린우리당은 지난 2월 14일의 전당대회에서 대통합 시한을 6월 14일로 정하고 대통합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대통합 성과는 전무했다. 대통합 시한 바로 다음날인 15일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과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16명이 3차로 집단 탈당한 것은 이러한 대통합 작업의 지지부진함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짙었다. 그리고 지난 8일 이들보다 먼저 2차로 집단 탈당했던 임종석 의원 등과 함께 대통합모임을 결성, 대통합 작업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
대통합모임은 43명으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22일 현재 45명으로 숫자가 불어났다. 정치권에선 “대통합모임이 대통합 논의의 주도권을 쥔 핵심 코어가 됐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따라가 봤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여파를 타고 152석이라는 과반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속의원 73명인 열린우리당, 15일 결성된 대통합모임, 김한길 의원이 이끌고 있는 통합신당 등 3개 정파로 나뉘었다. 한솥밥을 먹던 식구들이 현재는 세 가정으로 뿔뿔이 흩어진 모양새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대통합’을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세 지붕 한 가족’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위장이혼’을 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보내고 있다.
탈당파의 한 중진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세 쪽을 갈라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머지않아 대통합의 바다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의원은 “지금은 각각의 모임들이 대통합을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대통합을 위한 논쟁에서 대통합모임이 우세해지고 있는 형세다. 우선 대통합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이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 15일 모임 결성 당시에는 정대철 전 고문과 문희상 의원 등이 주도했다. 여기에 중진인 김덕규·이미경·이석현 의원 등이 함께하면서 모임에 중량감을 더했다.
여기에 지난 13일 탈당했던 김근태 전 의장이 19일 이 모임에 합류했고, 이 모임의 워크숍이 열렸던 지난 20일 저녁에는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참석했다. 대통합모임의 세가 점점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근·영’(문희상·김근태·정동영)이 대통합모임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됐다. 지난 22일 오전에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문·근·영, 정대철 전 고문 등이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대통합 실현에 함께 하자”는 데 재차 인식을 함께하면서 그 외연이 더 넓어지고 있다. 김원기 의원은 아직 탈당은 하지 않았으나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탈당하는 시점에 동반 탈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쯤 되면 열린우리당의 중추가 대통합 모임으로 넘어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며 결국 범여권의 대통합 추진에 있어 대통합모임이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대통합모임이 구상하고 있는 대통합의 그림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반(反)한나라당 세력의 ‘대통합’이다. 이는 열린우리당이나 친노세력이나 민주당이나 손학규 전 경기지사나 마찬가지 입장이며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비(非)노무현과 반(反)노무현에 대한 입장정리가 안 돼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열린우리당에 소속된 친노 의원들과 선을 그어야 할지, 아니면 함께 가야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라져 있다는 점이다.
대통합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중진의원은 “이번 대선에서도 영남을 끌어안고 가지 않으면 대선필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아직도 영남지역에서 일정 정도 지분을 갖고 있는 친노 성향의 의원들과 인사들을 배제해선 안 된다.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대통합모임 소속의 한 재선 의원은 “만약 그들(열린우리당 친노의원들)과 함께 가면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소릴 듣게 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친노 의원들도 개별적으로 대통합모임에 합류하면 몰라도 일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의원은 “친노그룹과는 명백히 선을 긋고 개별적인 입당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며 민주당 측은 친노그룹뿐만 아니라 과거 민주당 탈당 주도세력과 참여정부 책임 인사들과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합이라는 목표는 갖지만 방법과 노선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의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대목이다.
현재 대통합모임에는 ‘대통합모임+열린우리당+통합신당+민주당+국민중심당+시민사회세력+손학규 전 지사의 선진평화연대’ 등 이른바 ‘범여권의 모든 세력이 함께 하는 대통합’을 지향하는 기류가 강하다. 대통합모임은 7월말까지는 창당을 해야 한다는 로드맵을 설정해놓고 있다.
이를 위해 ‘문·근·영’의 최근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문·근·영’은 1·2차에 걸친 3자 회동을 통해 “대통합 실현을 위해서 제정파와 제세력이 즉각적으로 합류할 것을 요청”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열린우리당) 배제를 통한 소통합 논의로는 대통합을 이뤄낼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 세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대통합을 위한 공개·비공개 회동이 분주하다. 김근태 전 의장은 손학규 전 지사를 만나 ‘친구’로서의 우의를 공개적으로 과시했고, 시민단체 인사들과 비공개적으로 잦은 접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희상 전 의장은 민주당 인사들과 대통합에 대한 교감을 갖고 있으며, 박상천 민주당 대표와도 비공개 회동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대통합모임과 통합신당의 기 싸움이 만만치 않다. 대통합모임 측에선 김한길 의원이 이끄는 통합신당이 민주당과의 합당을 오는 27일로 연기한 것에 대해 경계하는 눈치다. 대통합모임의 한 초선의원은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소통합이라고 하지만 통합의 주도권을 그쪽에서 잡게 되면 대통합모임을 떠나 그쪽으로 가는 의원들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여권에선 통합신당과 민주당이 대통합모임을 이탈한 의원들을 합류시켜 ‘소통합’이 아닌 ‘중통합’으로 가려는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통합모임의 또 다른 재선 의원은 “통합신당과 민주당은 지금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민주당과의 합당이 실현되면 탈당 의원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오는 25일까지는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중도개혁세력과의 협상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대통합모임과 통합신당간의 설전이 최근 부쩍 잦아지고 있다. 통합신당은 대통합모임에 열린우리당을 배제한 연석회의를 제안했으나, 대통합모임은 “열린우리당을 배제해선 안 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대통합모임은 대신 20일 워크숍이 끝난 후 역으로 ‘대통합모임+통합신당+민주당+열린우리당+시민사회 진영+손학규 전 지사 지지모임인 선진평화연대’ 등이 묶인 ‘6자회담’을 제안했으나 이 역시 통합신당과 민주당 측에 의해 거부됐다. 대통합모임과 통합신당의 신경전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는 형세다. 결국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범여권의 통합에 비관론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했던 후보단일화를 통한 정권재창출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범여권의 세력들이 각자 후보를 내고 200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대선 직전에 여론조사나 어떤 다른 방식 등을 통해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노 대통령의 이러한 구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하게 설파하고 있는 ‘대통합을 통한 정권재창출’과 충돌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후보 단일화를 통한 정권재창출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또 다른 역풍이 심해져 여권의 분열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대통합모임의 또 다른 중진 의원은 “대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시간이 매우 촉박하긴 하지만 우리는 막판까지 대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반한나라당 세력이 모두 뭉쳐야만 12월 대회전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여권에선 대통합모임과 통합신당+민주당 중 어느 세력이 먼저 ‘반한나라당’을 표방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를 끌어들여 통합할 것이냐가 대통합 주도권을 잡는 핵심 관건으로 보고 있다. 시민단체의 합류가 없다면 결국 ‘도로 열린우리당’이나 ‘도로 민주당’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손학규 전 지사의 선진평화연대도 레이스에 뛰어든 상태다. 모든 정파가 하나로 뭉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라면 일단 세 불리기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통합의 가능성이 판가름 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정병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