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왼쪽), 이명박 전 서울시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실제로 현 정권 핵심부와 정보기관, 각 대선주자들의 캠프 정보팀 등은 대선정국을 주도할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 총성 없는 정보전쟁을 벌이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정보전을 넘어 죽기살기식의 폭로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이러한 폭로전을 교묘히 조종하고 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네거티브 대선정국에서 폭로전을 주도하고 있는 ‘보이지 않은 검은 손’의 실체를 추적해 봤다.
“상대방을 한방에 무너뜨릴 고급 정보를 확보하라.”
본격적인 폭로정국으로 들어선 각 대선캠프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비밀 지령이다. 바야흐로 총성 없는 정보 전쟁이 대선정국을 주도하는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의 이러한 정보전 정점에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사방에서 나오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청와대는 정보의 최종 기착지다. 국정원을 비롯한 검찰이나 경찰 등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에서 취합된 모든 정보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관리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으로 그 위세를 발휘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막강한 정보의 힘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잘 알 수 없는 고급 정보들이 시중에 나돌 때마다 청와대는 그 발원지로 의심을 받곤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검증 전쟁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대운하 보고서’ ‘이 전 시장 위장전입 논란’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 등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고급 정보다. 따라서 이러한 정보가 거침없이 언론에 공개되자 그 배후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전 시장 측은 ‘이명박 죽이기’ 플랜과 관련해 처음부터 ‘청와대 배후설’ 등 음모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배후설을 제기한 이 전 시장 측 대변인을 15일 검찰에 고소했고 이 전 시장 측도 청와대 대변인을 맞고소해 배후설을 둘러싼 양측의 설전은 결국 법적 공방전으로 비화됐다.
이 전 시장의 대표적인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정부 재검토 보고서의 위·변조 의혹이 일면서 파문은 점점 확전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정부가 이 전 시장의 대선공약을 검토했다는 자체가 ‘이명박 죽이기’를 자인한 꼴이고 대외비였던 보고서 문건이 언론에 유출된 것 또한 청와대나 범여권 관계자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 후보의 핵심 측근은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 보고서를 변조한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노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 팀을 의심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친노주자인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이 최초로 제기한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의혹도 정부기관의 협조 없이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의원은 “이 전 시장의 부인 김윤옥 씨가 서울 강남구를 중심으로 15차례나 주소를 바꾼 사실을 확인했다”며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김 씨의 주소이전 사실이 기록된 주민등록초본 사본을 공개하기도 했다. 결국 위장전입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고 이 전 시장은 고개를 떨구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개인의 사생활보호 차원에서 주민등록표의 열람이나 등·초본의 교부신청은 본인과 세대가족에 한정하고 있는 현행 주민등록법을 감안하면 누군가 이 전 시장 가족 몰래 김 씨의 주민등록초본을 입수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는 결국 동사무소 등 정부기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만큼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했음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지난 14일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이 전 시장의 ‘이상한 부동산 매각 의혹’ 건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고급정보로 분류되고 있다. 이 전 시장이 충북 옥천군 임야 37만여 평과 양재동 부동산을 과거 이 전 시장의 처남 등에게 매각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물론 이 전 시장의 과거 행적을 잘 아는 사람이 언론사에 제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 전 시장의 부동산 소유실태를 파악하는 데 정보기관이 협조했을 가능성에 이 전 시장 측은 무게를 두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받고 있는 고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의혹들도 정부나 정보기관의 협조 없이는 접근하기 힘든 정보들이 대부분이라는 게 박 전 대표 측 설명이다.
특히 최 목사의 가계도와 가족의 부동산 보유 실태 등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정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당원인 김해호 씨는 지난 17일 “박 전 대표의 자택 주변에 최 목사의 친·인척들이 몰려 살고 있다. 최 목사의 딸들이 강남에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일부 언론은 범여권 핵심 인사로부터 안기부(현 국정원)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박근혜 X파일’을 건네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최태민 목사 의혹 제기’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박 전 대표를 음해하려는 특정세력이 고의적으로 김 씨나 언론에 ‘구하기 어려운 자료’를 흘리고 있다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 측 김재원 대변인은 21일 “김해호 씨의 행적에 대해 여러 제보가 들어오고 있으며 이를 확인하고 있다”며 “김 씨의 배후에 특정세력이 존재한다는 판단이 들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배후세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정부의 대운하 보고서 문건 사본과 김영우 씨가 한나라당 검증위에 제출한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 문건 사본.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렇다고 청와대나 여권만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전 시장 측과 박 전 대표 진영도 서로 ‘보이지 않는 검은 손’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양측은 오래전부터 지지율 경쟁과 더불어 치열한 정보 경쟁을 펼치고 있다.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기관 출신들이 캠프에 다수 포진해 있고 상대 측 일정은 물론 상대 후보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전방위로 취합하고 있다. 일각에선 양 캠프가 각각 상대 측 캠프에 정보원을 심어 놓고 내부 기밀을 빼내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 전 시장 측은 대운하 보고서 변조 주체로 박 전 대표 측을 의심한다. 이 전 시장 측은 21일 한반도 대운하 정부 보고서 변조 주체로 사실상 박 전 대표 측을 지목했다. 이 전 시장 측 정두언 의원은 “정부의 문서 파일이 특정 캠프 모 의원한테 넘어갔으며 그 의원이 일부 내용을 변조하고 그게 모 언론사에 넘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이 지목한 의원은 박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이라는 게 정설이다. 진수희 대변인도 “유 의원의 5월 31일 기자회견을 보면 보고서에 나오는 태스크포스의 존재는 유 의원만이 알고 있었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 의원 발언이 사실이라면 본인이 국회의원직을 그만두고 정 의원 발언이 허위라면 정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그만둬야 한다”며 강하게 반박하고 있어 대운하 보고서 변조 논란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전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이 전 시장이 현대건설 회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88년 노조 설립을 추진하던 인사에 대한 납치·감금 사건에 실질적으로 관여됐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이 전 시장 측은 박 전 대표 측을 의심하고 있다. 현대건설 노조설립추진위원장 출신의 서정의 씨는 21일 한나라당 검증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88년 현대건설 노조 설립을 추진하던 중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 직접 노조설립 포기를 회유했지만 거부하자 사주를 받은 조폭들에 의해 납치돼 닷새 동안 감금당했었다”며 이 전 시장을 납치사건의 총책으로 지목하면서 자신의 비망록 등을 검증위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는 동시에 ‘정치적 배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반박 자료를 통해 “당시 검찰 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서 씨도 본인 스스로 이 전 시장은 관련이 없다고 진술했었다”면서 “19년이 지난 다음 지금 와서 갑자기 말을 바꾼 배경이 의심스럽다. 이제 와서 허위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흑색선전이자 네거티브”라고 주장했다. 이 전 시장 측의 한 고위 관계자는 21일 기자와 전화통화를 통해 “서 씨가 한나라당 당원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분명 정치적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정치 지향적인 서 씨를 사주해 이 전 시장을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는 세력이 누구겠느냐”며 사실상 박 전 대표 측을 배후로 지목했다.
반면 박 전 대표 측은 최 목사와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을 부추기는 배후자로 이 전 시장 측을 지목하고 있다. 최 목사나 정수장학회 의혹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돌았던 근거없는 소문들인데 이 전 시장 측이 확대 재생산해 정치공작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게 박 전 대표 측의 판단이다.
범여권 대선주자들도 폭로정국을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손 중의 하나로 지목받고 있다. 친노주자인 김혁규 의원은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해 그의 사과를 이끌어 냈고 ‘이명박 X파일’을 갖고 있는 대선주자로 지목받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가까운 의원들은 주가조작 의혹 등 이 전 시장 때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박 캠프 진영은 의원 신분으로 취득하기 힘든 고급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는 배경에는 분명 현 정권 차원의 물밑 지원 내지는 협조가 뒷받침하고 있을 것이라며 정치공작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이·박 경선 후보를 둘러싼 검증 공방전이 폭로정국으로 비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폭로전을 뒤에서 실제로 주도면밀하게 조종하고 주도하고 있는 ‘검은 손’이 존재한다는 의심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나서서 폭로전을 펼치는 사람들이나 이를 이용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정치인들이나 결국은 알게 모르게 ‘검은 손’의 조종을 받고 있을 것이란 추론도 나오고 있다. 물론 정보전의 성격상 ‘검은 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나 존재한다 해도 그 실체를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나라당 경선은 물론 연말 대선정국이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네거티브 폭로전으로 극도로 혼탁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