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언뜻 훑어봤을 때 병력 규모면에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를 훨씬 앞서지만 충성도에서는 박 전 대표 측이 강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전 시장 군영은 진나라 병사들을 흡수해 항우의 소수 정예군을 포위했던 유방의 군대와 닮았다. 반면에 박 전 대표 진영은 도원결의를 통해 소수이지만 충직한 군사들을 얻었던 유비의 군대와 견줄 만하다.
전쟁에서 병력 수와 병력 배치는 1급 기밀이다. 양측 군영은 한사코 병력에 관한 언급을 피했다. “(지휘부인)우리도 솔직히 파악이 안 된다”는 대답도 양측이 비슷했다. 이미 언론에 언급된 선거조직을 지적하면 조금씩 털어놓는 수준이었지만 얼개는 잡을 수 있었다.
대선 경선전에서 ‘정규군’은 국회의원 지역구를 기본단위로 계산한다. 때문에 대선주자들은 캠프에 더 많은 국회의원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두 캠프의 선대위 인선 발표를 통해 살펴본 정규군 장수인 국회의원 수는 이 전 시장 군영이 36명, 박 전 대표 측이 32명이다. 여기에 과거의 원외 지역구 위원장격인 당원협의회 위원장이 각각 60여 명과 50여 명 포진해 있다는 전언이다. 두 주자의 캠프에 포진한 장수들만을 놓고 따져보면 정규군의 숫자 싸움에서는 일단 이 전 시장 측이 유리한 국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군세의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지방자치가 자리를 잡으면서 새롭게 부상한 ‘호족세력’인 지방의원들의 거취가 변수이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원 지역구에는 보통 2명의 광역의원이 있다. 이들은 차기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을 노리는 일선 전장의 실력자들이다. 양 진영에 가담한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들의 광역의원들에 대한 장악력이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어 단순히 국회의원의 숫자만으로 전력을 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박 전 대표 진영에 포진한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의 광역의원들에 대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이 전 시장 측 장수들에 비해 강하다는 것이 중평이다.
예를 들어 부산이 지역구인 이 전 시장 측의 A 의원은 자기 지역구에 있는 광역의원 2명이 박 전 대표를 지지하면서 뛰고 있지만 손을 쓰지 못하는 형편이다. 반대인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장수들의 일선 호족에 대한 장악력은 박 전 대표 측이 세다는 데는 이 전 시장 측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왜 그럴까.
이 전 시장 군영의 한 장수는 “이 전 시장 측에 선 의원들은 소장파들이 많은 반면에 박 전 대표 측에는 상대적으로 중진들이 많다”면서 “그런 점에서 (이 후보 측 장수들의 호족세력에 대한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전쟁은 전후방이 따로 없는 총력전이다. 양 진영의 선대위에는 정규군뿐만 아니라 여성·청년·직능 등 이중삼중의 외곽조직망을 가동하고 있다. 정규군인 기간조직망과 겹치기도 하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순수 외곽조직도 있다. 이들 외곽조직을 가늠해 보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군영의 군사력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양측은 외곽조직에 관한 한 입을 봉하고 있다. 과거 선거에서 사조직의 폐해가 드러면서 현행 선거법은 이들 조직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박 진영에서는 외곽조직명을 거론해도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주자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조직이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갖추고 정규군 못지않은 충성심을 발휘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 양 캠프의 설명이다.
실제로 박 전 대표 측의 외곽조직인 ‘아름다운공동체’는 이 전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구전한 혐의로 선관위의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표 측 정인봉 법률특보가 참석한 아름다운공동체 회의에서 ‘MB(이 전 시장)와 관련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구전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기록된 회의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선거전의 주요 행사에 원군을 보내는 것도 외곽조직의 몫이다. 이 전 시장 군영의 ‘대장군’격인 이재오 의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희망세상21 산악회’가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에 회원 2500명을 동원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28일 여의도 63빌딩 종합토론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후보토론회에도 이·박 진영 모두 외곽조직이 참여해 세 대결을 벌인 사실에 대해 굳이 변명하지 않는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장수는 “토론회에 가 보면 (지지자들이 타고 온) 버스들이 있지 않느냐. 열성적으로 돕겠다는 마음으로 오는 걸 막을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진영의 외곽부대 역시 이 전 시장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인 희망세상21 산악회를 비롯해 안국포럼을 정점으로 하는 지역별 포럼, 명박사랑, 한국의 힘, 경부운하 추진본부, MB연대 등 2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전 대표 군영에는 박사모를 비롯해 한강포럼, 아름다운 공동체, 강북포럼, 민추협 등에 과거 고건 전 총리를 지지했던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등 일부 모임까지 합류해 10여개에 이른다.
양 군영에 외곽부대의 병력을 물어보면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온다. “100만 명은 넘을 거다”, “우리는 200만 명이다”, “그쪽에서 200만 명이래? 우리는 아마 그 두 배는 넘을 걸” 이런 식이다. 이 전 캠프 측에서 조직을 맡고 있는 한 장수는 “솔직히 (외곽부대 병력을) 잘 모른다. 아마도 양쪽이 주장하는 숫자를 다 합치면 (전 인구에 해당하는) 4000만 명이 넘을 것”이라며 웃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이 전 시장 측의 대표적 외곽조직은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희망세상21 산악회, 정책자문 그룹인 국제전략연구원과 바른정책연구원, 언론인 출신 자문그룹인 세종로포럼, 팬클럽인 MB연대 그리고 지역별 포럼을 꼽을 수 있다. 희망세상21 산악회는 지난 5월 현재 16개 광역시도지부 아래 274개 시·군·구 지회가 결성돼 회원수가 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압수된 이 산악회의 문건에는 충북 4265명, 강원도 3446명 등 전국적으로 4430명의 책임당원을 모집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이 전 시장의 지역순회 행사 때도 유세지원을 하고 경선 때까지 100만 명, 대선 때까지는 300만 명의 회원을 모집한다는 목표가 제시돼 있다. 이재오 의원이 주도한 이 산악회 사무실 개소식에는 이 전 시장의 부인과 핵심 측근인 정두언 의원 등이 참석하는 등 심혈을 기울인 외곽부대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역별 포럼은 구체적으로 숫자가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거미줄처럼 형성돼 있다. 이 전 시장의 친위조직인 안국포럼을 중심으로 대구의 선진한국 국민포럼, 강원도의 비전강원포럼, 충남의 충청미래포럼, 전북의 마주보며포럼, 경남의 미래사회국민포럼 등의 식으로 연결돼 있다. 지역여론을 주도하는 전문가 그룹이 포진한 이들 포럼이야말로 이 전 시장을 지탱하는 힘인 셈이다.
박 전 대표 진영의 대표적 외곽부대는 각계의 열성 지지자가 포진한 한강포럼, 전국 청년조직인 미래비전, 모 운동본부, 박사모 등을 꼽을 수 있다.
박 전 대표 진영의 현경대 전 의원이 주도하는 한강포럼은 정·관계는 물론 전직 법조·언론계와 연예·체육계 인사 등이 망라돼 있다. 이 포럼은 지난 2월 창립당시 3000여 명이었던 회원 수를 100만명 까지 늘린다는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 인사로는 이양호 전 국방장관, 이상진 전 청와대 국정실장, 이범관 전 대구 고검장, 송석형 전 SBS 보도본부장, 황재홍 전 동아일보 정치부장, 가수 김수희 정수라, 전 복싱 세계 챔피언 홍수환 장정구 씨 등이다.
박 전 대표는 이 포럼 창립대회에 직접 참석해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자”고 독려했다. 모운동본부도 이미 전국 조직을 갖추고 세 확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월 광주에서 열린 이 단체의 창립식에서 “지역화합, 이념화합, 세대화합의 새로운 ‘삼합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박 전 대표 군영의 군사격인 서청원 전 대표가 이끄는 것으로 알려진 청년조직인 미래비전은 이 전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청년층을 공략하는 전위부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게 캠프 관계자의 귀띔이다. 서 전 대표는 지난 5월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독전했고, 장영호 미래비전위원장 등은 경선 승리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담은 선언서를 채택했다.
천하를 얻은 영웅들에게는 초야에서 묵묵히 지원하고 화급할 때 구원해주는 세력이 있다. 대통령을 목표로 뛰고 있는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도 이런 우군세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규군이 아닌 외곽지원부대는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이 전 시장 군영의 희망세상21 산악회에 대한 검찰수사와 박 전 대표 진영의 아름다운 공동체의 선관위 조사에서 확인되듯 선거전에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정기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