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후보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와 당시 사진. | ||
본지는 이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가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라고 판단, 지난 4월부터 약 두 달여에 걸쳐 양측에 자료 협조를 부탁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최근 기자에게 초·중·고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를 모두 제공했고, 이 전 시장 측은 처음엔 난색을 표시하다가 최근 고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만 제공했다. 하지만 지방 실업계 야간 고교의 특성 때문인지 내용이 다소 부실했다. 초·중학교 시절의 자료가 필요했지만 이 전 시장 측은 “공개 못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 당장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쉬운 대로 이 전 시장이 그동안 자신의 자서전과 언론 인터뷰에서 밝혀온 유·청소년기 시절의 기록을 대체 자료로 우선 활용하고 나머지 초·중학교 기록은 이 전 시장 측의 약속대로 추후 자료 협조를 받아 추가 공개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이명박
이명박 전 시장은 1941년 12월 19일생이다. 그는 48년 포항 중앙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인 3학년 때 포항 영흥초등학교로 전학했다. 54년 포항중학교에 진학했다. 당시의 학창시절에 대해서 이 전 시장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 여동생은 어려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가난했던 우리 형편에 오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항상 “귀분이(이 전 시장의 여동생)는 초등학교, 명박이는 중학교까지만 보내줄 거다. 모두 형(이상득 국회부의장) 학비에 보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한 사람이라도 성공하면 우리 모두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이 전 시장은 중학교 때부터 학교를 마치면 집 앞 시장통에서 어머니의 풀빵장사를 도우며 김밥장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당시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는데 이 때문에 학교에서 불량학생이라는 오인까지 받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가정방문을 한 선생님이 가난한 형편을 확인한 후부터는 많은 격려를 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어머니께 강력히 권유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 전 시장은 이렇게 쓰고 있다.
‘중학교 때 줄곧 전교 2등을 했으나 형의 진학을 위해 고교 진학은 포기해야 할 형편이었다. 당시 도내 최고의 명문이었던 경북고를 진학하라고 담임이 권했으나 학비 문제로 불가능했다.’
‘집안 사정을 들은 선생님은 생을 살아가는 데는 중학교보다는 고교 졸업장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고등학교 진학을 계속 권하였다. 담임선생님과 어머니의 공방전은 오래 갔다. 선생님의 마지막 제의를 어머니는 받아들였다. 돈이 들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등록금이 면제되는 동안만 다닌다는 약속하에 들어간 (동지상업)고등학교를 나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3년 내내 주야간 통틀어 1등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57년 동지상고에 진학했다. 여전히 집안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야간고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 재학 당시 이 전 시장은 포항여고 앞에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풀빵 장사와 과일행상 등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이 전 시장의 고등학교 당시 생활기록부를 들여다보자. 그의 출생지는 경북 포항시 죽도동으로 기재되어 있다. 오늘날 출생지 논란이 일고 있는데 최근 이 전 시장은 자신의 정확한 출생지는 일본이라고 밝히고 있다. 부친 이충우 씨는 직업이 노동으로 되어 있다. 부모의 종교는 기독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기타 가족’ 란에 ‘형 2명, 매 1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알려진 대로 이 전 시장의 여자 형제는 누나와 여동생 등 2명이다. 왜 이런 착오가 생겼는지 의문이다.
취미와 특기란에는 중학교 시절에는 ‘체육’(탁구)으로 기재되어 있고 고교 1학년과 2학년 때에는 ‘영어’라고 기재되어 있다. 본인의 적성과 희망 직업란에는 ‘관리’라고 적혀 있다. 부모의 의견란에도 ‘본인과 동일’하다고 적혀 있다.
출석 상태는 당시 실업계 야간 고교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와 있다. 1학년 때 4일간, 3학년 때 5일간 결석했고, 2학년 때에는 개근했다. 행동발달상황 역시 대부분 ‘가’(우수)로 표기되어 있다. 다만 2학년 때 ‘신중성’란에 ‘×’가 표기되어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교사의 의견을 쓰는 란에는 1학년 부분에만 유일하게 기재되어 있었는데 ‘성격은 착실성, 결단력이 강함, 소행은 단정하여 타의 모범이 됨’이라고 평가했다. 2, 3학년 란은 비워져 있다.
성적표를 보면, 국어·영어·수학 등 대부분의 과목들이 ‘수’이며, 간혹 ‘우’가 눈에 띄는 정도다. 하지만 상업계 고등학교의 전공과목인 상업과의 몇몇 세부 과목에서 ‘미’가 몇 군데 눈에 띈다. 아마도 상업계 학교에 다녔으나 본인은 대학 진학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총점이나 평균, 반 석차나 전교 석차 등은 기재돼 있지 않다.
이밖에 특기사항이나 지도경과 검사 기록 등도 모두 빈칸으로 남아 있다. 특별활동은 1, 2학년 때 ‘문예반’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도호국단 평가 역시 1학년 때 ‘적극적 활동’이란 문구가 유일하다. 종합기록란에도 1학년 칸에만 ‘학업 우수하고 타의 모범임. 장래가 기대됨’이란 평가가 적혀 있다.
격변기에 야간 실업계 학교란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1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거의 대부분 기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였다. 이에 대해 동지고(동지상고의 현 교명) 행정실의 한 관계자는 “실업계 야간반이었기 때문에 당시 교사들이 학생 개개인의 상황에 대한 세세한 파악이 부족했을 것이다. 특히 50년대여서 기록이 더 부실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 박근혜 후보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와 사진. | ||
박근혜 전 대표는 1952년생으로 58년 서울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생일이 2월생이어서 동갑들보다 한 해 일찍 입학한 셈이다.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기 3년 전이다.
장충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부친의 직업란이 ‘군인’으로 기재되어 있다. ‘근화유치원 중퇴’라는 기록이 특이하게 다가온다. 출석상황을 보면 1학년 때 17일 결석한 것으로 나와 있다. 3학년 때에도 7번을 결석하는 등 6년간에 걸쳐 총 28일간 결석했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의 저학년 때 비교적 결석이 잦은 편이다.
교사들의 종합 의견란은 거의 동일하다. ‘침착하고 겸손하며 실수가 없고 매사에 용의주도하다’는 것. 다만 ‘특정 아동들과만 노는 습관이 있음’,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는 지적도 눈에 띈다.
행동발달 상황 역시 거의 대부분이 ‘가’(우수)였고, ‘근로성’ ‘명랑성’ ‘창조성’ 등 일부 항목에서 간간이 ‘나’(보통)가 눈에 띄었다. 성적 역시 전 과목이 전 학년에 걸쳐 대부분 ‘수’ 또는 ‘우’였다. 다만 유일한 하나의 ‘미’는 3학년 때 음악이었다. 그는 음악보다는 미술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학년과 6학년 때 ‘미술부’ 활동을 했고, 취미 또는 특기에도 미술과 피아노라고 기재되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부친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64년 그는 서울 성심여중에 입학했다. 박 전 대통령이 5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였다. 이때부터 개인 신상 기재란에 6년 전 초등학교 입학 당시와 비교해서 다소 변화된 기록이 눈에 띈다. 우선 종교란에 6년 전은 부모의 종교가 ‘불교’라고 되어 있으나 중학 입학 당시엔 ‘무’로 되어 있고, 대신 본인의 종교는 천주교로 되어 있다. 부친의 학력 역시 6년 전에는 ‘일본 육사’로 되어 있던 것이 중학 입학 이후부터는 ‘육군사관학교’로 바뀌어 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해방 전 일본육사 57기로 임관했고, 해방 직후 국내 육사(2기)를 다시 마쳤다.
중학시절 출석 상황은 아주 양호한 편이어서 2학년 때 한 번의 조퇴를 제외하고는 결석이 없었다. 취미와 특기는 피아노, 독서, 수영, 승마 등으로 나와 있고, 적성은 ‘문필가’로 되어 있다. 문예반 활동을 하는 등 문학에 소질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학년 때는 연극반에서 활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본인의 희망은 모두 ‘대학 진학’으로 나와 있는 반면 부모의 희망에는 ‘교육자’로 기재되어 있다.
행동발달상황 또한 대부분 ‘가’로 되어 있으나 창조성, 정의감, 친절 예의 등의 일부 항목은 ‘나’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2학년 때에는 ‘명랑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눈에 띈다. 그는 중학교 시절 3년간 반장을 맡은 것으로 되어 있다. ‘침착하고 온순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가가 적혀 있다.
성적은 3년간 계속 반에서 1등이었다. 다만 전교 석차는 나와 있지 않다. 영어 성적이 뛰어났고 상대적으로 수학이 좀 부진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2학년 때 실시한 IQ 검사인데 127로 나와 있다.
67년 그는 성심여고에 입학했다. 1학년 때에 6대 대선이 치러졌고 박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고교 3년간 개근이었고 본인과 부모의 희망직업란에는 ‘교육자’로 기재되어 있다. 행동발달상황도 ‘창조성’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가’였다. 1, 2학년 때에 반장을 맡은 것으로 나와 있다.
교사들의 평가 역시 우수했다. ‘언어와 행동이 단정하고 친절하며 타인의 신뢰를 받음’(1학년), ‘스스로 할 일을 알고 행하는 성품임’(2학년), ‘언어 행동이 바르고 자주적이고 의욕적임’(3학년) 등이다. 다만 ‘지나치게 어른스러움이 험(흠)’, ‘지나친 신중성 때문에 과묵한 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성적 역시 3년 내내 석차는 반에서 1등이었고 영어 등 전 과목이 우수했으나, 수학이 다소 약한 편이었다. 특별활동은 동양화반과 불어반에서 활동한 것으로 되어 있다. 1학년 때 실시한 적성검사 결과는 ‘이과 및 사회과학의 적성이 높다’고 기재되어 있다.
박 전 대표는 최근의 자서전에서 ‘학창 시절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 때문에 항상 성적이나 모든 면에서 다른 학생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 ‘어머니가 가장 신경 썼던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세 남매가 대통령의 자녀라는 특권의식과 우월감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자라는, 평범하지 않는 환경을 늘 염려하여 장난감이며 옷 등등 남들에 비해 좋은 것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