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범여권 대통합을 위한 대선주자 연석회의에 참석한 예비 대선주자들. 왼쪽부터 손학규 김혁규 이해찬 한명숙 정동영 천정배.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4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비롯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천정배 의원 등이 참석한 대선후보 6인 연석회의가 열린 데 이어 열린우리당 탈당파가 중심이 된 범여권 대통합파가 7월 말~8월 초 신당을 창당한다는 ‘범여권 창당 로드맵’을 마련했다. 7일에는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박상천 김한길 통합민주당 대표, 정대철 대통합추진모임 대표 등 범여권 3대 정파 지도부가 만나 대통합을 논의했다.
어찌보면 범여권 대통합 신당 창당이라는 큰 틀이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신당 창당 과정에서 조율돼야 할 범여권 각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변수로 남아있고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각 주자들의 물밑 경쟁도 치열한 상황이다. 또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 잔류파들의 움직임도 변수다. 모두가 겉으로는 ‘대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뛰고는 있으나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은 한나라당 두 주자들의 치열한 싸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자칫하면 더 복잡한 지형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범여권 후보 가르기 작업은 한나라당 양 주자들의 경쟁보다 더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지지율 1위라고는 하지만 손학규 전 지사의 지지율이 뚜렷하게 높지 않은데다 정동영, 이해찬 등 기타 주자들도 각자 일정 지지층이 확고한 상황이다. 손 전 지사가 가장 가능성 높은 인물로 거론돼 왔지만 다른 주자들의 셈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범여권 통합 작업에 대해 이렇게 ‘총평’을 했다. 열손가락으로 모두 꼽을 수도 없는 대선 주자들이 나서고 있는 범여권 지형에 대해 이 관계자는 그리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듯했다.
현재 범여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거나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은 손학규 전 지사를 비롯해 정동영 전 의장, 이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천정배 의원 등 6인 연석회의 참석 인사들 외에도 김두관 전 장관, 신기남 의원, 김원웅 의원, 김영환 전 의원, 추미애 전 의원 등 무려 10명이 넘는다. 과연 범여권 통합 작업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당장은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이 중심이 되어 구상하고 있는 ‘통합신당 창당 로드맵’이 범여권 통합 작업의 큰 줄기를 형성하게 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 43명이 소속된 ‘대통합추진모임’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워크숍을 열고 범여권 후보 6인 연석회의에서 합의한 ‘대통합 신당’을 7월 25일께 창당하기로 합의했다. 늦어도 8월 초엔 신당을 출범하겠다는 마지노선도 정했다.
이 모임에는 이를 지지하는 시민단체 및 각 정치세력도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8일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주도하는 시민사회세력인 ‘미래창조연대’ 신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시작으로 손학규 전 지사 측의 선진평화연대와 정동영 전 의장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 탈당파, 그리고 통합민주당 일부 세력이 합류해 창당 준비위를 결정하고 늦어도 8월 초까지 대통합신당을 창당한다는 계획이다.
이렇듯 큰 밑그림은 그려졌으나 각 주자들과 세력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다. 손학규 전 지사의 경우 대통합신당 합류를 선언했으나 이후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의 경선 방식과 룰에 대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손 전 지사는 범여권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그 지지율이 10%도 안 되는 ‘못 미더운’ 수치다. 범여권 내의 지지기반이 미미한 손 전 지사의 입장에서는 기득권 세력이 우글거리는 범여권에 깊숙이 발을 넣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손 전 지사는 완전 오픈프라이머리를 할 수 없다면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높여 일반국민과 선거인단 간의 차이를 극복하자는 입장이다. 손 전 지사 측은 여론조사를 최소한 20% 이상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손학규 전 지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또 다른 속내가 있다. 손 전 지사와 선진평화연대는 창당준비위원회 합류 여부를 두고 적잖이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주 신당창당 로드맵이 발표되며 언론에서는 손 전 지사와 그의 조직인 선진평화연대가 12일께 ‘대통합 추진모임’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손 전 지사 측은 구체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머리에는 호남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업고 있는 통합민주당과의 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손 전 지사의 입장에선 대통합파가 ‘탐나지만’ 통합민주당 역시 ‘놓칠 수 없는’ 세력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의 지지를 얻는다면 손 전 지사로선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의 합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 손 전 지사 또한 대통합파에 불쑥 몸담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통합민주당이 손 전 지사와 정동영 전 의장에게 잇따라 러브콜을 보낸 것도 두 대선주자들의 셈법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 전 의장은 손학규 전 지사와 명목상으로 ‘한배’를 탔으나 두 사람은 서로 견제 관계다. 손 전 지사에게 지지율에서 ‘밀리고’ 있는 정 전 의장으로서는 호남이 마지막 보루다. 따라서 결국은 호남표를 두고 통합민주당과 삼각관계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손학규 전 지사와 통합민주당의 모임은 첫 만남부터 삐걱거렸다. 지난 4일 대선주자 연석회의 직후 가진 손 전 지사와 박상천·김한길 통합민주당 대표의 만남에서 양측은 대통합에 대한 의견차를 보이며 대립했다. 손 전 지사는 “내가 말하는 한반도평화 미래세력과 통합민주당이 말하는 중도개혁세력은 다르지 않다. 과거에 얽매여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하는 것을 떨쳐버리고 미래를 향해서 다 같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상천 대표는 “정당은 기본이념이 있어야 하고 정책노선도 분명해야 한다”며 “잡탕 대통합은 문제”라고 맞받았던 것.
통합민주당이 대통합신당에 대해 다소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는 다급함이 담겨 있기도 하다. 지난달 27일 창당한 통합민주당은 애초부터 독자적인 후보를 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김영환 전 의원에 이어 이인제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고 추미애 전 의원 또한 출마 의사를 밝혔음에도 당내에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는 점은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김한길 대표가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통합민주당이 일찌감치 문을 닫아걸고 독자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것처럼 일부의 오해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언급한 것도 스스로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더구나 통합민주당 내에서도 대통합 쪽을 지지하는 세력과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통합민주당은 여권 내의 확실한 정치적 지분을 갖고 있다. DJ의 적통을 이어 받았다는 명분과 호남 지지기반은 범여권 통합에서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축’이다. 이 때문에 통합신당파에서도 “민주당의 참여 없이 통합은 의미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합민주당이 범여권 대통합 작업에 적지 않은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대통합파 내부에서도 이를 끌어안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은 “대통합의 큰 물결에 꼭 있어야 할 한 가지가 빠진 게 있다. 민주당이 대통합의 대세에 참여해야 대통합은 완성된다”고 민주당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의장은 또한 “대통합하라, 그러면 다시 한 번 밀어주겠다는 게 호남민심”이라며 ‘호남민심’을 의식한 발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통합민주당 내부에서도 한발 물러나 대통합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다. 통합민주당의 신중식 의원도 지난 5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당내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신 의원은 “당내 대통합파 의원들과 원외 주요 인사들이 다음 주 초(7월 9~10일경) 탈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예고하며 “박상천, 김한길 공동대표도 대통합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도 대통합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홍업 의원이) 물밑에서 대통합파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범여권 내의 각 세력들 간의 재편과 통합은 피할 수 없는 구도이다. 현 구도하면 대통합 물살을 타고갈 수밖에 없지 않나. 세력 통합은 DJ 또한 공식적으로도 누누이 강조해 온 점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합파와 통합민주당의 ‘통합’보다 어쩌면 더 큰 변수로 남아있는 것이 열린우리당 내의 강경 친노 세력들과 친노 주자들인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대세로 흐르고 있는 대통합에 동조해 가는 분위기지만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여전히 내부의 이견은 팽팽하다. 친노그룹의 대표주자로 비춰지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도 일단은 대통합에 참여한다는 입장이지만 친노 강경 그룹은 여전히 당 사수를 고집하고 있는 상황. 통합민주당에서도 열린우리당 해체와 친노그룹 배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양 측의 관계 정리가 대통합에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당대당 통합은 불가하다”고 언급해왔고 김한길 대표 또한 “열린우리당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대통합으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통합민주당뿐 아니라 열린우리당 탈당파 가운데서도 친노 그룹의 합류방식을 두고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일단 열린우리당 선해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해체 여부보다는 친노 세력들과의 관계 설정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짚기도 했다.
이번 6인 연석회의에 참여한 이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등 세 주자가 친노 후보인 점은 향후 열린우리당의 합류 방식을 두고 팽팽한 접점 찾기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들 주자들이 당대당 통합을 원하거나 열린우리당 지분을 갖고 들어올 경우 타 주자들의 반발이 예상될 뿐 아니라 대통합 신당 창당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또한 7일 열린우리당 사수모임인 ‘중개련(중단 없는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의 전국 당원대회를 열기도 한 친노 진영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 김두관 전 장관이 끝까지 당 사수를 고집하며 대선전에 별도 참여할 경우 친노 강경그룹은 범여권에서 별도의 세력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렇듯 제각각 동상이몽 중인 세력들이 결국은 한 배를 타게 될지 아니면 언제 어디서 충돌할지 앞날은 불투명하다. ‘무차별 대통합’ ‘중도개혁 대통합’ ‘열린우리당 배제 대통합’ 등 ‘대통합’을 수식하는 형용사가 남발하고 있는 것도 이들의 통합작업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