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기 당 개혁특위 위원장(왼쪽), 고건 전 서울시장 | ||
여기에는 특히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인선을 계기로 새로운 파워그룹으로 급부상중인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계열과 인수위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해온 고려대 인맥 간 ‘힘 겨루기’의 성격도 짙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먼저 신주류 시니어그룹의 당권 후보는 정 최고위원으로 정리됐다는 것이 각 진영의 공통된 분석. 정 최고위원과 경합을 벌였던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정 최고위원을 대미 특사로 지명한 것을 계기로 당권 도전 의사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기 총리론’이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도 대략 이 무렵부터이며 통추 출신 인사들이 “개혁과 안정을 겸비한 총리감은 김 위원장뿐”이라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통추 출신 한 인사는 “최근 김 위원장과 만났더니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노 당선자의 뜻이 확실해진 만큼 더 이상 당권에 연연치 않겠다’고 하더라”며 “때마침 노 당선자가 ‘개혁 총리론’을 얘기한 지 얼마 안된 터라 노무현 정부의 초대 총리로는 김 위원장이 적임’이라고 했더니 김 위원장도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내심 바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와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 등 새 정부 정무라인도 최근 김 위원장의 총리 기용 당위성을 직/간접적으로 설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통추그룹과 함께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왼쪽)는 김윈기 당 개혁특위 위원장(오른쪽)의 총리 당위성을 설파했다. | ||
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안정과 균형감각을 갖춘 김 위원장이 총리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다”며 “이미 노 당선자에게 한 번 건의했고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총리 후보로 계속 추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나아가 김 위원장의 당권 경쟁에 대해 “당권을 놓고 내가 김 위원장과 충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여 두 사람 간에 ‘모종의 밀약’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민주당 내 쇄신파 그룹 역시 김 위원장의 총리 임명에 호의적이었다. 이들은 노 당선자가 내세운 ‘안정 총리론’과 관련해 고건, 이홍구, 이수성 전 총리 등이 후보로 거론되자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여기에 쇄신그룹의 중심으로 차기 당권 도전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정동영 고문은 같은 전북 출신인 김 위원장이 총리로 방향을 틀 경우 여러모로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 때문에 환영했던 입장.
쇄신파들은 그러나 김 위원장이 총리에 임명될 경우 그가 관장하고 있는 당 개혁작업에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내놓고 지원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김원기 총리론’을 축으로 당내 파워그룹 간 권력 재배치를 위한 물밑 움직임이 거세지자 그동안 노 당선자 주변을 장악하면서 실세그룹으로 부상한 고려대 인맥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임채정 인수위원장, 신계륜 당선자 비서실장, 이병완 기획조정분과 간사, 정순균 대변인, 정만호 행정실장 등 인수위 주요 인사들과 노 당선자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민주당 전략연구소 부소장 등으로 라인업된 고려대 인맥은 그동안 총리 인선 등 차기 정부 구성에 대해 물밑에서 의견을 나눠 노 당선자에게 보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인수위원회를 ‘접수’한 고려대 인맥은 ‘고건 총리론’을 강 력히 주장했다. 임채정 인수위원장(왼쪽)과 신계륜 당선 자 비서실장. | ||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신 실장이 공공연히 물론 언론에까지 ‘고건 총리론’을 흘리고 있는데 이는 인사문제와 관련해 누구보다도 중립적 입장에서 다뤄야 할 당선자 비서실장의 지위와 역할에 비춰볼 때 분명 문제가 있는 일”이라며 “일부에서는 당선자 비서실이 총리의 자질, 적임자 등을 주요 설문항목으로 하는 여론조사를 하면서 특정인에 유리하게 조사를 벌였다는 비판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중진은 “신 실장이 고 전 시장을 총리로 적극 지지하고 나선 배경이 98~99년 신 실장이 고 전 시장 밑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인연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신 실장을 축으로 한 고려대 인맥들이 일찍부터 ‘총리 인선 정치인 배제’,`‘안정 총리론’을 부각시킨 것은 당내 기반이 없는 고 전 시장을 앞세워 차기 정부 하에서 권력기반을 굳히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인맥’들은 이에 대해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 구도는 노 당선자가 대선 승리 직후부터 직접 다듬어온 것이란 점을 들어 이 같은 주장과 분석은 ‘악의적인 마타도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인사는 “인수위 주요 직책에 고려대 출신들이 많이 포진한데 대해 말들이 많지만 이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당사자들”이라며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언행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지만 계속 ‘실세그룹’운운하는 데는 난감할 따름”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민주당 주변에서는 인수위 내 고려대 인맥들이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 인선이 발표된 지난 9일 이후 정대철 최고위원 및 문희상-유인태 정무라인과 현안에 대해 마찰을 빚어온 점을 들어 양측 간 권력투쟁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총리 인선 외에 문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의 “현대상선 대북 4천억원 비밀지원 의혹 등을 김대중 정부 임기 내에 털고 가야 한다”는 주장에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노선 투쟁의 양상으로까지 심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총리 인선을 둘러싼 양측의 힘 겨루기는 노 당선자가 22일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이 처리되는 시점을 전후해 총리 지명자를 발표하면 일단락될 전망이다.
그러나 내달 초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 등 청와대 비서진들이 본격 활동에 들어가고 상대적으로 인수위와 신계륜 당선자 비서실장 등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양측간에 ▲내각 구성 ▲차기 당권과 당 개혁 진로 ▲정계개편 방법론 등을 놓고 갈등이 재연될 것이란 분석이 많아 노 당선자가 이를 어떤 식으로 교통정리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영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