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요신문 DB
당내 분위기도 어수선하게 돌아가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비수가 박 대통령 가슴으로 들어갔다. 친박계가 눈치를 보고 있다. 박 대통령 꼬리를 붙잡고 있던 친박계 당직자들이 자취를 감췄다. 당내 친박들은 대통령의 하야 여론이 과반을 넘었을 경우 꼬리를 떼고 다른 쪽으로 붙을 생각인 것 같다. 그 사람들은 박 대통령 곁을 지킬 생각이 없다. 지금 의리를 지킨다고 해도 나중에 재기할 수 있겠나. 정치는 현실이다”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박계의 ‘정권 창출 시나리오’에 제동이 걸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친박계의 반기문 사무총장 영입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의 다른 당직자는 “그동안 친박계와 반 총장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박 대통령이 곤두박질쳤는데 반 총장이 친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나. 이제는 반 총장도 스스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너무 많아졌다. 최 씨 때문에 판이 꼬여버렸다”고 밝혔다. 최순실 유탄이 반기문 사무총장을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반기문 불출마’설도 퍼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또 다른 당직자는 “본인을 지원할 수 있는 친위부대에서 악재가 터졌다. 악재가 계속 흐름을 타면 반 총장이 중도에 대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 반 총장 주위의 외부적인 장벽이 튼튼하면 나중에 본인의 악재가 터져도 덮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그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고 설명했다.
반 총장 측은 최순실 게이트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기자와 만난 반 총장의 최측근은 “대통령은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힘이 빠지면 나라가 결딴난다.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잘 수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걱정이고 다른 것들은 걱정이 없다. 선거는 원래 악조건에서 시작한다. 좋은 조건으로 선거를 치르는 사람은 없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에선 반 총장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지만 반 총장 측은 여전히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모양새다.
‘충청권의 맹주’ 김종필 전 총리는 최근 반 총장에 대한 입장 변화를 암시했다. 10월 25일 김 전 총리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와 만찬회동을 가졌다. 그는 “반 총장이 귀국을 하더라도 생각한 대로는 어려울 수 있다. 반 총장이 1월에 귀국한다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에 여러 가지가 들떠 왔다 갔다 해서 어렵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져다. 반 총장과 김 전 총리는 5월 28일 비밀 회동을 가졌고 최근 반 총장은 김 전 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반 총장과 꾸준히 교감을 나눴던 김 전 총리가 ‘반기문 대망론’에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반 총장 최측근은 “JP의 생각일 뿐이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선거다. 정치는 과학적이고 산술적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면 반 총장 메시지가 국민들을 설득할 것이다. 정치는 장난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면 더 나은 사람을 뽑게 돼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당의 위기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새누리당 보좌관은 “반 총장이 친박 쪽으로 오지 못하면 ‘마이웨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 용기도 없으면 반 총장은 대통령 꿈을 접어야 한다. 반 총장이 ‘봉황금수저’인가. 남들이 떠다주는 밥을 먹으면 못할 사람이 없다. 기왕 우리 당의 수혜를 받을 것이면 비겁한 짓을 안 하고 1월 달에 바로 입당해야 한다. 개선장군처럼 치고 나가서 우리 당을 구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반 총장을 버릴 수 있겠나. 민주당에 팔까. 국민의당에 넘겨줄까. 겨울에 반 총장을 흥행카드로 올려서 무대랑 붙든 누구랑 붙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반 총장의 대권 시나리오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반 총장이 내년 1월에 친박으로 가서 꽃가마를 탄다는 구상은 대선을 패배하자는 말과 같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에 입당할 모양과 명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반 총장은 최순실 악재가 가라앉기를 기다릴 것이다. 한동안 새누리당과 거리를 두다가 나중에 자신의 당과 통합하는 방식으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것”이라고 점쳤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