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오후 2만 명의 시민이 행진을 하던 도중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일요신문] 청계광장에 2만 시민이 모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열 배도 넘는 시민들은 서울 도심에서 ‘박근혜 물러나라’를 외쳤다. 이후 진행된 행진은 계속되는 경찰의 진압으로 동선이 바뀌기도 했지만 결국 청와대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시민들은 추운 겨울날씨에도 네 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일요신문>이 그 현장을 찾았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를 개최했다. 이 날 집회가 예정된 오후 6시 이전부터 많은 인파가 청계광장에 몰렸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다양한 참가자들은 촛불과 ‘이게 나라냐’, ‘박근혜 퇴진’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거리에 나타났다. 정당, 시민단체, 학교 등에서도 깃발과 피켓을 들고 등장했다.
집회 시작 전부터 청계광장에 인파가 몰려 피켓을 들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서울시민 김병민(52) 씨는 “박 대통령에게 투표했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배신감에 나왔다”며 “지금까지 뉴스를 통해 나온 의혹들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시민들도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집회에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박주민 의원, 정의당 노회찬·이정미·김종대 의원, 무소속 김종훈 의원 등 야당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집회가 끝난 이후 오후 7시 30분께부터 행진이 시작됐다. 투쟁본부와 집회 참가자들은 청계광장을 시작으로 광교→보신각→종로2가→북인사마당까지 약 1.8㎞의 거리 행진을 진행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집회 현장과 행진 구간 주변으로 60개 중대 경력 4800명을 배치했다.
광화문 한복판에 경찰 인력이 배치돼 있는 모습.
행진 도중 동선이 바뀌기도 했다. 행진 선두에 있던 참가자들이 영풍문고 앞에서 예정됐던 동선이 아닌 조계사 방향으로 직진해 진입한 것이다. 경찰은 공평동 사거리 인근에서 참가자들의 진입을 막았다. 참가자들은 이동하려는 동선이 막히자 차로를 이용해 광화문 방향으로 우회전해 움직였다. 이때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지나가는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인도만을 이용하라”는 방송을 하자 참가자들은 “우리가 바로 그 시민이다. 행진으로 전혀 피해를 보고 있지 않으니 도로를 통제해 달라”며 맞섰다.
광화문 세종대왕상 중심으로 경찰 인력이 배치돼 청와대 방향의 행진이 계속될 수 없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세종문화회관을 통해, 배치된 경찰차 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또 경찰 인력을 몸으로 밀어내려는 시도도 있었고,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더 이상 이동을 하지 못하자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 집결했다. 경찰이 ‘평화시위를 하자’고 하는 방송을 할 때면 다수 시민들이 ‘경찰들은 비켜라’면서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세종대왕상 뒤쪽에 있던 시민들이 행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시간이 지나면서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이 점차 많아졌고 일부는 경찰과의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경찰은 ‘캡사이신을 사용하겠다’고 경고하고 살수차를 배치하기도 했다. 집회는 이날 밤 늦게까지 계속됐다. 민중총궐기 본부에서는 오후 9시 30분께 집회를 끝내겠다고 방송했지만 많은 시민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너무 절망스럽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문상현 최영지 김상래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