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왼쪽부터)이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했다. 정상회담 합의 배경을 둘러싼 세간의 궁금증이 점점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노 대통령은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불리하게 돌아가는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에 올코트프레싱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또 정치권 일각에선 2000년 1차 정상회담 대가로 5억 달러가 제공된 사실에 비춰볼 때 이번에도 정치적 뒷거래 등 이면합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숨은 주역은 누구이고 어떤 라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 또 노 대통령은 어느 단계부터 직접 개입을 했고 8월 말로 결정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정상회담 합의 배경을 둘러싼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한반도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정상회담 막후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남북의 공식발표를 놓고 볼 때 역사적인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은 우리 측의 김만복 국정원장과 북측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다.
8일 정부의 발표 내용과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은 이렇다. 통일부 등 정부당국은 올해 초 베이징 6자회담을 통해 2·13 합의가 도출됨에 따라 정상회담에 대비한 정지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골치덩어리였던 북핵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정부는 대북 접촉 라인을 철저히 공식 라인 중심으로 가동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국정원을 핵심 라인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7월 초 남북관계 진전 및 현안사항 협의를 위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의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고 북측은 7월 29일 김 부장 명의로 8월 2일이나 3일 김 원장이 비공개로 방북해줄 것을 공식 초청해 왔다. 정부는 북측이 김 원장을 초청한 것 자체가 사실상 정상회담 수용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때부터 비상 대기에 들어갔다. 북측의 초청에 따라 8월 2일 국정원 고위간부 몇 명과 함께 극비리에 방북한 김 원장은 김 부장으로부터 ‘8월 하순 평양에서 수뇌 상봉을 개최하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김정일 위원장의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3일 서울로 돌아온 김 원장은 즉각 노 대통령에게 이러한 북측의 제의를 보고했고 노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기로 결심하고 김 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4일 재차 방북한 김 원장은 노 대통령의 친서를 김 부장에게 전달했고 5일 김 위원장의 최종 답변이 나왔다. 이에 김만복-김양건 라인은 양 측 수뇌의 결정을 바탕으로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요지의 남북합의서를 도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회담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정부당국의 설명이 왠지 석연치 않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는 김 원장이 합의 마지막 단계에서 정부의 공식 라인을 대표하는 역할을 담당했을 뿐 노 대통령은 이미 2~3년 전부터 공식·비공식 라인을 풀가동해 북측과 정상회담을 타진해 왔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정상회담 필요성이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우선은 대북송금 특검으로 경색된 남북관계와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남북관계 타개책 방안으로 정상회담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뿐만 아니라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노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정치권에서도 국면 반등 차원에서 남북정상회담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에는 정상회담 추진설이 구체적인 정황 증거와 함께 여러 채널을 통해 나돌면서 시기와 장소, 의제 등 막판 조율만 남았을 뿐 정상회담 개최는 이미 기정사실화돼가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몇몇 범여권 핵심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연내 정상회담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고 한나라당 인사들도 노 대통령이 대선정국을 겨냥한 승부수로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주장을 여러 차례 제기한 바 있다. <일요신문>도 지난해 11월 19일자(757호)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그동안 투명한 대북정책 기조를 천명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 등이 선행되지 않는 정상회담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난 3월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씨와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 등 비선라인이 지난해 10월 북측 인사를 접촉했던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을 때도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비선라인의 대북 접촉 사실을 인지했으나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은 아니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정상회담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안 씨 등 비선라인뿐만 아니라 공조직과 비선라인을 풀가동해 대북 접촉 채널을 확보하는 등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오래전부터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선라인이 북측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 3월 30일 장성민 전 의원은 “남쪽에 안희정 씨 외에 또다른 비선라인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제2, 제3의 비선라인 활동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범여권 일각에선 대선주자 진영과 386 참모그룹 등을 중심으로 정상회담이라는 ‘대어’를 낚기 위해 치열한 권력암투를 벌이면서 대북 라인 확보 경쟁을 펼쳤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안희정 씨-이화영 의원으로 이어지는 3각 라인이 비밀리에 활동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노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들이 대북 플랜에 적극 개입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범여권 대선주자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해찬 전 총리,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혁규 의원 등도 정상회담 대어 낚기에 적극 나선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 전 의장은 지난해 11월 “2005년 말에 정상회담은 8부 능선까지 갔었다”고 밝힌 바 있고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도 “2005년 6월 정 전 의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 개최 원칙엔 합의했고 시기만 정하지 못했다”며 정 전 의장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미 2005년 6월부터 공식라인을 동원한 정상회담 플랜이 물밑 추진돼 왔음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해찬 전 총리도 386 비선라인을 통한 대북접촉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이호철-안희정-이화영’ 라인이 시도한 대북접촉은 비록 무위에 그쳤지만 이화영 의원은 이후에도 베이징과 평양을 여러차례 오가면서 정상회담 메신저 역할을 지속해 왔다. 이후 범여권 정치인들의 대북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열린우리당 내에 동북아평화위원회가 설치됐고 이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았다. 이 전 총리는 동북아위원장 자격으로 지난 3월 7일부터 10일까지 이화영 의원, 조영택 전 대통령 정무특보 등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정부와 이 전 총리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당시 이 전 총리는 김영남 북측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핵심 수뇌부를 만나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세부적인 의견을 나눴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상회담과 관련한 구체적인 조율은 이 전 총리가 방북했을 당시 어느 정도 마무리됐고 단지 투명성과 공식라인을 통한 대북접촉을 강조해 온 노 대통령의 입장을 감안해 막판에 김 원장을 투입시켰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이 전 총리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 대담한 전망과 자신감에 찬 분석을 내세워 온 것도 이러한 상황에 근거했을 것이란 분석이 강하다.
이 전 총리 방북 당시 대통령 특사설 내지는 밀사설이 나돌았던 것도 앞서의 분석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범여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스타일 및 코드가 제일 잘 맞는 이 전 총리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정상회담 추진 과정은 물론 합의 단계에서 이 전 총리를 전면에 내세운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혁규 의원은 5월 2일 386 측근인 이광재·이화영·김종률·김태년 의원 등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바 있고 손 전 지사도 같은 달 9일 남북합동토론회 참석차 평양을 방문해 화해 협력 시대를 이끌어 갈 적임자임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범여권 주자들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한몫을 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들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제기되는 의문은 과연 정부의 발표대로 아무런 조건 없이 남북정상회담에 합의를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1차 남북 정상회담이 대북 송금과 관련 엄청난 후폭풍이 인 것을 기억하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은 정부가 ‘투명성’을 강조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6·15 정상회담에서 5억 달러를 준 여파 때문에 금전 거래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정보기관에서 많은 공을 들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점 등을 봐서 경수로 지원 등과 같은 정치적 거래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보위원장 김정훈 의원도 “정상회담 대가로 노무현 정부가 현금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사회간접자본(SOC)와 관련된 100억 달러 미만의 차관 제공을 약속했을 것이라는 설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면서 차관 제공설을 꺼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관심은 대선정국과 관련된 정치적 음모론이다. 의도했건 안 했건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카드 한방으로 정국 주도권을 틀어쥐는 것은 물론 일석다조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임기말 레임덕을 불식시킬 수 있을 뿐더러 범여권 대선후보 결정 과정에서도 노심(노 대통령 의중)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합의 이후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경쟁하듯 저마다 ‘통일 대통령’을 자임하며 대선 전략을 급선회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임기를 몇 개월 남겨두지 않은 대통령이, 그것도 의제도 정하지 않은 채 정상회담을 합의하는 게 어디 있느냐”면서 “북한에 회담장소까지 양보하면서 정상회담을 은밀하고 졸속으로 추진한 것은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남북합작 공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경계한 것이기도 하다.
강재섭 대표도 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재집권 플랜 가동 징후로 △대선을 4개월여 앞두고 정상회담을 여는 점 △권력기관이 개입해 야당 경선을 과열·혼탁양상으로 몰고 가면서 흠집을 내려는 점 △국정파탄 세력의 후보를 최대한 늦게 뽑아 검증을 회피하려는 점 △꼭두각시 내각을 구성해 대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는 점 △‘현대판 분서갱유’로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러한 논란의 와중에도 회담이 시기적으로는 부적절하지만 회담 자체는 지지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2000년 6월 이후 7년여 만에 성사된 2차 남북정상회담 공동주연으로 캐스팅된 노 대통령. 그가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할지 아니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뒷거래 의혹 등 후폭풍으로 임기 말 레임덕을 자초하거나 1차 정상회담 때처럼 퇴임 후 새로운 의혹에 휘말릴지는 아직 속단키 어렵다. 정상회담 준비 과정과 그 결과, 그리고 대선 정국에 미칠 영향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