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초로 연기된 정상회담 시기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정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
지난 8월 18일 오후 청와대발 속보가 타전됐다. 북측이 수해복구를 이유로 남북정상회담 연기 요청을 해와 우리 측은 10월 2~4일로 변경해 북측에 통보했다는 게 골자다. 8일 정상회담 발표 이후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했던 ‘신북풍’ 논란에 기름을 붓는 속보였다. 특히 경선 투표 전날에 속보를 전해들은 한나라당은 정치적 뒷거래 의혹 등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수해가 이유라고 하지만 그 배경이 석연치 않다”며 “정상회담을 불과 대선 2개월 앞까지 연기했다는 것은 대선용 정상회담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청와대와 범여권이 정상회담 카드로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정세를 대선에 적극 활용하려는 고도의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회담 연기 배경에는 8월 말 정상회담 발표 이후 불거지고 있는 각종 의혹과 연관돼 있을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은 정상회담 발표 이후인 지난 10일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관련해 약 200억 달러 규모의 대북 지원을 약속해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고 같은 날 이규택 의원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제주답방설’을 주장한 바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이 북측의 요구로 하루 늦게 열린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연기 배경과 관련해서는 현대그룹이 정상회담 대가였던 대북송금을 제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등 갖가지 의혹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측이 이번에 또다시 회담 연기를 요청한 배경에는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거나 더 큰 수확을 얻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 투영돼 있을 가능성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수해복구라는 천재지변 외에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북측의 설명대로 정상회담 연기가 천재지변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연기 결정이 속전속결로 결정됐고 그 시점 또한 대선을 2개월 여 앞둔 10월 초로 정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뒷거래 등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범여권 경선 과정은 물론 대선정국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과 정상회담을 매개로 선물 보따리를 챙기는 동시에 북미 관계 개선 등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셈법이 맞아 떨어진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 ||
한나라당내 대표적인 대북통인 정형근 최고위원은 연말 대선과 관련해 “2002년 대선과 비교 안 될 정도의 흑색선전과 공작정치가 판칠 것이고 김대업 100명은 나올 것이 뻔하다”면서 “허위사실 유포와 권력기관 선거개입, 북한 김정일의 선거개입 등이 드러날 때 대선무효·당선무효하는 법 개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후보도 공세에 가담했다. 이 후보는 21일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한 자리에서 “정상회담을 앞으로 대선에 어떻게 활용할지 핵이 있는 상태에서 회담을 하면 핵을 인정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22일 일본 후지 TV와 인터뷰에서도 “정상회담이 대선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을 해서도 안 되고 그럴 경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공세에 대해 청와대와 범여권이 일제히 반격에 나섬으로써 이미 남북정상회담은 정계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아직은 한나라당 경선 여진이 가라앉지 않았고 대통합민주신당의 내부 갈등으로 더 커지지는 않고 있지만 시한폭탄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이해찬 전 총리는 22일 지지모임인 인천광장 창립대회에서 “이 후보는 ‘북쪽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발언하고 북한은 미국보다 한나라당을 더 싫어한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북한은 대결 구조로 갈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앞으로의 향방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경선 직후 불거진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기 싸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 정상회담이 다가올수록 그리고 회담 이후에도 신북풍 실체를 둘러싼 양측의 첨예한 대결구도는 대선정국 주도권 싸움과 맞물려 서바이벌 게임을 방불케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