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렬 의원(왼쪽), 김덕룡 의원 | ||
그러나 최근 여의도 정가에는 한나라당 당권을 둘러싸고 새로운 갈등 기류가 꿈틀댄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른바 ‘영남대표론’과 ‘호남대표론’의 대립구도다.
노무현 당선자의 고향이 영남이니 한나라당도 중량감 있는 영남 출신 인사를 대표로 뽑아 당을 정비하고 총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영남대표론’과 호남권 출신 대표를 뽑아 명실상부한 전국정당화와 당 체질 개선을 이루자는 ‘호남대표론’이 맞각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일단 부각되는 쪽은 ‘영남대표론’이다. 지난 총선과 지자체 선거에서 보여준 영남지역의 압도적 지지율이나 당 구성원들의 분포도는 영남대표론에 힘을 실어준다.
한나라당의 한 4선 의원은 “지금은 우리 당이 거품을 걷어내고 이 전 총재 은퇴 이후 정국을 수습해 나갈 때”라며 “우리 당의 체질개선 작업을 이끌 사람은 그동안 우리 당의 정책을 지지해온 유권자들이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는 성격의 인사이어야 한다”며 영남대표론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최근 한나라당 중진급 원내외위원장 12명은 모임을 갖고 당 개혁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강두 김형오 김용갑 의원 등 중진급 인사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이상론보다는 당 정체성을 명확히 할 상황”이란 공감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자는 이 같은 논의의 한가운데에는 바로 영남권 인사들이 있다.
이런 기류에 발맞춰 당내 영남권 주자들의 당권 행보도 탄력을 받고 있다. 그 중 최병렬 의원은 부산•경남(PK)지역을, 강재섭 의원은 대구•경북(TK)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사로 당내에서 꼽힌다.
경남 출신인 최 의원의 경우 PK 지역 인사들과 보수파 인사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당 고유의 컬러에 부합하는 이념 성향과 다양한 당내 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연성’이 강점. 최 의원은 이미 지난해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이회창 전 총재와 맞대결을 펼쳐 당내 위상을 확고히 한 바 있다.
강재섭 의원의 경우 지지층의 뿌리를 TK지역에 두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실세임을 자처했던 ‘구 민정계’ 인사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TK 인사들 사이에서 ‘박근혜 대안론’이 물밑에서 논의되는 등 지지기반이 허약한 데다 지지세에서도 최 의원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대세론에 따를 경우 TK 지역 인사들의 지지가 최 의원에게 몰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른바 ‘영남대표론’의 맨 앞자리에 최 의원이 있는 셈이다.
‘영남대표론’이 어느 정도 ‘수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호남대표론’은 일종의 ‘공성’ 개념을 담고 있다. 대선에서 2연패 당한 당의 체질을 변모시키고 나아가서 전국정당화를 이루려면 ‘상대방 텃밭’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논리로 무장돼 있기 때문.
물론 그 선봉을 신망받는 호남출신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는 아직 미약하지만 호남대표론에는 나름대로 짭짤한 명분과 실리가 배어 있다. 먼저 명분은 ‘호남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인사를 대표로 삼아 지역 연고주의를 탈피한 전국정당으로 거듭나자’는 것.
실리 측면에서는 호남권을 위시한 비영남권 민심 흡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 대선 기간에 PK 출신 노무현 당선자가 영남지역에서 바람을 일으켰던 것처럼 한나라당이 호남권 대표를 앞세울 경우 호남 및 비영남 지역에서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깔려 있다.
이 호남대표론은 다분히 당내의 대표적 호남권 인사인 김덕룡 의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서초에서 4선을 한 연륜과 호남 출신이면서도 민주계의 대표적인 인사로 성장한 정치적 능력 등이 김 의원의 강점. 또한 그의 민주화투쟁 경력이나 개혁 이미지도 개혁적 색채를 지닌 노 당선자측과 맞상대하기에 적절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 의원의 지지토대는 물론 당내 민주계 인사들. 여기에 최병렬 의원에 비해 젊은 개혁파 의원들의 지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얼마 전 당내 개혁파 모임 ‘국민속으로’의 김영춘 의원이 “김덕룡 의원이 ‘국민속으로’와 함께 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드러내놓고 표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당 일각에서 나도는 이 같은 ‘영남대표론 VS 호남대표론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이 뒷심을 받느냐에 따라 한나라당 당권 경쟁 구도에도 적잖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대표주자로 거론되는 당사자들은 당권 경쟁에 자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는 눈치다. 당 개혁특위 활동이 끝나지 않았고 전당대회 시기나 방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권의 향방을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영남대표론의 중심에 서 있는 최병렬 의원측은 “당개혁과 관련된 사항이 더욱 중요한 시점에서 당권 경쟁 후보로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만약 개혁특위 활동이 종료된 뒤 당권 경쟁이 영남 대 비영남 구도로 간다면 영남권 인사들이 최 의원을 지지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만 아직은 당권에 대해 논하기엔 이른 시기라는 것.
호남대표론의 한가운데에 놓인 김 의원측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 김 의원측은 “현재의 당 상황을 볼 때 당권 도전을 운운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기상조’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비영남권 인사들과 소장파 의원들의 집단적 지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누구든 자기 의견을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만 밝혔다.
영남대표론 VS 호남대표론에 등장하는 두 대표주자 모두 당권을 놓고 ‘침묵의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