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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용수(30·이치하라) | ||
지난 98프랑스월드컵 때 아시아지역 예선전에서는 펄펄 날다가 정작 프랑스 본선 무대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는데 이번 2002월드컵에서도 J리그 득점왕 후보의 위용은 온데간데 없다.
얼마 전엔 모 언론에서 히딩크 감독과의 불화설까지 내는 바람에 한바탕 소란을 피워야 했다. 98년에도 차범근 감독과의 불화설로 홍역을 치룬 최용수로선 그 파장이 더욱 클 수밖에.
모든 게 성적이 좋지 않아 생긴 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있지도 않은 일을 포장해 선수를 곤란에 빠뜨리는 기사는 정말 사양하고 싶다고 고개를 흔든다.
월드컵을 앞두고 부산에서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최용수는 선발로 나서지 못했다. 후반전 이후 감독의 지시에 따라 몸을 풀면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부산은 최용수의 고향이고 그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끝내 뒷짐을 진 채 한국팀의 승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현장에서 느낀 많은 생각들이 월드컵 동안 그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용수라는 이름, 최용수라는 존재, 최용수라는 축구선수가 정녕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서 후반 황선홍과 교체돼 들어갈 때만 해도 드디어 오매불망했던 기회가 찾아왔나 싶었다. 그러나 그런 착각도 잠깐. 교체된 지 얼마 안돼 프랑스 수비수에게 허리 아랫부분을 걷어 채인 뒤 통증이 심해져 벤치에 교체해달라는 사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소원대로 월드컵 무대에 서기도 했다. 미국전 후반에 투입됐던 것. 그러나 허리 부상이 완쾌되지 않았다. 통증이 심했지만 병원 가는 걸 참았다고 한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경우 출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 물리치료만 받고 통증을 참아냈다. 덕분에 미국전에 뛸 수 있었지만 결정적인 슛찬스를 날리는 바람에 따끔한 질타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로선 불운의 연속이다.
최용수는 한국 16강 진출의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지만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서였다.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끝나는 순간 너무나 기쁘고 흥분한 나머지 선수들과 껴안고 감격을 함께 나눴는데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왠지 마음 한켠이 헛헛하기만 했다.
그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은 엔트리에서 탈락한 선수들과 비교하며 위로해주지만 선수들이 뛰는 걸 지켜보는 일도 피 말리는 일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최용수는 하루 빨리 ‘월드컵 징크스’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