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후보가 청와대와 친노그룹의 ‘융단폭격’에 전면전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 5일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결과 발표 현장의 손 후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정치권 주변에서는 오래전부터 노 대통령을 총 사령탑으로 한 친노그룹이 이른바 ‘대권주자 죽이기’ 비밀플랜을 물밑 가동하고 있을 것이란 소문이 무성히 나돌았다. 노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유력한 범여권 대선주자로 분류됐던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한 배경에도 비밀 플랜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 범여권의 대선구도를 주도하고 있는 통합신당의 컷오프를 통과한 예비후보 5명은 공교롭게도 손 전 지사와 정동영 전 의장 등 2명의 비노 주자와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의원 한명숙 전 총리 등 3명의 친노주자였다. ‘대권주자 죽이기’ 플랜이 존재한다면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이 그 타깃이 될 것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컷 오프를 1, 2위로 통과한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을 겨냥한 친노그룹의 집중 포화는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족쇄와 범여권 주자들의 전방위 공격을 이겨내고 컷 오프를 당당히 1위로 통과하면서 대세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손 전 지사에 대한 공세는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방불케 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손학규 때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범여권 주자로 부상하고 있을 당시부터 노골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노 대통령은 또다시 ‘손학규 때리기’ 선봉에 나서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PD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김영삼 대통령의 3당 합당이 틀린 것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범여권으로 넘어온 사람한테 줄 서 가지고 부채질 하느라고 아주 바쁘다”며 “YS는 건너가면 안 되고 그 사람은 건너와도 괜찮냐”며 손 전 지사를 겨냥한 독설을 재개했다.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안희정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도 3일 참평포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손 전 지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안 위원장은 손 전 지사를 겨냥해 “10년 동안 몸담아 오던 당을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뛰쳐나온 분”이라고 비꼬면서 “과거에 운동권 출신이었으면 다 OK냐, 우리에게 유리하면 무조건 OK냐”고 주장했다. 안 씨는 또 “언론이 손 전 지사의 컷 오프를 통과를 전망하고 있다”며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원칙이니 상식이니 찾을 것 없이 그때그때 명분을 잘 만들어서 유리하게 튀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과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그룹의 ‘손학규 때리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천 대변인은 3일 손 전 지사가 노 대통령의 대선 개입을 비판한 것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정략적인 주장과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어 아쉽게 생각한다”고 비꼬았고 이 전 총리는 6일 “손학규 후보 대세론은 소멸됐다. 국민들이 더 이상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며 손 전 지사 때리기에 시동을 걸었다.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전방위 공세에 손 전 지사와 측근들은 전략을 수정해 전투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손 전 지사는 ‘범여권의 줄서기 행태’를 비판한 노 대통령의 31일 발언에 대해 “대선판에서 한 발 비켜서 달라”고 직격탄을 날리는가 하면 3일에는 “대선에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도움을 주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낡은 사고방식”이라며 노 대통령을 자극했다.
손 전 지사 캠프의 우상호 대변인은 “경선에 개입할 의도를 가지고 특정 후보 공격을 계속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고 민생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광원 의원도 노 대통령을 겨냥해 “자신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가치관이 바뀌고 말이 바뀌는 ‘뒷간정치’ 같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정책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송영길 의원은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이중 잣대가 되면 국민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며 노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손 전 지사와 측근들이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전방위 공세에 맞대응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에는 “더 이상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과 함께 노 대통령과의 ‘맞짱 승부’로 대세론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대권전략이 내포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캠프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오래전부터 ‘손학규 죽이기’ 비밀 플랜을 치밀하게 가동하고 있다는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5일 기자와 만난 손 전 지사의 핵심관계자 A 씨는 익명을 전제로 “청와대가 작성한 ‘손학규 죽이기’ 비밀플랜 문건을 캠프 핵심 관계자가 입수한 것으로 안다”며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음모를 간파한 만큼 대응 전략을 꼼꼼히 만들고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문건을 공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대응전략 수립 작업에 관여했다는 A 씨는 대응 전략의 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손 전 지사는 후보간 스펙트럼에서 현직 대통령과 가장 거리가 멀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손 전 지사가 최종 후보가 돼야만 ‘탈 노무현’을 실현하는 동시에 참여정부의 한계를 해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손 전 지사와 캠프는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전방위 공격에 대해 사안별 대응기조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방어한다는 것이다. 또한 △손 전 지사는 노 대통령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만을 상대해 큰 정치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대신 캠프는 기타 예비주자들과 비토세력의 공세를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영남신당 창당 작업 등 일부 친노그룹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에 대비한 대응 논리를 마련한다는 게 A 씨가 전한 대응 전략 내용의 골자다. A 씨는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기본 대응 전략은 이미 손 전 지사에게도 보고가 됐고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화된 대권 전략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후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전방위 공격을 받았음에도 비교적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해 왔던 손 전 지사가 뒤늦게 전면전 카드를 꺼내든 것도 이러한 대응전략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손 전 지사 측은 또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대권주자로서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범여권 대선구도를 친노 대 비노 구도로 재편해 범여권 비노·반노세력을 손 전 지사 중심으로 결집시키고자 하는 포석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맞짱 승부’를 펼쳐 범여권을 상대할 유일 후보로 자리매김했듯이 손 전 지사도 ‘노무현-손학규 대혈투’ 분위기로 몰고 가 범여권 경선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이 투영돼 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전면전 카드를 꺼내든 손 전 지사가 이 후보의 사례처럼 범여권 후보로 우뚝 서게 될지 아니면 고건 전 총리나 정 전 총장의 전철을 밟게 될지 노 대통령과 손 전 지사가 펼치는 대권 진검승부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