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전 경기 지사.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손학규 전 경기 지사는 당의 혼탁 경선에 반발하며 잠적, 한때 경선 포기설이 돌기도 했다. 손 전 지사는 21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경선에는 참여하겠다고 밝혔으나 구태 정치 혼탁 경선은 좌시하지 않겠다며 토론회 참석 등을 거부하고 나섰다.
경선 결과도 예상을 뒤엎고 있다. 정 전 의장은 1만 3910표(43.2%)를 획득해 2위 손 전 지사(9368표 29.1%), 3위 이 전 총리(8925표 27.7%)를 앞섰다. 경선이 이런 혼탁한 상황으로 계속 되다간 대선에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할 것’이라는 자조마저 나오고 있다. 대통합신당 경선의 변수들을 짚어보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여러 가지 얼룩으로 물들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추석 연휴 이전까지 초반 4개 지역 경선을 마친 결과 정동영 전 의장이 1위를 기록했지만 조직 선거, 동원 선거 의혹에 휩싸이며 논란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처음부터 선거인단 집단 등록이 문제가 되더니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에서 정 전 의장의 몰표가 나온 것으로 인해 논란이 폭발됐다. 정 전 의장은 16일 실시된 충북지역 경선에서 52.7%의 압도적 득표율을 얻으며 손학규 전 지사와 이해찬 전 총리를 두 배 이상 앞섰다. 그런데 영동군에서 정 전 의장은 유효투표 수 1282표 중 1084표(84.6%), 보은군에서는 1544표 중 1161표(75.2%), 옥천군에서는 2000표 중 1595표(79.8%)를 얻었다. 영동·보은·옥천 세 군데에서만 정 전 의장이 3840표를 얻어 손학규 전 지사(655표)에 비해 무려 3185표나 앞선 것이다. 이 표차는 충북 전체에서 정 전 의장이 손 전 지사보다 앞선 3414표의 90%를 넘는 것이며 4개 지역 경선에서 손 전 지사보다 많이 얻은 4542표의 70%가 넘는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일부 언론이 조사한 결과 보은·옥천·영동의 투표자는 4872명으로 충북 전체 투표자의 40%가 넘었다. 이 지역의 충북내 인구비율은 9.5%였으니 사실상 충북 지역의 경선은 이 지역이 좌우한 셈이다. 더구나 문제는 보은·옥천·영동 지역은 정 전 의장 측 인사인 이용희 국회부의장의 지역구라는 점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손학규·이해찬 캠프 측은 ‘비정상적인 현상’이라며 한목소리로 조직 선거, 동원 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이 후보 측 유시민 선거대책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충북 지역의 1, 2위 표차가 3400표인데 보은·옥천·영동에서만 3500표 차가 났다”며 “국민경선이 민심을 반영하기 위한 제도인데 정 후보가 이 지역에서 85%의 지지를 받을 다른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 측 김종률 의원도 기자회견에서 “조직적 동원선거이자 민심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우려할 만한 비정상적 투표 행태”라며 “당 지도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즉각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보은·옥천·영동을 제외하면 충북에서 정 후보는 3위에 그쳤다”며 “이 같은 비정상적 투표 행태는 신종 ‘차떼기’식 동원 선거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전 지사 캠프의 우상호 대변인은 “박스떼기에 이어 버스떼기는 너무 심하다”며 “당내 의장 선거도 아니고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버스 동원하는 건 처음 본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의장 측은 “몰표를 운운하는 것은 악천후 등 어려운 여건에서 경선에 참여한 선거인단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발하면서 타 지역에서는 손학규 전 지사, 이해찬 전 총리가 과반득표를 했다고 맞서고 있다. 실제로 이 전 총리 측 이광재 의원 지역구인 강원 영월군에서 이 전 총리는 유효투표 수 383표 중 264표(68.9%)를 얻었고, 손 전 지사 측 이시종 의원 지역구인 충주시에서는 손 전 지사가 유효투표 수 1017표 중 615표(60.5%)를 득표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더구나 앞으로 경선이 치러질 지역에서도 일반 유권자 비율보다 선거인단의 비율이 두 배 이상 되는 지역이 많아 투표 때마다 조직·동원 선거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한 일간지에서 입수한 ‘선거인단 지역별 현황(9월10일 중간집계)’에 따르면 전국 248개 일반 시·군·구의 선거인단 수 분석 결과 지역 편중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중앙선관위에 관리가 위탁된 선거인단 145만 명의 지역별 분포에서도 전북 선거인단은 20만 7341명(14.3%)으로 전국 인구대비 전북 인구 비율(3.8%, 2005년 기준)보다 3배 이상 많으며 광주 선거인단 비율(11.6%)도 인구 비율(3.0%)의 4배 가까이 된다. 오는 29일 실시되는 광주·전남 지역 경선에서 또다시 조직 동원 선거 논란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여기에 당권 거래설과 금품 수수설까지 거론되며 경선은 혼탁의 도를 더하고 있다. 손 전 지사 측은 19일 정 전 의장이 김한길 그룹과 ‘대권-당권 거래’까지 밀약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정 전 의장 측은 당장 ‘전형적인 마타도어이자 편가르기’라고 반박하고 나섰고 손 전 지사 측에서는 “이런 식의 구태경선이라면 의미가 없다”며 강경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손 전 지사 측의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인 김부겸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모월모일 특정장소에서 삼계탕 대접을 받고 도자기를 선물받았다는 말도 있고, 광주시당에 선거인단을 3000여 명을 접수시켰지만 하루 늦게 중앙당에 보내 선거인단에서 누락되는 등 말할 수 없이 많은 징후들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손 전 지사는 자택에 칩거하던 중에는 오충일 당 대표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18일 정대철 고문과의 통화에서는 “이런 구태경선은 의미가 없다. 이런 식으로는 계속 갈 수 없다”고 격정을 토로했다는 전언이다.
▲ 지난 16일 국민경선 강원·충북 개표 현장의 세 후보. 연합뉴스 | ||
각종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치러진 이제까지의 경선 결과는 정 전 의장이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이 사퇴하기 전에도 제주와 울산 지역 경선에서 2위로 내려 앉은 손 전 지사는 친노주자들이 이 전 총리로 단일화하면서 사실상 3위로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반 국민들의 지지율까지도 뒤집어졌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17일 실시한 조사에서 정 전 의장은 전체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10.2%를 기록, 손 전 지사(4.5%), 이 전 총리(4.0%)를 제쳤다. 정 후보가 지지율 10%를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손 전 지사를 앞선 것도 처음이다. 범여권 대선후보 선호도에서도 정 전 의장은 21.7%로 손 전 지사(18.5%)와 민주당 조순형 의원(10.3%), 이 전 총리(10.1%)를 앞섰다.
한겨레가 17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에서도 9.7%를 기록, 손 전 지사(6.1%)와 이 전 총리(3.6%)를 제치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56.7%)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 전 총리도 결코 녹록지 않은 모습이다. ‘친노세력’ 결집으로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의 표가 흡수되며 강원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한 이 전 총리는 18일 “이제 승기를 잡았다”며 “제가 광주·전남에서 1등 하고 경남·부산에서도 1등 하면 한 명은 후보직을 사퇴할 것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저를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대전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서 열린 ‘충청의 미래’ 초청 강연회에서 “그동안 손학규 후보는 언론에서 앞서가는 것으로 나왔는데 실제는 과장된 보도로 밝혀졌고 또 한 사람은 조직동원으로 표를 모았다. 하지만 저는 조직동원 선거가 없는 강원도에서 당당히 1등을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편 여론조사마저 정 전 의장에게 ‘밀린’ 손 전 지사 측은 결국 중대 결단을 강요받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마침내 손 전 지사는 19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 마포 자택에서 칩거하는 강수를 꺼냈다. 당초 이날 아침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역을 찾을 예정이었던 손 전 지사는 전날 밤 광주 거리 유세를 마친 뒤 곧바로 상경했으며 이날 저녁 예정됐던 SBS 방송토론회에도 불참했었다.
보다 못한 중진의원들이 나서고 있지만 논란의 핵심인 정 전 의장은 완강하다. 정 전 의장은 19일 열린 TV 토론에서 “지난 7월 4일 이해찬 손학규 정동영 등 6명이 모여서 완전개방경선을 합의하지 않았느냐”면서 “(선거과정에서) 불법이 있다면 당 경선관리위원회에서 조사를 해야겠지만 조직선거라고 규정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라고 반발했다.
한 대통합신당 관계자는 “이번 추석이 한 고비가 될 것 같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여러 가지 변수가 터져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 되었다. 경선에서의 정동영 전 의장의 선전, 이에 따른 조직·동원 선거 논란, 친노후보 단일화가 가져올 수 있는 역풍 등도 고려할 문제다. 위기에 몰린 손학규 전 지사 측이 내놓을 수 있는 돌발적인 선택도 예상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향후 경선 과정을 전망하고 있다. 추석 직후 치러질 광주·전남 지역 경선에 손 전 지사가 참여할지, 또다시 조직·동원 선거가 판을 칠지,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속 시원한 전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