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권 대권주자 회의때 이견 존재…책임총리제 다루고자 했지만 관철 못해
- 기존 입장 바꿔 버티기 들어간 박 대통령, 나라는 물론 본인에게도 불행한 일
- 광화문으로 모이는 성난 시민들, 이 국면 넘으면 자연스레 개헌 논의해야
‘최순실 게이트’ 사태에서 비롯된 국정혼란이 점차 장기화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두 번의 대국민담화를 통해 거듭된 사과와 검찰조사 수용 의사를 밝힌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입장을 번복하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이에 야권에서는 다소 관망하던 ‘탄핵’ 카드를 빼들었고, 특검과 함께 본격 강공 모드에 나섰다. 급기야 지난 11월 20일엔 야권의 대선주자 6명이 한데 모였다. 잠룡 6인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 탄핵 추진 내용을 담은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일요신문>은 11월 23일 이 자리를 함께한 야권의 대권주자 김부겸 민주당 의원과 마주했다. 인터뷰는 광화문 근처의 한 호텔에서 진행됐다.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 29 포시즌스호텔에서 인터뷰를 하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11월 20일 본인을 포함해 야당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가 있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중대한 정치국면임에도 각 당이 능동적인 정치행위를 안하고 있다. 내년(대선을 의미)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라도 지금 이 정국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 번 속마음을 들어보자는 취지가 강했다. 정말 시급했기 때문에 다 모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허가증 받은 사람도 아니고 당 지도부도 아니지 않나. 전면적으로 뭐를 결정할 것은 아니지만 그저 조금이라도 (각 당에) 물꼬를 터주자는 의미가 컸다. ‘비상시국 정치회의’라 명기한 것도 외부에서 괜히 상설조직으로 오해할까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다.
―상시적인 회의체 조직은 아니라는 의미인가.
“그럴 수 없지 않나.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우리가 당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람들도 아니고. 다만 각자가 이런 저런 생각은 있으니까 시급한 현안이 있을 때 한 번씩 모여서 이야기해보자는 거다. 무슨 시급한 상황이 생긴다면 우리 야권에 힘을 모아주거나 방향을 틀어주거나 할 수는 있지 않을까. 또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또 이런 자리를 제안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에도 시국이 엄중하다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모인 것 아닌가.”
―입장문 도출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특히 김 의원이 강하게 주장한 부분도 있다고 들었다.
“책임총리에 대한 입장을 넣고자 했다. (입장문에) 시국이 엄중하고 대통령은 반성하라는 얘기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야당 지도부가 판단하고 고민할 부분에 대해, 특히 현실적으로 해결 방안 모색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넣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이 국면을 수습하려면 논리적으로 책임총리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이 논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라는 내용을 입장문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만약 대통령이 물러나면 현직 총리가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데 임명권자인 대통령 권위가 상실된 이상 그 총리는 영이 설 수 없다. 다만 현재 야권의 당론이 (책임총리 추천권을) 안 받겠다는 것이었고, 당시 자리에 참석한 일부도 넣고 싶지 않은 쪽이 있었다. 그래서 타협한 부분이 있다.”
―일부 야당 지도부에서는 대권주자들이 개별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도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도 감안했다. 앞서 말했지만 당시 자리가 상설기구도 아니고 그저 우리 의견을 모아 물꼬를 터주자는 것뿐이다.”
―오늘 오전(인터뷰 당시 11월 23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대통령 탄핵을 시사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정치인은 국민들 앞에서 고민하고 또 자기입장을 드러내 국민들로 하여금 모일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김무성 전 대표는 큰 기득권을 벗어던지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 높게 평가한다.”
―앞서 김용태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탈당했고 여당 비박계 내부서 추가적 탈당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제 비박계와의 공조도 중요해졌다.
“책임을 지고 끌고 가는 부분은 당 원내지도부가 해야 한다. 우리들(대권주자들)은 그저 개인적 연을 통해 비박계의 고민을 서로 나눠봐야 하는 입장이다. 한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한편으론 여당 비박계에서 현재의 야당 지도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야당이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고까지 표현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오해받을 측면이 있었다. 탄핵 문제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꼴이 되지 않았나. 지금은 정말 목숨 걸고 ‘올 코트 프레싱’ 해야 하는데 야당 지도부가 그런 모습을 안 보였다. 자꾸 핑계만 대면서 ‘거리를 보자(광화문 시위 분위기)’는 얘기나 하고. 오해 받을 빌미를 준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이제 의총에서도 탄핵 추진이 결정됐고 추미애 대표 스스로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존 입장을 바꿔 검찰 조사 불응과 야권 총리 추천 제안 철회도 시사하고 있다.
“주변 참모들이 코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민심의 분노는 시간을 끌면 자연스레 가라앉는다’는 식의 충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민심 폭발은 우리 정치사에서 보지 못했던 수준이다. 단기적으론 실익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온 검찰 수사를 무효화할 수는 없다. 그 파도가 오고 있다. 대통령 임기는 다가온다.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본인은 물론 나라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언제까지 국민들을 주말마다 저렇게 나오게 할 것인가. 대통령께서 결단하고 사과하면 국민들도 더 이상 창피를 드리진 않을 것이다. ”
―청와대는 검찰 조사에 대해 공정성 시비를 걸었다. 이어 특검의 공정성 시비도 예상되는 대목이다.
“검찰조사도 못 믿겠다고 하고 이어 특검의 중립도 운운한다면 한 마디로 국민과의 약속도 다 필요 없다는 얘기가 된다. 우린 민주공화국이지 왕의 나라가 아니지 않나. 난 대통령 비꼬고 비아냥거리고 싶지 않다. 마지막까지 대통령께서 저지른 일들 스스로 결단하여 풀어야 한다. 그렇게 하시면 국민들도 누그러질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대통령께서 그 여지를 하나하나 끄고 계신 것이다.”
―본격적인 탄핵국면에 돌입했다. 실제 탄핵까지는 상당한 시간도 소요되고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많다.
“만만찮은 과정이 될 것이지만 그래도 민심이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해도 명백한 법률위반 아닌가. 또 지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헌재에서 탄핵 요건과 관련해 정리해 카데고리해 놓은 것이 있다. 헌재에서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 선택에 있어 찬성과 반대 의사가 실명으로 다뤄지게 된다. 가볍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1월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야권 대권 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문재인, 박원순, 심상정, 안철수, 안희정, 이재명, 천정배. 2016.11.20 연합뉴스
―현 상황과 관련해 국정공백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
“대통령께서 빨리 결심해야 여야가 논의하고 합의한다. 그래야 혼란도 최소화된다. 당연히 경제나 안보는 악화되면 돌이키기 어렵다. 이 부분은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짚고 넘어가고 싶다. 왜 정부는 하필 이 시점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합의하느냐 말이다. 정말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하는 것이라면 이와 관련해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그 어떤 의사결정도 할 수 없는 이 시기에 왜 이것만은 밀어붙이는지 모르겠다. 나라가 두 동강, 세 동강 나는 마당에 왜 논란꺼리를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평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 대해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번 정국에 실망했나.
“좀 그랬다. 이정현 대표쯤 되면 이 국면을 풀기 위해 대통령을 설득하고 여야 지도부 간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지금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당신의 위치에만 연연한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유감이다. 국가지도자로서 대범함을 보였어야 했다. 아쉽다.”
―여당 내부에서도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이지만 야당에서는 이미 이정현 대표를 카운터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정현 대표 스스로 정치력을 발휘하면 충분히 자기 발언권을 얻었을 것이다. 이 대표의 퇴진은 여당 내부와 본인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만 지금까지 집권 여당 대표로서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버티면 된다’는 식은 어느 누구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곧 특검 후보자 추천이 있다.
“야당에서도 생각보다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지도부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후보는 살아있는 권력과 마주해야 하기에 수사능력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여기에 이 사건이 지닌 정치적 휘발성을 인식하고 민심을 읽을 수 있는 감수성도 지녀야 한다. 법조인으로서 전문성은 물론 감수성을 갖춘 분이 오셔야 한다.”
―매주 주말에 광화문으로 시민들이 모인다. 정치권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것인지 고민이 깊겠다.
“제일 고민이다. 지금 국민들께서는 단순히 이 정치적 상황을 수습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를 넘어 새로운 세상, 적어도 기본이 바로 서고 어느 누구도 억울함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당이나 정치권은 이 열망에 걸맞은 제도적 준비가 안 됐다. 정치권 스스로 이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돼야 한다.”
―제도적 문제라면 개헌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국면을 넘으면 자연스레 개헌 얘기가 나올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여섯 명의 대통령이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처지가 됐다. 당연히 제도적 변화의 부분으로 승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순한 권력구조의 문제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개헌 얘기 나오면 각 정치 집단이 유불리로 따지면 곤란하다. 이제 제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 분노가 분노에서 끝나면 안 된다. 다음 세대를 위한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