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당 내부에서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우군이었던 비박계에서조차 고개를 갸웃거린다.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가 마치 큰 기득권, 성취 가능한 목표를 내려놓듯 했다는 수군거림이 적잖다.
김무성 전 대표가 유승민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역시나, 취재에 들어가 ‘대선 불출마, 박근혜 탄핵’의 김 전 대표 뒷얘기를 들어보니 당내 수군거림이 생뚱맞은 것만도 아니었다. 김 전 대표가 탈당 카드를 꺼낼까 했지만 밑천이 없어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밑천이란 탈당을 함께할 동지를 말한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상당히 긴 이야기였지만 요점만 정리하면 이렇다.
“탈당이 임팩트는 크지만 적어도 탈당을 감행하려면 원내교섭단체를 채울 수 있는 20명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 수에 턱없이 못 미쳤다. 그래서 일단 불출마 카드를 통해 박 대통령의 탄핵에 깃발을 제일 먼저 드는 모습으로 가고, 당 지도부를 포함한 친박계의 움직임을 본 뒤 탈당 카드를 꺼내보자고 했다. 애초에 탈당과 불출마 카드를 동시에 던질까 했다는 것이 맞다. 게다가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덜컥 탈당부터 하면 얼마나 무책임하게 보이겠는가. 일단 불출마를 하게 되니 공간이 열렸다. 이제 김 전 대표가 여러 통로로 자신의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다.”
만약 김 전 대표가 탈당을 하게 되면 그를 따를 당내 세력은 얼마나 될까. 우선 그의 오른팔 왼팔 격인 김성태 김학용 의원, 그리고 김 전 대표가 대표 시절 대변인으로 뒀던 김영우 의원 등이 거론된다. 지난 8·9전당대회에서 비박계 단일화 후보였던 주호영 의원도 김 전 대표와 교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고, 김 전 대표를 ‘동네 형’으로 친밀하게 지내는 강석호 전 최고위원까지 5명 정도가 상수로 거론된다. 결국 128명(김용태 의원 탈당) 의원 중 김 전 대표와 정치적 생명을 함께 할 우군은 0.05%도 채 안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김 전 대표가 당장 코앞의 탄핵도 해결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꾸 ‘개헌’을 이야기하면서 당내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가 개헌의 방향으로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 속에 혹 다른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다. 이원집정부제는 2014년 9월 김 전 대표가 당대표 최고위원이었던 당시 중국 방문 중 “개헌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이라며 주장했던 권력체제로,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요소가 결합된 제도다. 대통령이 행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나 평상시에는 내각의 수상이 행정권을 행사하며 하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의구심은 김 전 대표는 과거에 차기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이를 번복하는 듯한 발언으로 불을 스스로 질렀다.
우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내각제로 개헌이 된다면 차기 총선에 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김 전 대표는 “차기 대선에 안 나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문제(총선에 나갈 것이냐)는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내각제 총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대선 불출마 선언은 당연한 절차가 된다. 김 전 대표는 이렇게 대선 불출마가 곧 개헌 이후 총리로 가겠다는 뜻으로 읽히자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인 정치 미래 설정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해서 당락에 관계없이 정치를 그만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대선 불출마를 결심했으니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부연설명이 거듭될수록 총리 욕심이 도드라져 보인다는 지적이 꾸준하게 나온다.
다른 하나는, ‘김&장’으로 불리는 그의 보좌진의 행보다. 김 아무개 보좌관은 김 전 대표의 공보 및 메시지를, 장 아무개 보좌관은 정무를 담당하고 있는 투톱이다. 하지만 둘은 김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공동의 목표를 잃었다며 “그만두겠다”며 잠적했지만 잠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두 보좌관이 잠적한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다시 김 전 대표의 품속으로 들어갔는데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불출마에 크게 반발한 투톱을 다시 끌어들인 다른 공동의 목표치가 제시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물론 그에게 ‘내각의 수상’은 정말 산 넘어 산 넘어 산이다. 우선 탄핵깃발을 든 그를 중심으로 추동세력이 20명 이상은 모여야 원내에서 세력화할 수 있다. 당내에 남더라도 비상대책위원회가 야당과의 협의와 협상을 통해 탄핵을 성사시키고, 그 동력으로 개헌까지 이끌어 내 김 전 대표를 좋은 총리감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김 전 대표를 잘 보좌할 수 있는 당내 의원 중 나경원 주호영 의원 등이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들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없다.
한편 친김무성계에서는 김 전 대표가 최순실 사태를 풀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언론의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 김무성 총리 만들기의 일환으로 해석됐다. 한 전직 의원은 “대선 욕심 때문에 자기가 풀기 어렵다면 그것을 내려놓고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지자고 판단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전하면서 “김 전 대표가 최근 ‘내 팔자가 왜 이러냐’는 말씀을 많이 하고 다녔다”고 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야당이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촛불 민심이 차기 대선까지 이어지길 바라자 자신이 나서서 탄핵을 추진하자고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친김무성계는 ‘내각의 수상’까지는 김 전 대표가 그림을 그리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불출마의 진정성을 왜곡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
김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23일 밤 비박계 의원들과 소주 회동에 나섰다. 여의도 모처 고급 중식점에는 김학용 의원의 사발통문을 전해들은 30여 명의 의원들이 모였다. “무대(김무성 대장의 줄임말)가 대선캠프 해단식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났다. 권성동 강석호 이철우 장제원 김성태 오신환 정병국 김영우 정운천 김종석 한선교 박성중 윤한홍 이학재 이은재 여상규 안상수 홍일표 홍문표 김상훈 정양석 황영철 박인숙 전희경 김현아 김성태(비례대표) 의원 등이 모였다.
이날 김 전 대표는 의원들에게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것을 두고 내가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하는데 대통령은 국민과 나를 배신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의원들은 “정치는 생물이니 오늘 불출마를 했더라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의원들은 모두 탄핵절차를 밟게 된다면 찬성하자는 결의를 모았다는 전언이다.
친박계가 박 대통령 방어벽을 허물지 않고 박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버틸 경우 집권여당 내 탈당 움직임이 본격화할 수 있다. 만약 김 전 대표와의 ‘불출마 회동’에 모인 의원들이 김 전 대표와 함께 단일대오로 탈당한다면 김 전 대표의 구심력은 아주 커질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김 전 대표로선 도 아니면 모인 상황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