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후보가 29일 광주·전남 경선에 이어 30일 부산·경남 선거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사진은 광주·전남 경선 개표 장면. 연합뉴스 | ||
노무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친노그룹이 ‘대권주자 죽이기’ 비밀 플랜을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가동해 왔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범여권 제3후보들이 잇따라 낙마했을 때만 해도 비밀 플랜 가동설은 말 그대로 ‘설’ 수준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맞짱 승부’를 펼쳤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마저 낙마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범여권 대권경쟁에 뛰어들면서 승승장구했던 손학규 후보마저 ‘보이지 않는 손’ 논란에 휩싸여 추락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자 ‘대권주자 죽이기’ 플랜은 단순한 ‘설’이 아닌 구체적인 물증만 없을 뿐 정황상으로는 사실쪽에 가깝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손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얼마 전 기자와 만나 청와대가 ‘손학규 죽이기’ 비밀 문건을 작성해 조직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컷 오프를 1위로 통과하며 대세론을 구축해 나갔던 손 후보가 본 경선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지지율이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배경에도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친노그룹의 ‘손학규 죽이기’ 플랜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손 후보 측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친노그룹의 ‘대권주자 죽이기’ 비밀 플랜이 가동되고 있을 것이란 전제하에 다음 타깃은 정동영 후보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정 후보가 경선 전반부에서 1위로 뛰어 오르며 ‘역 대세론’을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친노그룹 단일화 주자인 이해찬 후보가 최근 들어 정 후보를 겨냥한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고 정 후보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도 ‘정동영 죽이기’ 플랜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정 후보 측 김현미 대변인은 20일 동원선거에 불만을 품고 경선일정에 불참한 손 후보 문제와 관련해 “손 후보의 경선 불참 파동 이면에는 손학규·이해찬 연대 움직임이 있다. 지역주의에 기반하는 ‘호남후보 배제론’이 작동하고 있다”며 ‘반 정동영 연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동원·조직선거 논란과 대권-당권 거래설 의혹과 관련한 친노그룹의 정동영 때리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해찬 후보는 “조직선거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 다짐을 해야 한다. 금권선거는 선거법으로 처벌하고 당에서 출당시켜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이 후보 캠프 공동 선대위원장인 유시민 의원은 “열린우리당을 망친 주역인 정 후보와 김한길 의원 간의 당권거래설이 사실이라면 신당도 망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또 한명숙 공동 선대위원장은 “2000년 민주당에서 정풍운동을 주도한 정 후보가 조직·동원 선거의 구태 정치인으로 전락했다”며 “진상조사와 시정조치를 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선병렬 의원도 “자꾸 잔꾀를 부리니 정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 후보의 정동영 때리기는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차떼기 동원선거도 가열되고 있다. 이 후보 측과 손 후보 측은 정 후보 측이 29일 밤 부산에서 차량동원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며 후보 사퇴까지도 촉구하고 있다. 이 후보 측은 이와 함께 정 후보 측이 휴대전화 선거인단 대립접수를 하고 있다며 그대로 묵과하지는 않을 태세다. 이 후보는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의 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정 후보의 조직 동원선거를 집중공격할 태세다.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이야기다.
손 후보도 정동영 때리기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손 후보는 27일 광주 토론회에서 “조직·동원경선이 국민경선의 뜻을 훼손하고 있다”며 정 후보를 겨냥한 공세 포문을 열더니 “어차피 대선에서 안될테니 당권이나 챙기고 공천이나 챙기고 고향사람이나 챙기자는 두려운 패배주의가 번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분당 주역으로는 결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정 후보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긴 손 후보 측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선두를 되찾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조직·동원선거 논란 및 김한길 의원 등과의 ‘당권거래설’ 의혹과 관련한 당 차원의 법적조치 촉구 등 ‘정동영 때리기’에 총력전을 펼친다는 각오다.
‘이해찬-손학규 연대설’도 ‘정동영 죽이기’ 플랜과 맞물려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 후보의 충청표와 손 후보의 수도권표가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선거 방정식이 이 후보 캠프 진영에서 흘러나오면서 수면위로 부상한 ‘이-손 연대설’은 손 후보의 경선 이탈 시위로 절정에 달했다.
▲ 정동영 캠프가 이해찬-손학규 후보 측이 손잡고 ‘반 정동영 연대’를 가동시키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
정 후보도 21일 부산 토론회에서 “한명숙·유시민 후보와 단일화했으니 손 후보와도 합치는 것 아니냐”며 ‘이-손 연대’ 의혹을 부추겼다. 손 후보의 경선 이탈 등 돌발 행위는 양 캠프의 치밀한 교감 속에 진행됐고 ‘이-손 연대’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 후보 측의 시각이다.
정 후보 측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 후보 측과 손 후보 측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 후보 측 핵심 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지목된 손 후보 측 김부겸 의원은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고, 이 후보 측 윤호중 의원은 “광주·전남 경선을 앞두고 있지도 않은 이-손 연대설을 퍼뜨리는가 하면 터무니없는 호남배제론까지 들고 나왔다”며 “이는 명백한 지역주의 선동행위”라고 비난했다.
범여권 관계자들도 두 사람의 걸어온 정치 환경이나 이력, 정치이념에 비춰볼 때 연대론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또 전반부 경선 결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인 만큼 연대론에 공감하더라도 서로 자기 중심의 단일화를 주장할 것이란 분석도 회의론을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이 후보와 손 후보 측 모두 연대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고 범여권 관계자들도 회의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향후 경선 구도 및 변화무쌍한 대선정국 추이에 따라서는 현실화 가능성 또한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양 측 일각에서는 정 후보가 영호남 슈퍼 4연전에서도 1위 자리를 고수하며 ‘역 대세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이 범여권 후보단일화에 앞서 ‘경선 단일화’ 카드로 승부수를 띄울 필요도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 폄하발언’ ‘민주당 분당 주역’ ‘호남 필패론’ 등 적잖은 약점을 안고 있어 본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내부 평가를 받고 있는 정 후보를 경선에서 낙마시키고 이 후보와 손 후보가 전략적으로 연대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상대해야 연말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가 기조에 깔려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이-손 연대설’을 뒷받침하는 정교한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정 후보의 역 대세론이 확고히 구축될 경우 이 후보와 손 후보가 경선 막판에 극적으로 연대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처럼 친노그룹과 손 후보 측이 ‘정동영 죽이기’에 의기투합하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정 후보 측은 “결코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며 결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당권거래설 진원지로 알려진 김한길 그룹 의원 13명이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등 강력 대응 의지를 보인 것은 전면전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염동연·조배숙·최용규 등 신당 경선과정에서 정 후보 지지를 공개선언했던 김 의원 그룹은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세가 불리하다고 근거도 없는 ‘당권거래설’ 운운하면서 동료 의원들을 매도 폄하하는 이해찬 후보가 구태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며 “당권거래설의 발설 진원지를 가려내고 책임있는 사람은 정계를 은퇴해야 할 것”이라며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 후보 측은 또 ‘이-손 연대설’과 관련해서도 “‘호남후보 배제’를 위한 작당은 지역주의적 발상이며 호남 유권자를 무시하고 모독하는 행위”라고 반발하면서 연대설이 현실화될 경우 범여권 분열은 물론 대선 필패에 따른 냉혹한 국민적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경고하고 있다.
정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이번 경선의 최대 분수령인 광주·전남 경선(29일)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모든 경선에서 정 후보가 1위를 할 것이며 국민 지지도에서도 선두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며 “‘정동영 대세론’이 확산될 경우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한 ‘정동영 죽이기’ 플랜은 더욱 치밀하고 은밀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친노그룹의 대권 전략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만큼 이미 중도하차한 범여권 후보들처럼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경선 과정에서 음모론이나 검은 커넥션이 드러날 경우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은 정치생명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호남 슈퍼 4연전 이후 신당 경선구도에 팽팽한 긴장감과 전운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역 대세론’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 후보와 신당 최종후보로 선출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는 이 후보 중심의 친노그룹 간의 진검승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