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을 가장 당황케한 것은 회담 일정을 하루 연장하자는 김 위원장의 즉석 제안이었다. 보통의 외교 관례라면 이런 제안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김 위원장은 태연히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 제안을 꺼냈다.
국내의 분석가들은 “오후 회담 초반에 이런 얘기를 꺼내 상대의 기선을 제압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가 하면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룩할 합의를 구체적으로 원했던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대화를 나누자는 호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내 북한문제연구소의 전문가가 내놓은 이유 중에 이런 장황한 해석들과 달리 단순히 ‘날씨’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있어 눈길을 끈다. 북한문제연구소의 한 전문가에 따르면 회의를 하던 오후부터 내린 비 때문에 당일 저녁 노 대통령이 관람할 예정이었던 아리랑 공연이 취소될 상황이었다는 것. 아리랑 공연 3시간 전에 모든 인원을 배치하는 등 준비를 마무리하는 북한의 관례상 당시 행사를 위해 동원됐던 북한 인민 6만여 명이 남한 측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를 그대로 맞으며 돌아가야 하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측 전문가들이 김 위원장의 외교 스타일에서 가장 먼저 꼽는 부분은 ‘회담에선 무조건 기선제압을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상대방이 어느 정도 양보의 자세를 보일 때 비로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내는 것이 김 위원장의 전형적인 대화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회담 기간 중 김 위원장의 여러 가지 돌발적인 행동이 눈길을 끌었다. 환영식장이 갑자기 변경된다거나 정상 회담 시작 시간이 앞당겨 지고 아리랑 공연 시작 시간도 변경돼 남측 수행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만찬과 아리랑 공연에 김 위원장이 불참해 남측을 긴장케하기도 했다. 또 첫째 날 무표정하던 김 위원장이 둘째 날 확연히 달라져 호탕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모습도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편 정상회담에 남측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이재정 통일부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 4명을 배석시킨 것과 달리 북측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만 배석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양건 부장은 김 위원장의 핵심측근으로서 대남 업무를 총괄해오다 지난 2003년 교통사고로 숨진 김용순 전 통전부장의 뒤를 잇는 핵심실세로 김 위원장과 김일성대학 동창으로 알려져 있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북측은 연배나 김 위원장과의 친분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서열을 매기는데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서열이 있다”며 “예전 김용순 비서도 21위, 22위의 낮은 서열을 차지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