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부대변인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의 항명사태에 얽힌 비화와 돈 봉투로 수사검사를 매수하려고 했던 어느 재벌의 이야기 등을 공개했다. 다음은 이 책의 ‘못다 쓴 이야기’ 부분을 요약·발췌한 내용이다.
▲‘심재륜 고검장 항명 사태’ 비화
1999년 1월 초순 서울 여의도 술집에서 심재륜 대구 고검장과 술잔을 기울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검찰 수뇌부가 죽이려고 하면 성명서 발표하고 떠나면 되잖아요”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나 이 말이 검찰 사상 초유의 ‘항명사태’를 촉발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당시 대검찰청은 심 고검장 등 검찰 간부들이 대전 근무시 이아무개 변호사로부터 전별금과 향응 등을 받았다는 이유로 은근히 사직 압력을 가해 심 고검장의 심리적 고통이 극에 달한 때였다.
1월 하순께, 잘 아는 검찰 간부로부터 “심 고검장이 ‘성명서 작성을 도와달라’는 제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마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1월27일 오후 1시 무렵. 심 고검장이 대구를 떠나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후배 기자와 함께 서울 여의도의 심 고검장 아파트로 갔다.
심 고검장은 “오늘 결행하겠다”고 했고, 대구에서 미리 작성한 성명서를 꺼냈다. ‘대전 법조비리 수사와 관련한 입장’이란 제목의 A4용지 7장 분량이었다. (성명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그대로 발표된다면 검찰 조직 전체가 미증유의 파문과 혼란에 휩싸일 것 같았다.
그런데 성명서는 투박했다. 자기변명이 너무 많기도 했다. 그래서 성명서의 제목부터 바꾸기로 했다. ‘국민 앞에 사죄하며’로. 심 고검장은 성명서를 수정했다.
심 고검장은 오후 5시45분 대검청사 기자실에 도착했다. 불과 1년6개월 전만 해도 ‘국민의 중수부장’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사건의수사를 지휘하면서 브리핑하던 곳을 ‘비리검사’라는 누명에 억울해하며 성명을 발표하러 온 것이다.
그는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왔다”며 성명서를 나누어주었다.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검찰간부, 그것도 현직 고검장이 공개적으로 검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검찰의 개혁을 촉구한 것은 검찰 사상 처음 있는 사태였다.
심 고검장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는 이제 끝이야. 하극상은 조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하극상 인간의 뒤는 비참해”라며 “나의 전 생애, 전 재산을 뒤져 보라”는 말을 남긴 채 청사를 나섰다.
심 고검장은 이날 오후 8시께 여의도의 허름한 아지트 술집에 예상외로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저자와) 둘이 주거니 받거니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았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후배 검사들이 수소문 끝에 찾아왔다. 심 고검장은 말없이 폭탄주를 한 잔씩 건넸고, 후배검사들은 “존경한다”며 한마디씩 했다. 그날 우리는 대취했다.
▲추악한 어느 재벌 이야기
1997년 가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사석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95년 수사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돈을 준 재벌총수들을 조사하고 밤늦게 귀가하는데 5대 그룹의 한 핵심 간부가 자기 집 앞에 서 있더라는 것이었다.
평소 잘 아는 사이라 “웬 일이냐”며 반갑게 맞았더니, 거액의 돈을 건네주려고 했다고. 그 검사가 화를 내며 사양했더니, 이 핵심 간부는 “다른 검찰 간부들도 거절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말해, 호통친 뒤 물리쳤다고 한다. 평소 잘 아는 사이만 아니었으면 사법처리까지 고려했었다며 재벌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놨다고.
이와 함께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과 관련된 비화도 소개했다. 그 정치인은 검사로 명성을 날린 이후 제2금융권 회사의 법률고문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정치인이 한때 법률고문을 맡았던 회사의 대표인 K씨가 “회사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안 그 정치인이 저에게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부탁해 그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5억원을 요구했다”고 털어놨다는 것. 하지만 양 부대변인은 “그 말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이 없어 기사로 작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