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합신당 경선이 혼탁해질수록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의 지지도는 오르고 있다. 문 전 사장은 범여권과 거리를 유지하다가 후보단일화 과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 ||
긍정, 부정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으나 신당의 경선이 끝난 마당에 범여권 단일화 과정에서 문 전 사장의 향후 행보가 더 주목받게 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오는 11월 창당을 준비 중인 문 전 사장은 당분간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대선 구도 속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다. 과연 ‘문국현 대안론’의 실체는 무엇이고 가능성과 한계는 어떤 점인지 들여다봤다.
지난 10월 9일~10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국현 전 사장은 6.2%를 기록하며 이명박(50.5%), 정동영(16.8%), 손학규(6.6%) 후보의 뒤를 이었다. 여·야 후보군을 통틀어 4위에 올라섰으며 손학규 전 지사의 지지율과는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뒤를 바짝 쫓았다. 같은 조사기관의 10월 2일 조사에서는 손학규 전 지사(5.8%)를 제치고 이명박(48.1%), 정동영(13.7%)에 이어 8.1%로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1차 ‘마의 벽’이라는 5%대를 연속 2주 돌파한 것이며 지난 8월 23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기타 여론조사에서도 문국현 전 사장의 두각세가 엿보인다. 지난 6일 동아일보·KRC 조사와 한국일보·미디어 리서치 조사에서 각각 5.5%와 4.3%를 얻었고 11일 발표한 조인스 풍향계 주간여론조사에서는 3.7%를 기록했다. 조사기간마다 차이는 있으나 범여권 후보군 중 정동영 손학규에 이어 3위권에 올라선 것. 문국현 캠프 측에서는 대선출마 선언 한 달여 만에 4~5%의 지지율을 얻어낸 것에 대해 고무된 분위기다. 캠프 관계자는 “애초의 예상은 3%대였다. 서울의 30대 직장인만 보면 10%선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물론 50%를 넘는 독보적인 지지율을 가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과는 비교조차 힘든 수치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끝난 후 범여권 후보단일화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면 문 전 사장의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는 지금부터가 관건이랄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문 전 사장 측에서도 현재의 지지율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문 전 사장은 “독자적인 힘으로 11월 중 지지율 20%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라며 향후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문 전 사장이 11월 중에 지지율 20%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문국현 캠프 측의 낙관적 시나리오라는 점을 전제로 ‘문풍(文風)’이 어떻게 불어올 것인지 그려보자.
문 전 사장은 기존 정치권의 러브콜을 거부하면서 독자세력화를 도모해왔다. 14일 ‘창조한국당(가칭)’ 창당 발기인대회를 시작으로 11월 초 창당을 공식선언할 예정. 지난 11일 기자간담회를 가진 문 전 사장은 이에 대해 “발기인대회는 지난달 발족한 창조한국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기간당원 같은 젊은이들이 참여할 것”이라며 “느슨한 형태로 진용을 갖춰 사회원로, 기업인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 기존 정치권이 합류할 여지도 남겨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문 전 사장 진영에는 현역의원으로 이계안 원혜영 제종길 김영춘 의원이 참여해 있다. 특히 김영춘 의원은 경선이 한창인 신당을 최근 탈당해 합류했다는 점에서 문 전 사장 측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밖에 김태흥 최재천 이상민 문병호 의원 등과도 접촉이 빈번하다. 문 전 사장은 50~60명의 현역의원이 가세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대협 5~6기 출신 등 청년그룹과 김제남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등 환경 시민사회 그룹도 속속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달 방미 중 신당 경선에 불만을 나타내며 “신당 후보와 민주당 그리고 문국현 씨가 단일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문 전 사장을 고무시켰다. 김 전 대통령이 사실상 그를 범여권 후보단일화의 한 축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정계에서는 해석했다. 문 전 사장도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이) 미국까지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해 주실 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고마운 말씀이다. 지금은 경제 대결을 국민이 원한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이 나를 거명한 것 아니겠냐”고 화답했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문국현 캠프 측은 11월 초 창당 이후 대선까지의 한 달여 동안 문 전 사장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 단일화를 이루어낸다는 전략이다. 문 전 사장이 범여권의 기존 세력에 ‘끌려들어가지’ 않고 이들을 ‘끌어오겠다’고 장담하는 속내는 범여권 진영의 ‘대선주자 부재론’과 ‘미지수론’이 근거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신당 경선 과정에서 세 후보가 죽기살기식 이전투구를 벌인 점도 문 전 사장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패배한 후보가 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결국 문 전 사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문 전 사장이 창당시기를 계속 늦춰온 배경 역시 이 점을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 범여권의 경선 구도가 어지러워질수록 그 판이 자신에겐 유리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한 정치 분석가는 “범여권의 러브콜에도 문 전 사장이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한 속내에는 기존 경선판에 휘둘리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신선한 이미지를 고수한 뒤 경선 이후의 단일화 시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계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문 전 사장이 바라고 있는 구체적인 단일화 과정은 어떤 모양새일까. 문 전 사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 중이던 지난달 27일 “이번 대선은 이명박-문국현 대결이 될 것”이라며 “국민은 양대 정당에 기대를 접어버린 상황이다. 정치연합을 제의해 올 수도 있을 테지만 그쪽 중심의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신당 중심의 단일화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전문가들은 ‘당 대 당 통합이든 흡수의 형태든 인물 중심 단일화든 1:1의 구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단일화’의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 관계자는 “만약의 경우 대통합민주신당이 또다시 해체되는 해프닝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그럴 경우에는 문 전 사장이 더 큰 힘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선거는 결국 막판 15일 싸움이 될 것이다. 2002년 정몽준 노무현 단일화처럼 범여권 진영도 단일화 과정이 급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후보가 가려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범여권의 구도 자체가 복잡하다는 점에서 후보단일화 논의가 문 전 사장의 뜻대로 급물살을 타긴 힘들 것이란 관측도 있다. 어려운 경선을 거쳐 승리한 신당 후보가 자신의 기득권을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며 열린우리당을 전신으로 하고 있는 신당과 민주당의 해소되지 않은 감정도 문제다.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문 전 사장도 앞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이다.
문 전 사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동시에 그가 가진 한계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선 문 전 사장이 내세우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문국현 캠프에서 내놓은 주요 공약은 타 후보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직 공식 창당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선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내세우고 있는 정책만으로 남은 기간에 정책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허점’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문 전 사장이 주장하는 ‘문국현 vs 이명박’의 경제대통령 대결구도가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친여 성향의 한 정치 분석가는 “경제 분야에서 이명박 후보와 대결구도가 만들어지길 원한다면 이 후보를 능가할 만한 공약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가로서 이명박 후보와 걸어온 길이 비슷한 문국현 전 사장이 기업가적 자질을 내세울 경우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 전 사장에 대한 범여권 실세들의 우려적인 시각도 그가 넘어서야 할 과제다. 한 정치학 박사는 “만약 문국현 전 사장이 범여 후보가 된다면 또 다른 정치실험이자 모험이 되는 것이다. 그가 진정한 대안이 되기 위해선 현재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보다 적극적인 정치철학을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문 전 사장에 대해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혼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문 전 사장이 그리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11월 초 창당시기까지 최대한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범여권 후보단일화도 문 전 사장의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기업경영’을 ‘국가경영’에 접목시키겠다는 그의 포부가 ‘이명박 대항마’로서의 위치를 만들어 낼지도 주목된다. 범여권 내에서 ‘답이 안 나오기 때문에’ 문국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문국현 스스로 ‘정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문풍’이 불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