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세계지식인포럼에 참가한 이명박 정동영 두 대선후보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후보 측은 정 후보와 지역구도를 형성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다. | ||
이에 따라 ‘나홀로 독주’를 계속하던 이명박 후보도 신발끈을 바짝 죄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사실 이 후보 측은 정 후보와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신선함, 지역구도 등을 따져볼 때 정 후보가 아무래도 ‘만만한’ 상대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대선 구도는 보수 대 진보의 맞대결 양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정 후보가 초반에 지지율을 수직 상승시키며 범여권의 대세를 장악할 경우 승부는 예측할 수 없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대 정동영 후보 필살기를 간추려보았다.
이명박 후보 측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가 선출된 날(10월 15일)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었다. 한편으론 강한 자신감도 엿보였다. 자신감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정 후보가 이 후보 대항마로 나선다면 ‘경제 대 평화’ 구도라는 비교적 쉬운 아젠다가 형성돼 이슈 메이킹이 선명하게 이루어지는 강점이 있다. 또한 정 후보가 호남 출신인 까닭에 영호남 지역 구도가 더 뚜렷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어 이 후보에게는 인구가 많은 영남권의 대결집 효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여기에 무엇보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탄생의 주역이자 현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정 후보를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보다 ‘국정실패의 주된 책임자’로 규정하기에 한결 수월하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정 후보가 승리를 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조직 동원 선거로 구태정치를 보이며 적잖은 상처를 입은 것도 이 후보 측에서는 반길 만한 요인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 후보 측은 정 후보가 범여권의 대주주라 할 신당 후보로 ‘일단’ 선출되자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 후보 측은 ‘약체’ 정 후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매우 꺼리고 있다. 왜일까. 이 후보 측은 정 후보를 후보 단일화라는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미숙아’ 단계로 규정하고 그를 진정한 ‘옥동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기선제압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후보에 대한 철저한 ‘무시’가 이 후보 측을 관통하는 기본 전략인 셈이다.
이 후보 측에서는 이를 두고 “이 후보가 일일이 정 후보를 언급할 경우 그를 ‘동급’으로 대우해 조기에 양자구도가 형성되면서 정 후보의 중량감만 높여줄 수 있다”라며 무시 전략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이 후보의 한 핵심측근은 이에 대해 “범여권 주자들이 단일화를 한다면 맞상대할 용의가 있다. 누가 범여권 후보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하나 상대해 주면 각 후보들의 지지율만 올려주는 꼴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범여권 후보들 각자가 ‘이명박 대항마’를 외치는 상황에서 굳이 맞상대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이 후보 측은 “지지율 50% 후보(이명박)와 10%대인 후보(정동영)를 수평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정 후보를 평가절하하면서 방송토론 요구 등으로 강하게 맞서려는 정 후보 측 움직임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기본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후보 측이 정 후보에 대해 무시 전략을 쓰고 있다고 해서 그를 약체로 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 후보가 두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 후보 측이 계획 중인 가장 근본적인 범여권 주자에 대한 전략은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미리 자르는’ 선제공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동영 후보든 문국현 전 사장이든 일단 ‘뜰’ 기미가 보이면 미리 선제 타격해 공중 부양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후보 측은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대권 주자로 확정된 직후 그의 지지율이 수직상승하자 겉으로는 “별 것 아니다”라며 애써 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파괴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총회장에서 대권 주자로 선출된 정 후보를 두고 동료의원들이 ‘뒤에서 빛이 난다’라는 농담을 던졌듯이 정 후보가 대권 주자로 확정된 이후 지지율도 예전에 비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5%대에 머물던 그의 지지율은 최근 20%대로 치솟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세를 탈 경우 47~56%대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이 후보의 지지율이 자연스레 조정국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명박 대세론’에 제동이 걸리면서 예상 밖의 ‘힘든 싸움’이 되지 않을까 이 후보 측이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진단한다.
이에 대해 정두언 의원은 “이른바 ‘컨벤션 효과’라고 하는데 전당대회가 끝나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앞으로 1주일 후까지 그 효과가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또한 “아직 1주일이 안 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정 후보의 지지율이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과거 예로 볼 때 후보 확정 후 지지율이 20%를 넘지 않으면 후보 단일화, 후보 교체론이 많이 나오게 마련이다.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는 이 후보 측이 정 후보의 지지율 추가 상승을 기대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그대로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정 후보의 지지율 추이에 대한 예상은 캠프 내부에서도 엇갈린다. 캠프 소속이 아닌 한 핵심 당직자는 이에 대해 “정 후보의 지지율이 지금은 20%를 밑돌고 있지만 본선이 가까워 오면서 결국은 20%를 넘어 30~40%에 육박할 것으로 본다. 지금부터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 후보의 지금 지지율은 비정상적이다. 거품을 빼 안정적인 45%대를 유지하는 것으로 목표를 낮춰 잡아야 나중에 동요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정 후보 지지율이 그렇게 고공행진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정 후보가 당내 경쟁자였던 손학규, 이해찬 후보의 지지율조차 흡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 수직상승은 무리다. 반면 이 후보의 지지율이 지난 8월말 당내 경선 이후 50% 전후로 견고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정 후보에 대한 선제타격용 무기가 여러 개 준비돼 있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은 아직 ‘대세론’에 큰 변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지만 후보단일화 효과와 진보진영 및 호남표 결집을 통해 판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비해 현재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선제타격이다. 정두언 의원은 이에 대해 “지지율이 크게 격차를 벌이고 있는데 절대로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공세적으로 나가고 우리 스스로 변화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된다”고 말했다. 지지율 1위 후보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기조 하에 ‘선제공격 전략’을 세운 것이다.
최근 정두언 의원은 정 후보 부친의 친일행위 의혹을 제기했고, 박세환 의원은 정 후보의 처남 민 아무개 씨가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있다며 공격한 것 등이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이 후보 캠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정 후보의 비리의혹에 대한 제보 접수에 본격 착수했다. 현재 제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으며, 그 중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산하에 ‘정동영 조사팀’을 두고 철저한 검증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때 이 후보는 ‘무시전략’을, 당은 정 후보를 집중 공격하는 선봉대 역할을 하는 등의 역할 분담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가 네거티브공방의 전면에 나설 경우 그 부담이 바로 전해지기 때문에 일단 공격 최선봉에서는 빠진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 동교동계 수장 권노갑 전 고문이 정동영 후보의 정치권 입문과 성장 배경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이인제 민주당 후보가 범여권 단일화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도 동교동계 지원을 받고 있는 그가 정 후보에 대한 모종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후보 측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 대한 ‘스크린’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캠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범여권의 후보가 누가 되든 어쨌든 그들은 노무현 정권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되면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이 범여권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범여권 후보는 어쨌든 ‘반 이명박’ 공동 노선을 형성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 대비해 노 대통령의 말기 비리를 집중 공격해 그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범여권 후보에게도 도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집중 부각시켜 정동영 후보에 대한 힘 빼기를 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이 후보 측은 “최근 정 후보가 친노그룹과의 관계복원을 시도하는 것을 보더라도 노무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더욱 강도 높게 조사해야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라고 보기 때문에 앞으로 노 정권의 비리도 이 후보 측의 주요 공격거리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 측은 또한 정동영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호남·충청권과의 연대’를 통한 외연확대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여권에서 이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와 함께 호남 출신 정동영 후보가 올 대선을 지역대결 구도로 만들 것이라는 판단에서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이 후보 측의 자신감이 읽혀진다. 이 후보 측은 정 후보가 호남 출신(전북 순창)임을 주목한다. 정 후보 선출로 호남 대 비호남 구도가 고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역구도 선거가 재연될 경우 정치공학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자체 분석이다. 공성진 서울시당 위원장은 “범여권 표를 분석해볼 때 호남표가 뭉치는 효과가 있겠지만 비호남 지지세력이 빠지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정동영 후보의 콘텐츠 부족도 집중 공격 대상이다. 이 후보가 정 후보를 ‘냉소적’으로 보면서 그의 ‘능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무시 전략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 이 후보는 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날(10월 15일) 당사에서 평소대로 아침 일찍 회의를 열었다. 그는 회의 초반에 정 후보의 선출을 두고 “결국 뭐라고 하든 다 노 정권의 아류다. 이번 대선은 정권연장 세력과 정권교체 세력의 싸움이자 ‘말 잘하는 세력’과 ‘일 잘하는 세력’의 싸움”이라고 규정, 정 후보가 구체적 실행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말’로 승부하려는 경향을 꼬집기도 했다. 인물면에서 이명박 후보가 크게 앞선다고 보고 그것을 집중 부각시킬 전략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후보 측은 “방송기자 출신으로 화려한 언변을 가진 정 후보가 말실수가 잦은 이 후보를 압도할 수 있다”라며 미디어 선거에 대한 대비도 철저하게 할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도 대선은 마라톤으로 비유해도 출발선 상이다. 앞으로 많은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과연 이명박 후보의 계산대로 흘러갈지 아직은 장담하기 이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