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 97년과 200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이회창 전 총재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이 곁에서 ‘모시던’ 이 전 총재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을 평가해 화제다. 서 전 의원은 이른바 ‘세풍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복역하다 지난 7월30일 가석방됐다.
서 전 의원은 10월20일 펴낸 책 <정치시대를 넘어 경제시대>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과 이 전 총재의 두 차례 패배 원인을 상세히 열거하면서 ‘주군’의 정치적 오판이 있었음을 토로했다.
<정치시대를…>은 서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 무대에 발을 들인 후, 16년 간 겪은 정치 경험과 경륜을 모은 책. 97년과 2002년 당시 대선 비화와 대통령제와 국회, 그리고 현 노무현 정부의 문제점,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대 대통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후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한 단상도 담겨 있다.
서 전 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실패 원인을 네 가지로 분석했다. 서 전 의원은 그 중 한국 정치 흐름을 좌우해 온 지역주의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지 못한 점을 패배의 주원인으로 지적했다.
특히 충청권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이 선거 과정에서나 득표의 ‘동력’을 얻지 못한 주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그 중 이 전 총재가 선거 기간 중 원래의 고향(충남 예산)과 출생지(황해도)를, 그리고 학교는 전라도에서 다녔다는 등 ‘전국 연고’를 주장한 것이 도리어 악재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와 연계하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내각제 약속만 들어주면 DJP연대를 깨고 이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제의를 해온 비화를 공개하면서 당시 이 전 총재가 일언지하에 김 총재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반전 기회를 저버렸던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고 밝혔다.
또한 2002년 대선에서도 지자체 선거와 보궐선거 결과에만 도취돼 통합21 정몽준 의원과 김종필 총재와의 관계 개선을 통한 충청권 지지 확보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 패배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고 주장했다.
서 전 의원은 당시 정 의원이 독자 출마를 하도록 하기 위해 정 의원의 측근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한 과정과,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후에도 김종필 총재와의 연대를 주장했으나 자민련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온 의원들의 반대로 연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서 전 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악재 관리 소홀, 이인제 의원 탈당 등 당내 분란 대처 미흡, 선거홍보전 실패 등을 부가적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 93년 자신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앉힌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여타 대통령과는 달리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특히 역대 대통령 평가 부분에서 서 전 의원은 YS가 다양한 시책 추진에도 불구, 효과 면에서는 큰 업적을 올리지 못하고 급기야 외환 위기를 자초하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낳으면서 실패한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 (왼쪽부터)이회창,김영삼 | ||
정치 개혁 의지는 나름대로 높이 평가되지만 특히 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정치 개혁을 완성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고 싶은 강한 욕망이 오히려 화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이 강한 자존심 때문에 여론의 비판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각료들을 쉽게 경질했고, 이 때문에 각료들이 소신껏 정국 운영을 펼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서 전 의원은 자신과 YS와의 일화도 짤막하게 소개했다. 지난 96년 총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을 독대, 자신이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시절 쓴 <말만 하면 어쩝니까, 일을 해야 하지요>라는 제목의 저서와 여론 조사 결과를 주고 그동안의 인연을 상기시키는 방법으로 김 전 대통령을 설득, 강남갑 후보로 공천이 유력했던 최병렬 후보를 밀어내고 자신이 공천을 받은 일화, 그리고 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천거하는 과정에서 이홍구 대표를 후보로 밀던 김 전 대통령의 미움을 샀던 일화도 털어놓았다. 서 전 의원은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당 총재인 대통령이 공천권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서 전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서 전 의원이 세풍 사건 재판에서 김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하면서 생긴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 출간에 앞서 기자와 만난 서 전 의원은 “원래 뒤끝이 없는 분 아닌가. 나도 특별한 감정은 없다”고 밝혔다.
서 전 의원은 현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도 진단하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서 전 의원은 “현 정부가 지금은 어떠한 정책보다도 기업이 기업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때”라며 “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 기간 동안 느낀 한국 기업의 중요성을 재임 기간 동안 늘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 전 의원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드리며 나름대로 국민들에게 진 빚을 갚는 차원에서 책을 펴내게 됐다”며 “책이 잘 나가면 이익을 사회를 위해 쓰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