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가의 이목이 검찰에 쏠리고 있다. 정윤재 전 비서관의 청탁 의혹과 BBK 주가조작 사건 등 대선정국에 핵폭탄이 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검찰이 거침없이 칼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BBK 핵심당사자 김경준 씨, 정윤재 전 청와대 | ||
검찰의 사정 칼날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권력 심장부인 청와대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변 전 실장과 정 전 비서관이 각각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과 건설업자 김상진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전격 구속된 데 이어 전군표 국세청장과 전·현직 청와대 참모진도 검찰 사정 레이더망에 걸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윤재 사건은 현직 국세청장까지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어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청와대가 극구 부인했던 ‘권력형 비리’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단독입수한 ‘정윤재 구속영장 재청구’ 사본에 따르면 검찰은 정윤재 사건을 ‘권력형 비리’로 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그동안 정윤재 사건과 관련해 “깜도 안 된다”며 권력형 비리 의혹을 일축했던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으로 적잖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설업자 김상진 씨로부터 1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뇌물 1억 원 중 6000만 원을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권력형 비리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국세청은 ‘6000만 원 상납설’과 관련해 23일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검찰은 정 전 청장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고 진실 규명을 위해 조만간 전 청장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특히 정 전 청장이 전 청장에게 건넨 돈의 성격을 ‘인사청탁 명목’이라고 진술하고 있다는 점과 1억 원의 용처와 관련해 정·관계 로비용으로 활용됐을 것이란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는 만큼 “성역 없이 엄중하고 신속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청장과 정 전 청장 간 ‘상납설’이 사실로 드러나고 인사청탁에 정 전 비서관이나 또다른 청와대 실세가 개입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이번 사건은 본격적인 권력형 비리로 확전되면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기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청와대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이 건국대 재단비리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당했다는 사실도 청와대를 곤욕스럽게 하고 있다. 건국대 모교땅 되찾기 추진위원회는 16일 건국대가 시행했던 광진구 자양동의 대규모 주상복합단지인 ‘스타시티’ 건설사업 과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 2명의 ‘외압’이 있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이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전·현직 비서관은 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맡고 있는 A 씨와 청와대 비서관 출신으로 현재 정부부처 핵심 간부로 재직하고 있는 B 씨로 알려졌다.
▲ 지난 25일 퇴근길에 취재진과 마주친 전군표 국세청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범여권은 검찰이 한때 범여권 대선 예비후보로 활동했던 C 의원에 대해 은밀히 내사를 벌여 왔다는 사실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C 의원이 S 기업 등 부실기업에 기술개발자금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수억 원대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포착하고 지난 4~5월부터 은밀히 내사를 벌여왔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검찰의 한 관계자는 “C 의원에 대한 내사는 지난 6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초 서울 동부지검에서 담당했던 사건이 서울지검 특수3부에 배정됐다는 사실에서 사건의 중대성은 물론 C 의원에 대한 혐의를 입증할만한 상당한 정황이 확보됐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특수3부는 조만간 C 의원을 소환 조사할 방침을 세워 놓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C 의원 소환은 비리 혐의에 대한 진실 규명보다 대선정국 이해득실과 맞물린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칼날이 살아 있는 권력과 범여권만 겨냥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검찰은 최근 한나라당 현역 의원의 정치자금 비리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도권 K 의원이 지난해 4·25 재보궐선거 당시 공천을 대가로 해당지역 기초의원 후보로부터 5800만 원의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검찰은 또 K 의원이 모 건설업체에 관급 공사를 몰아주는 대가로 거액의 자금을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최근 해당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본격화되고 있는 대선정국 판세를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는 BBK 사건 중심에도 검찰이 자리 잡고 있다. BBK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김경준 씨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정치권의 이목은 검찰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50%대의 지지율로 대세론을 확고히 다지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인 만큼 검찰 수사 추이 및 결과에 따라 대선판세는 요동을 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이 후보 대리인인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 측이 김 씨의 한국 송환을 유예해 달라며 제출한 신청서가 24일 미국 법원에서 기각됨으로써 대선 전에 김 씨가 국내로 송환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미국 국무부 승인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 김 씨가 이르면 다음달 28~29일께 귀국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김 씨가 대선 전에 귀국해 검찰에서 새로운 주장을 펼칠 경우 연말 대선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엄청난 폭풍우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통합신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이 후보가 주가 조작은 물론 BBK와 관련된 펀드를 통해 불법적으로 돈세탁을 한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금융감독원도 국감장에서 김 씨를 직접 조사하지 못했다고 밝히는 등 BBK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김 씨가 송환될 경우 BBK 사건을 둘러싼 실체적 진실 규명은 검찰의 몫으로 넘겨질 수밖에 없다. 또 진실은 뒷전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승리하고 보자는 정치권의 네거티브 대선전략과는 달리 검찰의 수사 추이와 결과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선이나 대형 정치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권력의 시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검찰이 과연 살아 있는 권력과 미래권력을 대상으로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지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대선정국에 또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