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감독으로서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51)은 마침내 2004년 K리그 챔피언을 차지한 뒤 눈물을 쏟았다. 차 감독은 “울산 현대, 98월드컵대표팀, 중국프로축구 감독을 하면서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다”면서 “우승하니 모든 게 다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다”라며 감격해했다. 14년만의 ‘한풀이’를 하기 까지의 비스토리를 소개한다.
올시즌 수원에 부임한 차 감독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너무 얌전하다며 못마땅해 했다. 특히 불성실한 선수는 명성에 관계없이 매서운 채찍을 들었다. 그 중 상징적인 사건은 시즌 초반 팀의 기둥 박건하(33)에 대한 공개비판이었다. 최고참에 대한 비판은 차 감독의 호통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어 차 감독은 겉멋이 든 어린 선수들에게 염색금지, 단발령을 내리며 수위를 높여갔다. 급기야 프랜차이즈 스타 고종수가 훈련을 무단불참하자 ‘임의탈퇴’ 형식으로 쫓아버렸다.
수원의 후기우승은 지난 10월 무실점으로 버틴 4연승의 힘이 가장 컸다. 하지만 당시 골문에는 이운재가 아닌 무명의 김대환이 서 있었다. 차 감독은 컵대회에서 대표팀에 차출된 이운재를 대신해 선방을 하던 김대환에게 중책을 맡기는 결단을 내렸다. 컵 대회 후반 이운재가 대표팀에서 수원으로 복귀한 뒤 우승을 놓친 기억도 용단의 배경이었다. 차 감독은 “운재가 예전보다 몸무게가 늘고 활동반경이 좁아졌는데 자극하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올림픽대표 출신인 마르셀과 나드손의 막강화력은 수원 우승의 절대적인 ‘필요조건’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이 팀을 떠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 차 감독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한때 포르투갈 FC포르투의 스카우트 표적이 됐던 마르셀과 전천후 공격수 나드손은 한국보다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계약기간이 많이 남아있는 이들에게 차 감독은 K-리그 우승의 매력을 설명했고 결국 올시즌 마지막까지 팀 전력에 보탬이 되도록 이끌었다.
올시즌 K리그 챔피언결정전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차 감독은 PK승부를 고려해 최근 한 대학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승부차기를 맹훈련했다. 차 감독은 포항과의 챔피언전 2차전에도 PK를 염두에 두고 경기 도중 선수를 교체하는 용병술을 보였다. 차 감독은 수원의 다섯 번째 키커로 골키퍼 이운재를 배정하려 했던 비화도 소개했다. 차 감독은 “운재가 차지 않겠다고 해서 바꿨는데 결국 운재가 골키퍼로서 큰일을 해줬다”며 웃었다. 당시 이운재가 포항 김병지의 슛을 막아내며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김대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줄 알고 “왜 저렇게 좋아하지?”라며 의아해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송호진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