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3월 이 나라를 국빈으로 방문했는데, 프로젝트가 성사된 배경에는 당시 주바티칸시국 대사였던 배양일 예비역 공군 중장의 집요하고도 치밀한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비화는 월간 <신동아> 조성식 기자가 군이 배출한 대표적인 명장들을 인터뷰해 최근 펴낸 <장군들의 리더십>(늘푸른 소나무)을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가톨릭 신자였던 김 전 대통령은 99년 2월 배 대사에게 신임장을 주는 자리에서 ‘바티칸시국을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배 대사는 자신이 최초로 한국 대통령의 바티칸시국 국빈 방문을 성사시켜 보겠다는 목표를 잡고 부임 직후부터 치밀한 작업에 들어갔다.
배 대사는 먼저 바티칸시국 장관들을 만날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김 대통령’을 주지시켰다. 그 결과는 국빈 방문 문제가 바티칸 국무회의에 상정됐을 때 나타났다. 당초 바쁜 교황의 일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던 교황청에서도 장관들의 지원 사격 덕분에 마침내 국빈 방문을 허용했던 것.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대통령 방문시 베드로대성당을 방문하기 위해선 대리석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김 대통령이 수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긴 계단을 오르기는 어려웠다. 정부측은 승용차로 정문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바티칸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황청은 대신 쪽문을 이용하라고 했지만, 배 대사는 “일국의 대통령이 쪽문을 이용할 순 없다”고 맞섰다.
배 대사는 직접 베드로대성당을 찾아가서 통로를 샅샅이 찾아보고 수소문한 결과, 교황만이 드나드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끈질기게 그 길을 이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교황청측은 교황만의 전용 비밀통로가 발각되었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결국 배 대사의 집요한 노력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2001년 5월 전격적인 결혼 발표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잠비아의 엠마누엘 밀링고 대주교와 한국인 통일교 여신도 마리아 성의 결혼 스캔들의 막후 해결 역할에도 배 대사가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결혼한 지 두 달여 만인 8월7일 밀링고 대주교가 교황을 면담한 뒤에 자취를 감춰버리자 마리아 성은 “남편이 교황청에 감금되었다”며 베드로대성당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녀의 농성 현장에는 통일교 신자 수백 명이 응원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배 대사는 마리아 성과 접촉했다. 당초 배 대사를 교황청의 밀사로 여기고 접촉을 꺼리던 마리아 성은 그의 헌신적인 설득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배 대사는 “두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해줘야만 이 일이 해결될 수 있다”며 이번에는 교황청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결국 배 대사의 중간 역할 덕분에 밀링고 대주교와 마리아 성은 8월29일 전 세계 기자들이 몰려든 가운데 한 호텔에서 재회를 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인 이별 선언을 했다. 자칫 국제 문제로 비화될 뻔했던 가톨릭과 통일교 사이에 벌어진 일대 해프닝이 배 대사의 막후 중재로 해결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