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장은 ‘조직·인물·자금’ 등 기성 여의도 문법을 모두 걷어찬 채 온라인상에 퍼져있는 ‘손가락 혁명부대’와 함께 직진을 외친다. 미국의 ‘트럼프 쇼크’에 버금간다. 조기 대선이란 사상 초유의 불확실성이 판치는 시국에 이 시장은 ‘난세의 영웅’이 될 것인가. 그러나 아킬레스건도 만만치 않다. 준비된 포퓰리스트(대중 영합주의자)라는 비판도 있다. 경우에 따라 ‘페이스메이커’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권 잠룡 ‘빅3’로 올라섰다.
“붕괴된 보수정권과의 차별화, 그게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민주당 한 전략가가 탄핵 정국에서 던진 말이다. 적중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전 세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기성 정치권에 대한 혐오와 반감은 극에 달했다. 들불처럼 번진 촛불처럼 제도권 정치에 대한 혐오감도 정점을 향해 내달렸다. ‘앵그리(화난) 촛불’이 대한민국 전역을 덮은 셈이다.
난파선 위기에 처한 집권여당은 국정 수습은커녕 ‘패륜·반란군’ 싸움에 빠진 채 분탕질하기 바쁘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 등 야권의 정치인들은 ‘중도 딜레마’에 빠지면서 정치적 변곡점마다 좌고우면했다. 문 전 대표 등이 ‘집토끼냐, 산토끼냐’의 대선 셈법을 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사이, 이 시장이 그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타 주자들이 ‘질서 있는 퇴진’을 외칠 때, 이 시장은 ‘박근혜 탄핵’을 외쳤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부역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촉구했다. 박 대통령 탄핵 한 달 전쯤인 11월 8일 문 전 대표가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과 경쟁하던 사람으로서 지금 상황이 안타깝고 연민의 정도 느낀다”며 일종의 ‘명예 퇴진’을 외친 것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이뿐만 아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로 규정했다.
박 대통령을 겨냥해선 “우리 손으로 끌어 잡아 박정희 유해 옆으로 보내주자”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차차기에 머물던 그가 정치공학적인 셈법 없이 지지자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준 것이다. 촛불 현장에서도 타 주자들이 ‘찬밥’ 신세로 전락한 것과는 달리 그는 ‘노무현의 판박이’인 대중의 바람에 부합하는 연설로 촛불시민들의 마음을 잡았다.
개성 강한 이 시장이 ‘퍼스트 무버 어드밴티지’(first mover advantage·선점자 우위) 효과를 꾀하자 지지도는 수직 상승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12월 둘째 정례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응답률 27%)에 따르면, 이 시장의 지지도는 18%로, 지난 조사(11월 둘째 주) 대비 10%포인트 상승하며 20%인 빅2(문 전 대표·반 총장)를 바짝 추격했다. 이 시장이 ‘제2의 노무현’으로 불리는 이유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5% 지지도에서 출발, ‘이인제 대세론’(예선)과 ‘이회창 대세론’(본선)을 꺾고 권좌에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문 전 대표는 1%포인트 상승, 반 총장은 1%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수도권(서울 19%, 인천·경기 19%)과 2030세대(24%∼26%), 화이트칼라층(24%)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약점으로 치부됐던 중도층에서도 문 전 대표와 함께 20%로 공동 1위를 기록했다. 반 총장은 19%였다.
이 시장의 강점은 핵사이다 발언과 대중연설에 그치지 않는다. ‘아웃사이더 스토리’도 있다. 그는 1964년 경북 안동의 화전민 아들(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대표적인 ‘흙수저’다. 중학교 시절부터 공장에서 일하면서 다쳐 장애 6급을 얻었다.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그는 1982년 중앙대학교에 입학, 4년 만에 사법시험(제28회·연수원 18기)에 합격했다. 개천에서 용 난 정치인인 셈이다.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언뜻 보면 ‘전태일의 삶’이, 언뜻 보면 ‘노무현의 삶’이 오버랩된다. 슬로건 전쟁의 막이 오르면 ‘감성 공략’을 통한 지지층 결집을 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의 남다른 삶의 궤적은 시장 시절 정책으로 나타났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그는 성남의 ‘모라토리엄’(moratorium·채무지급유예) 선언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더니, 이후 현대식 시립의료원 착공을 시작으로 ‘무상급식·보육·교복·산후조리원’ 등 이재명식 복지 시리즈를 펼쳤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생리대 무상 지원은 물론, 기본소득제인 청년 배당 등도 실시했다. 중앙정부와의 거침없는 ‘맞짱’은 필수였다. ‘아웃사이더 이재명’의 깜짝 반란이 중산층 붕괴에 따른 기성 정치권 심판인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궤를 같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재명 신드롬’에 대해 “핵사이다급 청량감을 탄핵 정국에서 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분석가는 “박스권에 갇힌 문재인·안철수 전 대표와 달리, 골든크로스(golden cross·지지율 역전현상)도 가능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야권 한 관계자는 “사이다는 시원한데, 급하게 따르면 거품이 끼게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이 시장은 빅3로 편입된 이후 잇따른 구설로 실축했다. 2005년 졸업한 가천대(구 경원대) 논문 표절 의혹 해명 과정에서 해당 대학을 ‘이름 모를 대학’이라고 지칭, 뭇매를 맞았다.
이 시장은 12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유를 막론하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11월 4일 민족문제연구소·부산대 총학생회가 주최한 부산 강연에서 “중앙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변호사인데, 제가 어디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의 석사학위가 필요하겠습니까. 필요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그의 또다른 발언은 야권 발 정계개편으로 불똥이 튀었다. 대표적인 게 이 시장의 ‘우산론’이다. 그는 12월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민주당) 의원의 우산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결국 다 합쳐서 공동체 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와의 연대에 대해선 “거기는 1등이잖아요”라고 잘라 말했다. 이른바 ‘반문(반문재인) 연대’를 고리로 후보에 나선 뒤 결선투표제 룰을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법이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대의도 명분도 없는 합종연횡은 작은 정치·구태 정치”라고 비판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지금은 그런 연대를 계산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반문에 들어가는 패거리 정치는 안 한다”며 조기 수습에 나섰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국민의당과 김종인 민주당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이 함께하는 ‘반박(반박근혜)·반문’ 연대설이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선 이 시장이 지지도 상승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묻지마식 전술’에 나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이 시장이 트럼프의 당선을 ‘기득권 타파’로 규정한 것과 관련해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가 기득권층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포퓰리스트의 상투어인 ‘기득권 타파’를 위해 트럼프의 당선까지도 끌어들여 긍정하고 있는 것은 인기 상승을 위해 진보·보수를 따지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의 ‘남다른’ 가족사가 대권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막내 여동생은 2014년 새벽 출근길에 생을 마감했다. 건설노동자인 맏형인 한쪽 다리가 절단되는 산재 사고를 당했다. 청소노동을 한 부친은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셋째 형 재선 씨와의 자금 문제를 둘러싼 다툼은 존속 상해(노모 폭행 사건)로 번졌고 지금도 온라인상에 이 시장이 형수에게 욕설하는 녹취파일이 나돈다. 물론 이 욕설의 배경에는 말못할 다른 사정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대선가도에서 이 시장이 넘어야 할 산인 것은 분명하다. 재선 씨는 현재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성남지부장이다. 이 시장은 이와 관련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 이어 박사모까지 죄송…”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 시장의 지지도가 계속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면서도 “문재인 대세론과 필적할 후보가 있다는 것은 당으로선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동교동계 핵심 인사도 “이 시장의 정치적 시험대는 이제부터”라며 “포퓰리즘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 포지션을 넘어서느냐가 핵심”이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
세력·싱크탱크·지역기반 ‘3무’…SNS 공중전에 화력 집중 “사실 그분에 대해 잘 모른다” vs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일꾼이다.” 차기 대권구도의 ‘상수’로 떠오른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한 당내 반응은 극과 극을 달렸다. 다수의 현역 의원들과 보좌관들은 이 시장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했지만, 이재명계로 분류할 당내 조직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반면 성남시와 같이 일해 본 의원들은 이 시장의 빠른 판단력과 거침없는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시장 스스로 밝힌 ‘변방형 장수 리더십’이 있다는 것이다. 정가의 허리케인을 몰고 온 그에겐 차기 대선주자들이 흔하게 가진 3가지가 없다. 하나는 당내 세력이다. 이 의원이 편하게 통화하는 민주당 현역은 정성호 의원이 유일하다. 정 의원과는 사법시험(제28회·연수원 18기) 동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도 같이 활동했다. 정 의원은 국민의당과의 분당 전 김한길계로 통했다. 당내 비노(비노무현)계 한 의원은 “이 시장이 유일하게 자문을 주고받는 분은 정 의원밖에 없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차기 대선 과정에서 민변 출신과 시민사회단체 출신 의원들이 이 시장을 지지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사시 동기인 문병호 전략홍보본부장과 최원식 전 의원과도 친분이 깊다. 범주류인 정청래 전 의원도 이 시장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시장은 지난 2007년 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과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 비서실 수석부실장 등을 맡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동영 심복’, ‘동교동계 지원설’ 등이 끊이지 않지만 이 시장은 그때마다 “나는 성남계이자 국민계”라고 일축했다. 당 외곽 조직인 ‘싱크탱크’도 없다. 현재 이 시장을 정무적으로 돕는 인사는 성남시청 내 2∼3명에 불과하다. 이 시장 측은 차기 대선 과정에서도 기존 후보들의 세 과시 명목인 ‘싱크탱크’ 조직을 만들지 않을 방침이다. ‘이재명 현상’이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파생했다는 인식에서다. 지역적 구심점도 없다. 이 시장은 경북 안동 출신이다. 재선(민선 5·6기)에 성공한 성남시의 인구는 100만여 명에 불과하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의 대표적 주자로 거듭나기 어려운 조건에 처한 셈이다. 당 안팎에서 이 시장이 호남 공략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조직·인물·자금’ 등 기존의 여의도 문법에서 벗어난 이 시장은 ‘손가락 혁명’으로 불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공중전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기성 정치권의 반대급부로 부상한 이 시장에게도 여의도 문법의 차용은 ‘잭팟보다는 쪽박’에 가깝다. 이 시장에 대한 지지를 고민하는 원내외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위험한 도박이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언론에서는 이 시장이 정치적인 인물로 비치지만, 같이 일을 해본 사람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한다”면서도 지지 여부에 대해선 함구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