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로 이명박 후보가 다급한 상황에 처했다. 이재오를 사퇴시켰음에도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반응도 영 시원찮다. 사진은 지난 1일 한나라당 대선 종합상황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거침이 없었던 MB의 대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나라당은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 직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 전 총재에게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나경원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이 전 총재는 완전히 분리됐다는 점을 널리 알린다”고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또 “이제부터 이 전 총재를 돕는 당원은 ‘해당행위자’로 규정하겠다”는 ‘포고령’을 내걸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그동안의 미련을 접고 한판 대결을 불사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정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밖에서는 김경준 씨의 귀국에 따른 BBK 의혹이 재점화되고 있고 안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몽니’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MB는 7일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선언 직후 열린 국민성공대장정 울산대회에서 “(이 전 총재의 출마는) 역사의 순리에 반하는 것이고 역사를 한참 되돌리는 것”이라며 “이 전 총재는 지금이라도 정권 교체의 역사적 순리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을 꺼냈다. 출마선언은 비판하면서도 이 전 총재에 대한 직접 공격은 피한 셈이다. 한나라당의 격한 반응과는 큰 차이가 있는 화법이었다.
MB는 지금 이 전 총재의 출마가 우파세력의 갈등 및 지지층 재편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비상사태다. MB로서는 손을 대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범여권과의 한판 승부에 앞서 우선 이 전 총재 출마로 인해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는 보수우파진영의 표심 단속에 나서야 하며 박 전 대표 측의 이탈 방지에도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가 하면 대선 막판 보수대연합이라는 명분을 살려 놓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여지도 남겨 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MB로서는 3중의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 캐리커쳐=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한편 한나라당으로서는 MB와는 달리 이 전 총재를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전략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당 내에서 이 전 총재에 대한 공격의 핵으로 2002년 대선자금 문제와 ‘최병렬 수첩’을 준비해 왔다. 지난 1일 이방호 사무총장은 ‘최병렬 전 대표가 2002년 대선 불법 자금내역이 적혀있다는 수첩을 가지고 있으며 만약 이 전 총재가 출마를 선언한다면 이를 공개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그러나 2002년 대선자금 문제와 ‘최병렬 수첩’은 한나라당으로서도 양날의 칼이다. 한나라당 자체가 깊숙이 개입된 이 문제를 키울 경우 골육상쟁의 결과를 빚을 뿐 아니라 범여권에 공격의 호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 총재를 직접 겨냥한 공격은 출마의 당위성과 도덕성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MB 측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이 전 총재의 출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보다 ‘어떻게 박근혜 전 대표를 잡을 것이냐’에 더욱 골머리를 썩고 있다. 계속해서 불거져 나오고 있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총재의 연대설이 사실이 된다면 MB의 지지율에 치명상을 입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MB가 오른팔과도 같았던 이재오 최고위원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잘라야 했던 것에서도 박 전 대표와의 화합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의 사퇴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친박 측에서는 여전히 이 최고위원의 사퇴의 변을 문제 삼는가 하면 이방호 사무총장의 사퇴도 주장하고 있다. 이 최고위원의 사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MB 측 한 인사는 “이방호 사무총장까지 잃는다면 앞으로 당권을 박 측 인사들에게 모두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MB 측은 자신의 오른팔과도 같았던 이재오 최고위원을 사퇴시켰음에도 박 전 대표 측이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결국 이 후보가 직접 박 전 대표 잡기에 나섰다. MB는 지난 11일 정국 기자회견을 갖고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 대선과 총선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MB가 만약 박 전 대표가 자신을 도와줄 경우 안정적인 공천권을 보장해 주겠다고 선언을 함으로써 박 전 대표의 공개적인 지지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MB 측이 제시한 ‘양보책’에도 박 전 대표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은 “아직 MB의 진정성을 알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박 전 대표 역시 뚜렷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MB 측의 기대에도 불구 대구·경북 선대위 필승결의대회에서 박 전 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과 엇갈려 MB의 앞길에는 아직도 변수가 너무 많다. 김경준 씨 송환에 따른 BBK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나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 움직임 등이 아직 하나도 시원스런 결말을 보지 못한 채 시한폭탄처럼 MB의 발밑에서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 예상과는 반대로 흐른다면 오히려 이 전 총재 측의 낙관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