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국현 정동영 권영길 세 후보가 13일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회동을 가졌다. 정치권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불거진 이번 의혹을 대선 정국에 활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앞으로 삼성 비자금 문제에 대한 검찰의 본격수사가 시작될 경우 이번 대선뿐 아니라 내년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내에서의 공방뿐 아니라 수사지휘대상인 검찰의 공정성 문제를 두고도 문제제기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과연 삼성 비자금이 대선정국에 미칠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들여다보았다.
“이유와 원인이 무엇이었든 김용철 변호사의 뒤늦은 양심선언은 폭풍전야와도 같았다. 애초부터 이 문제는 삼성그룹의 비자금 은닉과 로비에 국한돼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통합신당이나 한나라당 모두 이번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입장이다. 최대한 이 문제를 상대방과 연관 지어 풀어가려고 할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삼성 비자금 문제가 정치권에 끼칠 영향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의혹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삼성 비자금 의혹은 이제 더 이상 ‘삼성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권 전반의 핵심이슈로 부상했다. 대선이 임박해오며 각종 의혹 제기가 난무한 상황이지만 삼성 비자금 문제는 대선주자들에게 적지 않는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각 당은 삼성 비자금 의혹과 관련된 특검법 제출을 두고도 난타전을 이어가고 있다. 특검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민감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지된다. 또 청와대까지 그 여파가 번져 삼성로비의혹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 전반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양상이다. 대통합민주신당·민노당·창조한국당이 제출한 특검 법안에는 ‘199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조성된 삼성그룹 불법 비자금과 관련된’ 사안을 모두 조사대상으로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 측 법안은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 권력층에 대한 비자금 의혹’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을 수사대상에 포함시킨 독자적인 특검 법안을 별도로 제출하기도 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비자금 문제의 본질은 DJ정권과 노무현 정권 아래서 일어난 정권 로비사건”이며 “삼성이 많은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했다면 용처는 대부분 정권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싸움에서 청와대까지 불길이 번져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청와대 측은 자칫 전반적인 권력형 비리문제로 불거질 것을 우려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당선 축하금이나 사례금은 한나라당이 만든 소설”이라며 “대선자금 수사 때 철저히 다뤄지지 않은 것은 오히려 수백 억 원에 이르는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용처”라고 맞불을 놓았다.
또 청와대는 2002년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는 이미 이뤄졌기 때문에 이번 삼성 비자금 특검법안의 수사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억지라는 주장이다. 반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2002년 대선자금에 대해 당시 충분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민노당의 심상정 의원 또한 한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들어서 2004년 3월에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 우리은행장이 됐는데 공교롭게도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계좌가 그 시기에 이루어졌다”며 노무현 정부와 삼성의 관계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2002년 대선자금을 지금에 와서 수사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는 것이 정치권의 해석이다. 한나라당은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명박 후보 검증 국면을 피해보겠다는 계산과 함께 한편으로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함께 겨냥한 것이라는 게 정가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2년 대선 자금 용도에 대해 의혹만 제기할 뿐 구체적인 물증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안상수 원대대표는 이와 관련해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회창 씨보다 높아 대선자금도 이기는 쪽으로 많이 갔을 것으로 짐작되며, 그것이 상식”이라고 언급하며 단지 ‘짐작’과 ‘상식’이라는 불충분한 정황적 증거만을 제기했다.
이 문제가 청와대로까지 옮겨간 만큼 범여권 내에서도 엇갈리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내의 친노 인사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반면 정동영 후보 쪽 반응에선 다소 온도차가 느껴진다. 정 후보 측 관계자는 “단서가 있다면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향후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청와대가 대통합민주신당·민노당·창조한국당의 특검법안에 대해 수사대상을 좁혀 달라고 한 요구에 통합신당 김효석 원내대표가 하루 만에 법안 수정의사를 밝혀 청와대와의 ‘사전교감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삼성 비자금 조사에 대한 정치권 전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가장 우려하고 있는 쪽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이다. 이 후보는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로 한차례 지지율이 휘청거린 데다 BBK 주가조작 의혹에 관한 조사가 본격화될 경우 여파가 커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더구나 김용철 변호사가 의혹을 제기한 삼성 비자금 차명계좌가 만들어질 당시 우리은행장을 지낸 황영기 전 행장이 이명박 캠프의 경제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칫 삼성과 노무현 정부간의 ‘커넥션’ 의혹이 이명박 후보 쪽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검찰은 총장 내정자 등 검찰 수뇌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만큼 수사의 공정성을 고려해 검찰 내에 별도의 감찰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으나 정가에서는 검찰 수사가 모든 것을 대선 전에 속 시원히 밝혀줄 것으로 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선 이후까지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국 대선 이전까지 누가 더 많은 의혹을 제기해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제기한 상대방의 의혹에 신뢰를 갖게 만드느냐에 성패가 달려있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