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후보는 이회창 전 총재의 지지율이 오를 경우를 대비해 폭로자료를 축적해놨다고 한다. 오른쪽은 2003년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 당시 이 전 총재 측근 변호를 맡았던 이두아 변호사 (사진= 연합뉴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와 관련 이 후보 측도 이 전 총재의 대선 자금 잔금 문제와 관련해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 상황에 따라 폭로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 전 총재 측으로서도 ‘한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싸움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명박 후보 측과 이 전 총재 측이 과거 선거법 위반이나 선거 자금 문제를 놓고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대선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대선 결과를 좌우할 ‘명·창의 대결’을 미리 예상해본다.
이명박 후보 측은 요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BBK 사건에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가 ‘심상치 않은’ 파괴력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후보 측은 이 전 총재의 출마에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이 후보 측은 이 전 총재의 출마에 대해 초반에는 강경하게 대응했다가 최근에는 ‘관망-무시’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 후보 측은 이 전 총재가 출마 선언을 하자마자 그의 아킬레스건인 2002년 대선 당시 불법 대선 자금의 유용 여부를 직접 건드렸다.
하지만 이방호 사무총장의 발언 뒤 이 후보 측은 적극적인 공격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떨어져 자연스럽게 대선 레이스에서 이탈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무리한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가 있다. 이 후보 캠프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총재 출마는 보수세력 분열이라는 꼬리표만 있을 뿐 정치적인 명분이 없다. 대선이 임박하면서 사표방지를 위해 이 후보로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 전 총재는 후보 등록 전에 미미한 지지율로 중도 사퇴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전 총재가 ‘살신성인’을 해 이 후보와의 막판 단일화에 합의해줄 경우를 대비해 그를 자극하는 것보다 ‘관리’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는 현실적 계산도 깔려 있다. 사법연수원 시절 은사였던 이 전 총재를 ‘앞으로 이회창 씨라고 부르겠다’고 말해 윤리 논란까지 일으켰던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도 최근 “오는 21일 창당 10주년 기념식에 나와 달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훌훌 털고 고향으로 돌아와 달라, 문 열어놓고 총재님이라고 부르면서 다시 잘 모시겠다”고 말해 이 후보 측이 여전히 이 전 총재와의 화합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그런 ‘유화책’은 아마추어적 전략”이라며 강경 대응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시각의 바탕에는 “이회창 전 총재가 애초 출마를 선언할 때 본선에 끝까지 갈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해석이 깔려 있다. 캠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앞으로 이 전 총재가 예상과 달리 더 높게 뜰 경우 우리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다. 대선 자금 잔금과 관련해 현재 광범위한 자료 축적을 거의 마친 상태다. 그것을 보면 ‘이 전 총재의 죄질이 아주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이 충격을 받을 내용도 많다. 특정 시점이 되면 언제라도 공개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의 이런 강한 자신감은 근거가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이두아 변호사를 이명박 후보 선대위 신임 인권특보로 임명했다. 그는 지난 2003년 이른바 차떼기 대선 자금 수사 당시 이회창 전 총재의 핵심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의 변호인을 맡았었다. 서 변호사는 2002년 대선 자금의 출처와 용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로 꼽힌다. 따라서 서 변호사를 도왔던 이 변호사도 당시 대선 자금 흐름에 대해 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변호사도 자신을 “대선 자금 수사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인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방호 사무총장이 최근 언급한 최병렬 전 대표의 수첩에 대해서도 “(내용을) 봤다. 최 전 대표가 정보를 수집해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이 이 전 총재 대선자금 내용을 상당히 잘 아는 이두아 변호사를 인권 특보로 ‘위인설관’을 한 것은 이 전 총재에게 ‘우리에게 한방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는 무언의 압박”이라고 말했다.
▲ 이회창 전 총재 측은 이명박 후보와 오랜 악연을 갖고 있는 강삼재 팀장(왼쪽)을 저격수로 활용할 계획이다. | ||
또한 강 팀장은 당시 이 후보가 오랜 주군인 정주영 국민당 대표를 지원하지 않고 신한국당의 국회의원 공천을 받기 위해 움직이던 상황과, YS의 지시를 거부하고 강행한 서울시장 출마 전후사정에 대해서도 나름의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강 팀장은 지난 15대 총선에서 이 후보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을 재야파 대표로 직접 영입해 선거자금도 ‘충분히’ 지원했던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재보선 때 이재오 의원의 반대로 공천에서 탈락하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강 팀장은 지난 2004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결별한 상태다. 이른바 ‘안풍’ 때 사용된 괴자금이 안기부 돈이 아닌 김영삼 비자금이었음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후보가 지금 김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얻은 상태이지만 강 팀장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강 팀장은 최근 “저쪽이 이 전 총재의 출마에 대해서는 할 말 못할 말 다 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심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그 사정은 저쪽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정치권에선 선거전이 막판으로 접어들 경우 이 전 총재 측도 이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폭로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해 강 팀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오랜 측근은 이에 대해 “그 문제를 말하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일단 전쟁이 터지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최악의 경우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강 팀장으로서는 한나라당에서 5선을 지낸 최고 중진급 의원인데 이번 대선 때문에 그 ‘은혜’를 무시하고 한나라당을 향해 폭로전을 한다는 부담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는 ‘안풍 사건’에서 당을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그 ‘충정’을 무시하고 자신을 내치자 굉장한 배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감정’은 강 팀장이 이 전 총재와 합심해 이번 대선을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강 팀장은 최근 사석에서 “우리는 죽어도 끝까지 간다. 두고 보라. 지지율이 5%도 아니고 20%대에 이른다. 이것은 분열의 전주곡이 아니라 승리의 서막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취재해온 한 기자는 “후보 등록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 각 진영은 그동안 비장의 카드로 숨겨온 ‘깜짝 공약’이나 ‘깜짝 폭로’를 공개하는 등 이전투구가 벌어질 것이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전 총재는 서로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오히려 BBK 사건보다 더 클 수 있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표가 이 후보 쪽으로 기우는듯 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 전 총재는 궁지에 몰린 꼴이 됐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구석으로 몬 상대를 물어버릴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