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특검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회창 측은 2002년 대선자금 역시 수사대상인 만큼 칼날의 향배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 ||
그러나 특검 법안의 파괴력은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법안은 불법 비자금 조성 경위와, 이 비자금을 가지고 각계 각층에 로비를 한 의혹을 조사한다고 돼 있어 현 대선 후보와 현직 대통령까지 겨냥하고 있으며 나아가 삼성과 관련을 맺어온 사회 각계 지도층도 특검 대상이 될 수 있어 그 파괴력이 가히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삼성 비자금 특검 법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봤다.
국회가 23일 삼성 비자금 특검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킴으로써 대선 정국에 삼성 특검법 태풍이 휘몰아칠 전망이다. 당장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히고 있고 각당 모두 나름대로 이해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정계에서는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특검 법안에 극적인 합의를 이루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주판을 두드린 결과로 보고 있다. 우선 신당의 경우 한나라당에 많은 양보를 하면서까지 특검 법안에 합의한 것은 대선 정국에서 ‘부패 대 반부패’의 구도로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전략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정치권은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신당 측 의원들은 특검 의결을 위한 회의를 거치면서 민노당과 창조한국당과 함께 “부패를 청산해야 한다”는 말을 앞세워 한나라당을 압박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신당 내부에서는 “너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친노 그룹에서 이러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2일 이화영 의원 등 친노 의원들은 “실체도 불분명한 당선축하금을 수사대상에 집어넣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앞으로 특검이 진행된다면 노무현 대통령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한나라당 역시 그동안 여러 가지 무리한 요구를 쏟아 놓음으로써 내심으로는 특검 수용을 거부한다는 인상을 준 것을 우려, 법안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 측 한 관계자는 “안 그래도 BBK 등의 문제 때문에 당 내부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우려하는 상황인데 이번 특검을 너무 질질 끌었던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재벌 비호라는 이미지까지 겹쳐지면 앞으로 대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비난 여론을 의식하면서도 한나라당이 끝까지 ‘대선잔금’과 ‘당선축하금’을 명문화하려고 했던 이유에는 이회창 후보 견제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압박이라는 더 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한나라당 측에서는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 변호사가 입사한 시점을 기준으로 97년 이후 삼성 비자금을 수사대상으로 정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계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후보로 나섰던 시점을 수사대상으로 삼아 압박하자는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이회창 후보 측에서도 역시 특검법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15일 신당, 민노당, 창조한국당이 합의된 특검법안을 처음 올릴 때 이회창 전 총재 측에서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나 정략적으로 이용할 목적이라면 반대한다”고 원론적인 의견만 제시했었다. 또한 지난 16일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기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우리가 특검 법안을 ‘좋다, 하자’고 말할 필요도 없다”며 “그렇다고 무소속인 우리가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즉각적인 답변을 피했다. 그러나 특검이 시작될 경우 97년 이후 삼성비자금의 조성방법 및 사용 내역을 수사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회창 후보가 출마했던 지난 97년, 2002년 대선자금 역시 수사대상인 만큼 이 후보 측 역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후보 측은 97년 세풍 사건 재판에서 삼성 측으로부터 60억원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고 2002년 대선 때는 삼성으로부터 300억 원의 대선 자금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또한 이방호 사무총장이 “최병렬 전 대표가 2002년 대선 때 이 전 총재가 사적으로 대선자금을 유용한 내역을 적은 수첩을 가지고 있다”고 거론했던 것 역시 이 전 총재 측을 압박하고 있다. 최병렬 전 대표는 ‘그런 수첩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전 총재의 2002년 대선 당시 최측근이었던 인사들 역시 ‘수첩의 진위 여부에 신용이 안간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항간에는 “실제로 대선잔금 사용내역 기록이 남아있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청와대 역시 특검 여파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 노 대통령 당선축하금 의혹까지 도마위에 오르면서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 ||
청와대 역시 특검의 여파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로비 문제는 물론 ‘최고권력층 로비자금 제공의혹’이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자칫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청와대 측은 그동안 “겁날 것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수사가 실제 진행되면 어떤 상황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이 여러 가지 전제조건을 달며 거부권 행사 의지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신당 측에서는 “실체도 없는 당선축하금을 특검에 넣자는 게 말이 되냐”는 입장이었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삼성 비자금의 CD(양도성예금증서)의 일련번호를 입수한 것이 있으며 그것이 ‘당선축하금’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홍 의원은 지난 2004년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 및 총선자금으로 보이는 1300억 원대의 괴자금이 하나은행에서 발행한 CD형태로 발견됐다”며 “특검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주장했고, 당시 특검 결과 이는 사실무근인 것으로 밝혀졌었다.
이 때문에 신당 측 관계자는 홍 의원의 주장을 “이전부터 (노무현 당선축하금 CD는) 홍준표 의원이 계속 주장해 왔던 것이고 언제 써먹을까 기다리다가 이번에 꺼낸 것일 뿐이다”라며 “BBK로 한창 한나라당에 시선이 쏠리고 시끄러우니까 이번 기회에 노 대통령을 걸고 넘어져 부정적인 시선을 대통령 쪽으로 쏠리게 만들려는 것이지 뭐가 더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사정들로 청와대 측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내용만으로 특검 수사대상 축소 조정, 공직부패수사처 처리 등 청와대 측이 요구해온 두 가지 전제조건이 모두 무시됐기 때문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시간을 갖고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대통령이 늦지 않게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거부권 행사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이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포함돼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도 거부권 행사 의지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는 재의결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노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하고 법안이 다시 국회로 돌아올 경우에 국회 재의결을 거쳐 2/3의 찬성을 끌어내면 결국 ‘삼성 특검법’은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청와대 측에서도 ‘삼성에서 돈을 진짜 받은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는 것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계의 반응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권 안에서 끝나지 않을 듯하다는 데 있다. 삼성이 받게 될 타격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자칫 삼성과 각계 지도층 간의 숨겨진 관계가 남김없이 드러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특검법은 또 삼성그룹의 불법 로비와 관련 불법 비자금 조성 경위와, 이 비자금을 가지고 각계 각층에 로비를 한 의혹을 조사한다고 돼 있다. 법안의 수사대상이 삼성과 정·관계 등을 포괄하는, 그야말로 ‘삼성과 권력에 대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1997년 이후 삼성이 조성한 비자금이 모두 대상이고, 수사 기간도 준비 기간 20일을 거쳐 최장 105일에 달한다.
따라서 검찰조직에 대한 대대적 조사가 시작되면 검찰·법조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재경부와 국세청, 금감위, 공정위 등 핵심 경제부처도 수사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또한 삼성과 업무상으로나 친분상으로 관계를 맺어온 유력인사들까지 줄줄이 불려나와 ‘특검과 여론의 심판대’에 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자칫 최고권력기관은 물론 대한민국 여론 지도층 전체가 한꺼번에 특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특검법안의 향배는 지금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