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후보가 도덕성 시비를 무마시키기 위해 재산 헌납으로 민심을 수습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 ||
이명박 후보 측은 BBK 사건과 관련해 1차 고비는 넘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김경준 씨 측이 주장한 이면계약서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그 일가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BBK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정상적인 대선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검찰 조사를 기다려 보라”고 말한 것도 적어도 이 문제는 법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 주변 관계자들도 BBK 사건이 향후 권력 창출의 향배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라면 검찰이 딱 부러지는 결론을 내리기 힘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차기 집권이 확실시되는 이 후보를 향해 검찰의 누가 과감하게 칼을 들이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 직전 도곡동 땅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처럼 ‘어중간하게’ 이번 사건을 처리하려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면계약서 감정에 1-2주가 소요되고 계좌 추적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영문으로 된 계약서를 번역할 시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BBK 공동 대표였던 오 아무개 씨가 해외 체류 중이고 이명박 후보가 검찰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지도 미지수다. 그리고 문서 감정도 유전자 감식 같은 사실관계가 명확한 팩트를 가리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면계약서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중대 사안에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의 한 법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찰은 항상 처벌 위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에 현행범 수준의 범법 행위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구체적인 혐의를 발표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검찰에서 밝히지 못한 것을 언론에서 계속 문제제기를 할 경우 이 후보도 법적인 처벌이 아닌 도덕적인 상처를 크게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런 도덕성 시비를 의식해서인지 이 후보가 재산 헌납 등의 정치적 결단을 내려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 보수언론에서는 연일 의혹을 낳고 있는 이명박 후보를 질타하며 재산 헌납을 촉구하는 칼럼이 게재되기도 했다. 사실 이 후보는 지난 경선 과정에서 재산 헌납을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적이 있었다. 그는 지난 8월 19일 당 경선 후보검증 청문회에서 “저의 성취를 우리 사회에 돌려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해 재산헌납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 측은 그것에 대해 “대선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매표행위”라며 강력히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최근 또 다시 한 정책간담회에서 “재산을 사회에 헌납할 것이냐”는 사회자 질문에 “헌납요?”라고 반문한 뒤, “좋은 일에 쓰겠다. 힘없는 사람이 힘 얻고 용기 얻도록 하는 일에 쓰고 싶다”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후보가 BBK 사건이 대충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전격적인 재산 헌납을 발표할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이 후보가 BBK 의혹을 대충 뭉개고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만약 집권하게 되면 정권 초반부터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며 힘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임기 내내 그 문제에 시달리는 것보다 이 후보가 대선 전에 BBK에 대한 총체적 진실을 국민 앞에 당당히 밝히고 ‘국민의 판단’을 새롭게 주문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재산 헌납이 오히려 역풍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과 상관없이 적당한 시기를 골라 재산 사회 환원 발표를 했다면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BBK 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뒤 그 해결책으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 또한 이 후보가 BBK 사건과 관련해 위법행위를 한 것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면죄부를 받기 위해 재산 헌납을 결심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후보 측은 BBK 사건이 진정되면 대선 직전에 파격적인 인사 영입을 발표하며 마지막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간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여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동교동계 인사 등 ‘상상을 초월한’ 인물들이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역주의 청산을 명분으로 사회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이 후보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 측이 무소속 정몽준 의원을 계속 접촉해 조만간 이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할 것이라는 소문도 여의도에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이 후보 측과 정 의원 측은 모두 “현재 그런 계획은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으나 양쪽 모두 적극적인 부인도 하지 않고 있는 데다 특히 이 후보 측에서는 “지지선언을 해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은근히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어 이미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이 달 초 정 의원 측과 교류가 있었고 (지지선언) 시기 선택만 남아있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되거나 떨어졌을 때 선언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 의원 영입은 대선을 목전에 두고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파 보수진영에 대한 외연확대 작업의 일환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당내 일각에서는 외부 인사 영입이 이 후보 집권 뒤의 당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이재오 의원이 밀려나면서 친박 그룹이 당권 장악에 다시 욕심을 낸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서 이 후보 측은 ‘당내 개혁’을 명분으로 외부 인사를 영입한 뒤 그를 새로운 당의 얼굴로 내세울 것이란 해석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후보 지지를 매개로 당권 장악이라는 대가를 내심 바라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정몽준 의원 영입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